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두고 내가 한 일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고, 또한 알아주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감투를 쓰고 싶다거나, 출세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전혀 가져보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무엇이든지 할 뿐이었지. 나는 기둥이나 대들보라기보다 남의 눈에 띄지 않지만, 또한 없으면 제대로 서기 어려운 주춧돌이 되고 싶었다. 내 나라,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인데 그걸 누구에게 알리겠느냐, 또한 알아주길 바라겠느냐. 주춧돌이 되겠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그러니 내가 죽거든 요란스럽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아버님이 계신 망우리에 묻어 주려무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박찬익(1884-1949)선생의 유서 내용이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리는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독립운동가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빼앗긴 이후 일제의 지배가 장기화되면서 식민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늘어났다. 작위를 받은 자들 말고도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열망했던 자들도 상당수 일제와 타협해 갔다. 지식인들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민족을 더 참혹하게 만들어갔다.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무지해서 안 돼""실력 양성이 아니라 총체적인 민족 개조가 필요해'이런 상황에서 일본과 맞서 싸운다는 건 너무도 무모해 보였지만 독립을 위한 투쟁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의병과 개화 지식인들은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해 무장투쟁의 기반을 마련하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3.1운동을 통해 민족적 대단결이 이루어지면서 독립운동의 기반은 크게 확장되어 이를 주도해나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되었다.
만주에서는 봉도동전투, 청산리대첩 등의 무장투쟁이 전개되었고, 국내에서도 다양한 민족운동이 일어났다. 1932년 이봉창, 윤봉길 의거는 항일투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후, 우리민족의 처절하면서도 끈질긴 투쟁 속에서 광복을 맞이한 것이다.
어렵게 쟁취한 해방이지만 친일파를 청산하고 단죄하지 못해, 그 잔재들의 발악이 오늘날에도 원자폭탄의 낙진처럼 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물들을 하루속히 뽑아내야 하는데, 이는 인적 쇄신뿐 아니라 왜곡한 역사를 되돌려야 하고, 왜곡된 지명을 되찾아야 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정신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조대왕의 원행길인 필로를 답사하기 위해 지지대비에서 출발해 괴목정교, 노송지대를 지나 파장사거리 근처에 이르렀는데 길가에 비석이 보인다. 필로와 관련된 비석이 아닐까 해서 비석을 살펴봤다. 그런데 뜻밖에도 식민지 잔재물이 아닌가? 이런 비석이 왜 이곳에 오늘날까지 서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비석 전면에 있는 '치산치수지비'란 글자는 당시의 경기도지사였던 일본인 감자의방(甘蔗義邦)이 썼으며 비문은 일본어로 새겨져 있었다. 그 내용은 1939년 장두병(張斗柄)이 썼으며 1941년 당시의 수원군 일왕면장이던 광길수준(廣吉秀俊)이 비를 세운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비를 세우는데 협조한 기관 및 사람들로는 수원군 일왕면장 이석래, 수원군 수원읍장 매원정웅, 일왕사방림 시업조합장 이필상, 동산농사주식회사 조선지점, 동양척식회사 경성지점, 윤태정, 차태익, 조봉래, 양근환 등이 새겨져 있었다. (위 내용은 '일제강점기 수원지역 금석문을 통해본 식민지의 초상(수원문화사연구 7권),이동근, 2005'에서 인용했다.)
우리 민족의 영혼을 더럽히는 이 비석을 당장 뽑아버리기를 바란다. 비석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비석의 글자는 금석학적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글씨 자체가 속기로 가득 차있어 서예사적으로도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속물에 불과하다. 혹자는 일제가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식민사관적 가치관으로 이 비석을 옹호할지 모르지만, 친일을 단죄하지 못한 폐해가 오늘날에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만석거 주변의 교통표지판과 버스정류장 주변 지도에는 아직도 만석거를 일왕저수지로 표기하고 있다. '일왕'이란 일본왕을 뜻하는 것으로 반드시 청산해야 할 지명이다. 정조대왕이 명명한 만석거란 멋진 이름을 사용하면 된다.
광복 70주년을 의미있게 맞이하고 보내는데 있어 이와같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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