[기사 대체 : 10일 오후 5시 30분] 정종섭 장관의 '총선필승' 발언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던 행정자치부 국정감사는 결국 '반쪽국감'으로 마무리됐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 장관의 선거관리법 위반 혐의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감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이 모두 퇴장한 상황에서 홀로 감사를 이어갔다.
10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행정자치부 국정감사는 시작된 지 12분여 만에 중단됐다. 야당 간사인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 도중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하고 "정종섭 장관은 이 자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국정감사 질의를 받고 답변을 할 자격을 이미 상실한 사람"이라며 중단을 요구했다. 정 장관은 업무보고를 마치지 못한 채 자리로 돌아갔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제가 '총선'이라고 외치면 의원님들은 '필승'을 외쳐 달라"고 건배사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야당은 즉시 정 장관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정 장관은 발언 3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의도가 없는 단순한 덕담이었다"라고 사과했다.
야당, "송구하다는 말로 해결되는 문제 아니다"
정 장관의 발언을 둘러싼 여야 사이 공방은 국감 전부터 이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 장관 역시 이 점을 의식한 듯 업무 보고에 앞서 "건배사와 관련된 논란은 저의 부덕의 소치이며 이로 인해 심려를 끼쳐 거듭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올린다"고 입을 뗐다. 연단에서 한 발짝 옆으로 나와 허리 숙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은 강경했다. 정 의원은 "정 장관의 건배사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며 새누리당 의원들도 누차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지적했다"며 "국민에게 송구하다고 하여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이어 정 의원은 "선관위가 지난 7일에 유권해석 결과를 내놓겠다고 하여 오늘 국정감사 일정에 합의했으나 결과 발표가 14일로 미뤄졌으니 그 이후에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정 장관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기에 오늘 국정 감사를 진행하는 건 곤란하다"고 밝혔다.
같은 당 임수경 의원은 "선거 주무부처 장관이 집권 여당이 주최하는 자리에 참석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데 거기서 '총선필승'을 건배사로 외치는 건 공직자로서의 양심을 갖추지 못한 일"이라며 "이 행동이 공직선거법 제9조 선거중립의무에 위반된다는 건 헌법학자인 정 장관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정감사를 진행한다면 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라며 감사 중단을 요구했다.
정 장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같은 당 노웅래 의원은 "덕담은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명백하게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중앙선관위 결정이 나오기 전에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시라"고 요구했다.
여당 "우발적 실수, 관용의 정치 할 순 없나" 반면 새누리당은 정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맞섰다.
여당 간사인 강윤기 의원은 "(정 장관의 발언이) 적절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당시 느닷없이 사회자가 장관에게 건배사를 요청해서 앞에 놓인 책자에 쓰인 글귀를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새누리당 총선 필승이 아닌 총선 필승이라고 했으며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윤영석 의원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반드시 위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라며 "이 사안을 정확히 판단하려면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당시 장관의 바로 앞에 앉아 있어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사회자가 아무런 각본 없이 무작위로 건배사를 요청해 장관의 얼굴이 붉어지는 등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상황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실수"라고 대신 해명했다.
또한 "(전체적 맥락을 살피는)관용과 관대함이 있는 정치를 할 수는 없느냐"라며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중차대한 국정감사를 하러 왔으니 선관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진행을 하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그만 좀 감싸시라"는 푸념이 나왔다.
공방은 1시간 20분 넘게 계속됐다. 자리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의원들은 오전 11시 26분께 정회를 선언하고, 진영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만나 따로 논의를 이어갔다. 약 두 시간 후인 오후 2시 30분께 국정감사가 속개됐으나 야당 의원들은 한 명도 입장하지 않았다.
진영 위원장은 국정 감사 속개를 선언하며 "조금 전 정청래 야당 간사로부터 의원들이 오늘 국정감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라며 "그러나 이미 증인 선서를 마쳤기 때문에 국정 감사를 계속 진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알렸다. 동시에 "어제라도 위원장에게 연락했으면 얼마든지 일정을 변경할 수 있었을 텐데 당일에 통보를 받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간 국회로 이동한 정청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 장관은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도 국회를 모독하는 '국회 해산' 발언을 했고, 이번에는 선거 총괄 장관이 '총선 필승'을 건배사를 외쳐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을 받았다"며 "중앙선관위가 오는 14일 정 장관에 대한 선거관리법 위반 혐의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행정자치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내일 예정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는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총선필승' 발언의 위법성 여부를 두고 또 한 번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