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선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우토로 마을 주민에게 한국 음식을 배달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올해 7월 유네스코에 등재된 하시마섬, 즉 군함도에서 숨진 한국인 징용자들을 위한 공양탑이 참담하게 방치된 모습도 나왔다.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 아닌 길'은 버려지고 숨겨진 동포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화려한 고층아파트, 운동회, 레스토랑 등 여행 가이드가 설명한 공간과 지하 갱도 안 노예적 삶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방영 당시 유재석의 "너무 늦게 왔습니다"라는 말이 우리 가슴을 친 이유는 되돌릴 수 없는 그 분들의 삶의 무게와 까맣게 몰랐던 역사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는 질책 대신 가만히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며 당부하는 강경남 할머니.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가만히 고개를 돌리는 징용 생존자 할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서 더 처참하게 재연되고 있었다.
올해 7월 일본 대기업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2차 대전 당시 이 회사에서 강제 노역한 중국인, 미국인에게 사과했으며,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게도 앞으로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식민 지배 시기 한국인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는 "법적 상황이 다르다"며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강제 동원은 1938년 도입된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이뤄진 적법한 행위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지난 7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도 조선인 강제 노역의 '강제성'은 인정하면서도 국제노동기구(ILO)조약상 불법인 '강제노동'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한편, 친일파가 득세하는 정부·여당에서는 국민의 청구권 소송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다. 지난 5월 정부와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일제 강점기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를 연장하는 법안 통과를 반대한 것이다. 청구권 문제가 국가 간 종료됐더라도 한국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남아 있다고 밝힌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실제 소송을 제기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를 이유로 국회가 틀어막은 셈이다.
70년 만에 돌아온 희생자, 더 이상 외롭지 않게이 와중에 지난 40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시민이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오는 19일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운구가 70년 만에 귀향한다. 115위의 유해를 발굴한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의 도노히라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역사를 공부하면서 홋카이도 근대화 과정과 제국주의 일본 시기 전반에 만연한 '강제 노동'을 알게 됐고, 40년 동안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복잡한 한일 관계, 불타 없어진 자료, 한국 봉환 절차 등 난관은 많았지만, 한국의 정병호 교수와의 만남, 한일 양국의 청년들의 노력으로 115위 유해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됐다.
일본의 안보법안 추진을 반대하며 평화 행동을 고민하고 있던 겨레하나 평화청년프로젝트팀은 고향으로 돌아온 유골함을 맞이하기 위해 이번 주말 시청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한을 푸는 일은 오늘 우리 현실과 맞닿아있다. 떠돌아다니며 고통 받아온 동포들의 삶과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을 명분으로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려는 일본을 마주하며 언제든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될지 모르는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처지는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몫의 역할을 찾기 위해 우리 손으로 직접 유골함을 들고 강제 징용 희생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아파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타국 땅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진 공양탑처럼 서러운 역사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