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싸우기만 하는 정치가 지겹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정치와 뗄 수 없습니다. 법안 하나가 우리의 생활을 바꾸기도 합니다. 실망스러워도 정치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치혐오'의 시대에 정당에 가입한 평범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편집자말] |
혁신안 갈등, 계파 충돌, 대표 재신임, 친노와 비노.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관련 뉴스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다. '이대로는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 당원 가입은 급격히 늘고 있다. 내년 공천 경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들이 미리 조직하는 국회의원들 덕분이다.
여기 그와는 다른 이유로 새정치연합 당원이 된 사람들이 있다. 무려 3000명이다. 대부분 입당 당원들이 '당원 가입서'만 쓰는 것과 달리 이들은 지난 8월 31일 국회에서 대규모 입당식까지 열었다. 거기에 김상곤 당 혁신위원장이 직접 이들의 입당을 환영하기도 했다. 거물급 외부인사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입당이 이렇게 주목 받는 건 이례적이다. 이날의 주인공들은 전국 각지의 영세자영업자, 학교 급식노동자와 청소노동자 등 이 시대의 '을'들이었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5월 출범 2주년을 맞아 그동안 '을'을 돕는 자세에서 벗어나 그들을 적극적으로 당에 가입 시키겠다고 밝혔다. 2년 동안 시장과 거리, 공장과 농성장을 찾아다니면서 만난 인연들이었지만 그들을 '당원'으로 만드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대규모 집단 당 가입은 과거 진보정당에서나 보던 모습이다. 그만큼 을지로위원회의 진정성이 현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울 송파구의 음식점 '우리마을봉평메밀촌' 사장 이대일(60)씨도 이날 입당식에 참석했다. 그가 국회를 방문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직장 생활을 30년 넘게 하다 가게를 차렸는데, 건물주가 '재건축하니 나가라'고 했다"라며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잘못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부터 함께 하는 새정치연합을 기대한다"라고 입당 소감을 밝혔다.
지난 11일 이씨의 가게를 찾았다. 가게는 지하철 2호선 신천역 3번 출구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대로변 건물 1층에 있었다. 살짝 안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와 있는 점포였지만 큰길에서도 간판이 보여 위치가 나쁘지는 않았다. 가게 이름을 보고 프랜차이즈로 오해했지만 '우리마을봉평메밀촌'은 이씨가 운영하는 이곳 한 곳뿐이다. 점심이 지난 오후 시간, 이씨는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부인과 함께 늦은 점심식사 중이었다.
"을지로위원회가 새정치연합 장악해야 한다"
"퇴직 후에 가게를 차렸다. 처음에는 신림동에 있었다. 건물을 잘못 들어갔다. 엄청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 여름에는 어느 정도 괜찮았는데 겨울이 되면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소셜커머스에 올린 50% 할인 상품으로 겨울을 버텼다. 그렇게 해도 직원 봉급과 임대료, 재료비,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하고 잠실 쪽 상권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2년 전에 여기로 옮겼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경험이 부족해 손해를 많이 봤다. 이곳 신천역 주변으로 이전한 건 2년 전 이맘때로 여름이 끝날 때쯤이었다. 메뉴의 특성상 여름 장사가 대목인데 그 시기를 놓치고 들어 왔다. 다행히 여기서는 가을과 겨울에도 어느 정도 손님이 있었다. 무엇보다 음식 맛이 좋았다. 설탕을 쓰지 않고 과일을 갈아 만든 비빔장은 일품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자리를 잡아갔다.
문제는 그 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나 일어났다. 건물주가 바뀌었다. 국내 굴지의 악기업체 회장이 건물을 사들였다고 했다. 이씨가 입주할 당시 건물에 잡혀 있던 근저당은 20억 원 정도였다. 그것이 210억 원으로 늘어났다. 새로운 건물주가 매입을 하면서 대출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입자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일어났다.
"보증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그래서 가게를 내놓고 다른 임대인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건물주가 재건축을 할 예정이라며 새로운 임대인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여기에 입주할 때 들인 권리금 8000만 원을 그냥 날리는 꼴이 된다. 8월 30일자로 주인이 가게를 비우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계약 기간이 다 됐으니까 나가라는 얘기다. 일단은 버틸 거지만 피해를 입게 될까봐 걱정이 크다."이씨에 따르면 건물에 있는 19개 매장 가운데 3곳은 이미 떠났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이씨는 앞으로 3년 가량 영업을 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 건물주가 이씨를 내보내겠다고 마음을 먹고 소송을 낼 수도 있고 분쟁 때문에 가게 영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갈등은 대부분 이렇게 생겨났다. 이씨도 그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전국상가임차인연합회에서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분쟁 지역에서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를 소개받았다"라며 "나도 저기 한번 들어가서 나 같은 사람에게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정치권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강성노조 싫다, 생각도 보수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씨의 당원 가입에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전부터 새정치연합 지지자였던 건 아닐까? 정치인 누군가와 인연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에 그는 "1956년 대구 출생이고 정치에 관심 없었다, 마지막으로 투표한 게 김대중-이회창이 붙었던 대선 때였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이슈가 되는 '노동개혁'에도 새정치연합과는 상당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보수적이었고 대기업노조에게는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천민자본주의다. 밑에 있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 돈을 버는 구조다. 하지만 강성노조는 싫다. 생각도 보수 쪽에 가깝다. 어쩔 수 없다. 외국에 나가려면 반공교육을 받아야 했던 세대다. 가난의 아픔을 끊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 요즘 노조를 보면 자기들이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일단 자기 뱃속부터 챙기려고 하는 것 같다.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하는데 일단 내 것부터 챙겨 놓겠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솔직히 정치에 혐오감도 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이렇게 보수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그를 새정치연합으로 이끈 힘은 바로 '을지로위원회'다. 그는 "을지로위원회가 아직은 힘이 없지만 여기서부터 하나의 싹을 틔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을지로위원회가 당을 장악하고 같은 노선을 가진 사람끼리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픈 사람을 위한 정치가 돼야 한다. 아랫사람 거느리고 시장 찾아와 떡볶이 먹고, 그러는 건 하나의 액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