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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시작 된 영산강변 자전거 도로
 가을이 시작 된 영산강변 자전거 도로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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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부스스 눈을 비비고 일어난 꽃과 나무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한 할아버지가 끼어든다. 송희옥(71세) 할아버지다. 매일 만나는 할아버지여서 그런지 꽃과 나무는 반갑게 할아버지를 맞는다.

 넝쿨에 감춰진 교통표지판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넝쿨에 감춰진 교통표지판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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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 풀 제거 전과 후의 나무
 가시 풀 제거 전과 후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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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할아버지가 친구가 된 것은 1년 6개월 전이다. 항암투병 중에 산책길에서 처음 만난 꽃과 나무에게 한없이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다.

생각 끝에 함부로 버린 쓰레기를 치워주고 나무를 칭칭 감는 가시 풀과 칡넝쿨 등을 걷어주기로 했다. 가시 풀과 칡넝쿨 등이 나무에 오르지 못하게 곁가지를 자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5km 자전거 도로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만여 그루.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송 할아버지의 땀방울의 흔적이다.

"사람들은 자연이 내 것이라고 하면서 그 자연을 보호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연을 망가트리지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습니다."

송 할아버지는 매일 나무를 가꾸며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한 곳에 모아 둔다. 모아 둔 쓰레기는 구청에서 매주 한 번씩 가져가지만 지역 간 경계 지역이나 관할 지역이 다른 곳은 그대로 쓰레기가 방치되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버려진 쓰레기와 쓰레기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넝쿨에 감싸여 있는 나무
 버려진 쓰레기와 쓰레기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넝쿨에 감싸여 있는 나무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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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자연에 양심을 버리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저기 한 번 보세요. 저것은 내가 치울 수가 없을 만큼 많이 버렸어요. 악취와 저 아래서 죽어가는 나무와 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누군가가 몰래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버렸다. 그 쓰레기는 자연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구청 관계자가 찾기 쉽도록 나무를 감고 있는 넝쿨을 제거하지 않고 있다는 송 할아버지는 빨리 치워지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다.

 돌 틈에 끼어있는 쓰레기 등을 주워 한 곳에 모으는 송 할아버지
 돌 틈에 끼어있는 쓰레기 등을 주워 한 곳에 모으는 송 할아버지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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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버릴 때 차라리 그냥 보이게 버렸으면 좋겠어요. 돌 사이에 끼워놓으면 치우기가 힘들고 쓰레기를 치우지 못하면 냄새가 많이 납니다. 환경오염도 되고요."

조금 양심적인 것 같지만 치우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이 많다는 것이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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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제를 복용하고 나면 가슴이 벌떡거려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와 걸어 다녔죠. 그러면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걷기 시작했던 것이 요즘은 내 하루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 달 전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담당의사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암 치수가 거의 정상이라고 합니다."

3시간 정도 꽃과 나무와 대화를 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송 할아버지는 꽃과 나무 덕분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며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도로가에 피어있는 가을 꽃 들
 도로가에 피어있는 가을 꽃 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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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황당한 일이 있었어요. 길가에 부용화가 꽃망울을 터트려 정말 예뻤습니다. 아침에 오늘은 더 예뻐졌다고 아침인사를 하면 환하게 웃어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부용화가 없어졌어요. 누군가가 통째로 뽑아가 버렸습니다."

자연은 매일매일 변하는데 사람들은 더디게 변한다며 꽃이 뽑힌 곳을 가리킨다.

 목장갑이 터진지도 모르고 주방용 가위로 열심히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송 할아버지.
 목장갑이 터진지도 모르고 주방용 가위로 열심히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송 할아버지.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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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까지 토목 감리 직에 근무했지만 암 때문에 퇴직했다는 송 할아버지는 나무전지도 처음 해봤다고 한다. 자연사랑은 프로지만 갖고 있는 도구를 보면 아마추어다.

코팅장갑도 아닌 목장갑에 전지가위 대신 주방용 가위로 작업을 한다. 목장갑이 터진지도 모르고 열심히 나뭇가지를 자르고 있는 송 할아버지.

 청소를 끝내고 가을이 오고 있는 길을 걸어가는 송 할아버지의 뒷모습
 청소를 끝내고 가을이 오고 있는 길을 걸어가는 송 할아버지의 뒷모습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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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에 나무에 기어오른 가시 풀과 칡넝쿨을 다 제거해야 됩니다. 몇 그루 안 남았어요. 추석 선물입니다."

정상인도 아닌 중증환자지만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초목과 대화하는 노년의 여유로움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할아버지. 청소를 끝내고 가을이 오고 있는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참 아름답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문득 박경리님의 글이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10월호에 게재합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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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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