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승인되었다.
'조건부'라는 말이 붙었지만 승인은 승인이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며 알게 된 활동가로부터 전달된 문자 내용은 간결하지만 명확했다. "승인확정." 이제 곧 하부종점에 가이드타워 2개, 중간지주 6개, 상부 가이드타워 1개 등 총 9개의 지주가 산등성이에 박히고, 8인승 곤돌라 33개가 부지런히 돌아갈 설악산 오색구간 케이블카의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경제적 파급효과라는 말에 양양군과 강원도, 지역주민들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을 덜컥 내바쳤다. 오색케이블카는 2018년 2월 동계올림픽에 맞춰 완공되어 상용화될 예정이었다.
설악산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 글을 쓰는 나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서울로 대학을 오기 전까지 이십여 년을 강릉에서 살았다. 강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나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산이다. 강릉에서는 차로 조금만 달리면 아름다운 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등산을 좋아하던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철마다 수없이 산에 다녔다. 물론 설악산도 그중에 하나였다. 내게 산은 머리로 생각해서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고향의 산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언제부턴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2주간 사용할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장을 만들기 위해 500여 년이 넘은 가리왕산의 숲을 벌목하더니 곳곳에 골프장을 짓고, 이제는 10여 종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200여 년이 넘은 나이의 숲을 가지고 있으며, 5개 분야의 보존지역으로 묶여있고, 한라산과 지리산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짓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강릉청년들케이블카 승인이 결정되기 전부터 강릉이 고향인 나와 강릉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단순히 SNS로 기사를 공유하고, 설악산 케이블카가 설치되서는 안되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조급했다. 우리는 작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손수건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메시지를 담은 손수건.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더 알리고, 설악산 케이블카가 설치돼서는 안되는 쪽에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강릉청년들"로 명명했다. 나를 포함해 시작은 셋이서 했으나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손수건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그림을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친구가 흔쾌히 손수건의 디자인을 맡아줬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내줬다. 작게는 5,000원부터 많게는 30,000원까지. 우리에게 보내진 후원금은 손수건이 제작되고 다시, 설악산을 지키기 위한 후원금을 보내는 일에 요긴하게 쓰였다. 처음엔 나와 친구들의 자비로 제작하려던 손수건이 목소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더욱 뜻깊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추진되는 케이블카사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가 어제오늘 만의 일도 아니었다. 이미 2012년에 1차, 2013년에 2차 신청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부결되었다. 1차는 정상인 대청봉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2차는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최대 서식지라는 이유에서였다. 3차 신청이었던 이번 신청에서도 케이블카의 설치 구간이 산양 서식지를 지나지만 통과가 되었다. 2018 동계올림픽처럼 강원도가 도의 3대 현안중 하나로 케이블카 사업을 명명하며 끈질기게 추진해나간 결과였다.
산양을 포함하여 10여 종의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상부종점에 위치한 200년 이상의 숲, 천연보호구역 및 국립공원 자연보존 지역, 산림자원 보호구역, 유네스코생물권 보전지역 등 5개 분야의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곳 등 설악산을 지켜나가야 할 이유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왜 설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는가. 그것은 설악산이 후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해져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근본적으로 나는, 국립공원에 관광용 케이블카를 설치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 2014년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평창올림픽에 맞추어 설악산 케이블카가 조기에 추진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무역투자진흥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재한 '수출진흥회의'가 정례화된 것이다.) 그 뒤,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 8월 28일 양양군이 신청한 3번째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신청을 통과시켰다. 이미 2차례나 부결되었던 케이블카 사업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오색케이블카 설치 승인 발표 후 올라간 설악산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승인이 난 다음날인 8월 29일 우리는 한달 전 예정했던 대로 1박 2일 설악산 등산 여정에 올랐다. 28일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승인이 부결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리라 다짐했던 것과 달리 마음과 발걸음 모두가 무거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 이슈를 알리고 설악산에 9개의 지주가 박히고 33대의 곤도라를 걸 케이블이 길게 걸리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케이블카의 상부종점이 될 끝청 부근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색그린야드 호텔이 보였다. 저기쯤에서 시작되어 케이블카는 여기까지 단숨에 올라올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를 것이다. 연간 360만에 육박하는 방문객만으로 몸살을 앓는 설악산은 더 많은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제 몸의 또 한 부분을 강제로 빼앗기고 있었다. 배낭에, 손목에 우리는 직접 만든 손수건을 부착하고 묶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설악산 케이블카에 관한 이슈를 알리고 반대의 입장을 공유하고자 했다.
설악산을 직접 발로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우리의 의견에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질문을 하는 분도 계셨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외려 사람들이 걸어다니지 않으니 더 친환경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 케이블카의 지주가 설치되고 운행이 시작되면 필수적으로 진동과 소음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보존되어야 할 야생동물들이 이 구간에서 서식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개발'이라는 것이 '친환경적'으로 진행된다는 말 자체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깎이고, 파이고, 뽑히고, 베어지는 일은 불가피하다. 또한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기존에 놓인 길로 걸어가던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타지는 않는다. 걸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은 마인드가 다른 사람들이다.
전국의 산마다 줄줄이 신청대기중인 케이블카 사업이번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승인으로 전국에 대기중인 케이블카 사업들도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지리산을 포함해 치악산, 계룡산, 속리산 등 국립공원만 해도 5,6군데가 대기중이다. 또한 설악산의 다른 구간들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경련에서 지난 5월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사안에 따르면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이면 정상부에 200여 명 수용이 가능한 4성급 호텔이 들어가고 레스토랑을 포함해 산악자전거, 산악오토바이 레져시설이 함께 들어간다. 말 그대로 국립공원을 유원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고향이자 삶의 터전, 이대로 망가지는 것 두고 볼 수 없어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고 4성급의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이나 노약자 등 약자의 편의를 위해, 여성이나 외국인의 편리를 위해서."라고.
그러나,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가장 시급한 것이 과연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일까? 이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하면 이곳까지 오는 방법은? 평소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삶의 주변만 돌아보아도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너무나 많다. 또한 중청대피소를 사용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과 외국인을 위해 4성급 호텔을 짓겠다는 논리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나는 강릉에 살면서 수없이 설악산을 갔고, 보았고, 느끼며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산이 보여준 모습들, 그리고 산을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아름다운 산에는 단풍철이 되거나 봄에 꽃이 발할 때 객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뭇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와야 지역 경기가 풀린다고 했지만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 남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산과 바다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아팠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한 번이라도 땀을 흘려 산을 오르고, 느끼고, 고생스럽게 끝청이나 대청까지 올라봤는지 묻고 싶다. 한 발 한 발 자신의 노력으로 디뎌 산을 올라갈 때 느끼는 경이로움을 경험해본다면 절대로 케이블카를 만들어 30여 만에 산을 올라가 경치를 즐기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8월 28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승인이 나기 이전부터, 그리고 승인이 난 이후 또 한번 설악산을 오르며 친구들과 나는 지지와 연대, 응원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힘이 났고 반면에 너무나 견고한, '돈'과 '권력'으로 뭉쳐진 거대한 벽 앞에서 수없이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평가자료들과 공정하지 못했던 심사위원 구성,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입장을 바꾼 환경부,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경제성, 환경성, 안정성의 문제들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의 승인을 처음부터 재검토해봐야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설악산은 강원도민의 것만도, 양양군민의 것만도 아니다. 관광 활성화를 원한다면 트램, 전기자동차, 전기 버스 등 설악산을 지키며 사람들을 안내할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케이블카는 친환경적이지 않다.
나와 강릉의 청년들은 앞으로 이 이슈를 위한 다른 계획과 실천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계획과 행동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뒤늦게나마 이렇게 우리의 움직임들을 정리하여 기사로 기고하게 되었다.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 최초기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