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남자가 절단기로 나무를 자르다가 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당연히 손가락을 다시 붙이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남자는 두 손가락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엄청나게 부과될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의료보험체계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길바닥에서 죽을 자유'밖에 허락하지 않는 가혹한 시스템이었다.
건강보험 개혁을 공약으로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 일명 '오바마 케어'를 통과시켰다. 2014년부터 시행되면서 미보험자수도 줄어들고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도 늘었다고 한다. 긍정적 변화이지만 미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에 비춰본다면 많이 늦은 변화이기도 하다. 특히 유럽의 복지국가들에 비교한다면 미국은 여전히 보편적인 복지정책에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은 왜 유럽과 같은 '복지국가'가 되지 못했나?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석좌교수인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공저한 <복지국가의 정치학>은 '미국과 유럽의 복지 제도 차이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표면적 주제로 '복지 제도'를 다루지만 내면적으로는 '미국인들이 그들의 유럽인 친척들과 상당히 다른 나라를 창조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미국 예외주의'에 주목한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이 복지국가와 소득 재분배 수준에 관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간단한 경제이론으로 한 가지 해답만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변수 및 사고 방식에 관한 변수, 그리고 당연히 역사까지, 이 모두를 포함한 광범위한 요소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인종적 이질성과 정치 제도들이 미국과 유럽 간 차이의 대부분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정치 제도들은 그 자체가 혼란스러운 20세기 전반기가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오면서 미국과 유럽 간 차이들이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견해에 이르게 되었다. (42쪽)미국은 유럽에 비해 소득을 재분배한 공공정책이 부족하다. 저자들은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미국 예외주의'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가난에 대한 미국인과 유럽인들의 태도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이동성이 있다고 믿는 반면, 유럽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의 덫에 걸려 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의 71%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한다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40%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즉, 유럽인은 미국인에 비해 가난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고착'되어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고려할 사항은 소득 이동성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대한 인식이다. 미국인은 유럽인에 비해 훨씬 '운'보다는 '개인의 노력'이 소득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가난을 게으름이나 노력 부족의 증거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들은 "이 설문조사 결과는 미국인과 유럽인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분명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보여준다"며 "사회 이동성의 효과는 사회의 실제 모습과 빈곤의 원인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사고방식이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사고방식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128쪽)고 설명한다.
소득재분배에 관한 미국과 유럽의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소득이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1인 1표제'가 아니라 '1달러 1표제'에 가까운 모습이 나타난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차이다.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의 복지정책이 왜 이렇게 많이 다른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과 유럽의 제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왜 유럽과 미국이 그렇게 다른 제도를 가지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고(161쪽) 지적한다.
'정치'의 차이가 양 대륙의 운명을 갈랐다
미국과 유럽의 복지 제도 차이에 관해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치제도의 차이다. 저자들은 "유럽에 비해 미국에서는 왜 강력하고 유효한 좌파 정당이 등장하지 못했는가"에 주목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노동운동은 굉장히 전투적이었다. 폭력적인 노동자 봉기가 수도 없이 발생했다. 국제 노동절인 5월 1일도 1886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헤이마켓 폭동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운동은 전국적인 규모로 조직되어 중앙 정치권력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고 점차 그 동력을 잃어버리며 사그라들었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은 '미국 예외주의'의 세 가지 요인으로 지리적 특성, 민족적 인종적 이질성, 군사적 성공을 제시한다. 유럽국가들에 비해 광활한 영토를 가진 미국의 지리적 특성은 노동운동이 전국적으로 뻗어나고 연합하는데 방해요인 됐다. 노동운동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도 농업 중심의 남부에서는 노동조합이 자리 잡지 못했다.
저자들은 "미국은 영토가 넓어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은 지역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집단적이 소득 재분배가 아니라 서부로의 이주를 통해 개인적 '운'을 추구함으로써 동부 도시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며 "이러한 미국의 특성은 문화적으로도 깊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182쪽)고 설명한다.
또한 인종적, 민족적 이질성으로 인해 반노동자 단체들이 좌파를 쉽게 분열시킬 수 있었던 것도 요인이다.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처음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북부 도시에서는 흑인들이 노동조합에서 배제됐고, 인종적 분리는 경영진이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경연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파업 파괴자로 이용하곤 했다. '흑백 갈등'은 역사적으로 연원이 깊은 미국 사회의 주된 갈등이다.
마지막으로 군사적 성공도 좌파 정당의 등장을 막는데 한 몫을 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른 유럽 국가들은 끔찍한 피해를 입고 군대도 와해되거나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했다. 미국은 1865년 이후로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벌여 피해를 입은 경험이 없다. 유럽에 비해 군사적 패배를 겪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미국의 노동운동은 언제나 잘 조직된 군대와 직면할 수 밖에 없었고 군대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총을 쏠 수 있을 만큼 기강이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182쪽)고 한다.
유럽이 오늘날의 복지국가가 되기까지는 좌파 정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강력한 노동자 집단과 결합된 좌파 정당의 영향력은 헌정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낼만큼 막강했고 그 힘이 오늘날의 유럽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 덕분에 소득 재분배에 반대하는 미국 정치인들이 성공하게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소득 재분배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성공한 결과 미국인들의 시각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각은 유럽에서 사회주의 우세가 가져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324쪽)인종문제와 소득재분배의 상관성을 따져보니미국과 유럽의 차이에 대한 정치적 설명과 더불어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설명은 인종 문제와 재분배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비례대표제'가 패배하는 과정도 인종적 분열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대다수 백인 토박이 미국인들은 새로운 이민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유리한 비례대표제의 특성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보수주의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종종 '흑인의 지배'를 경고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선동했다. 인종적 적대를 통해 계급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제거하려는 시도였다.
반면에 유럽은 인종적 동질성으로 인해 '인종차별주의'를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았다. 유럽의 소수자들은 특별히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지에 반대하는 정치적 선전과 민족적 증오를 결합시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인종적, 종교적, 민족적 분리는 경제적 계급 구분을 희석시킴으로써 계급에 기초한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킨다. 미국에서 소수자 비중이 높은 주일수록 복지급여가 덜 관대하다는 사실. 국제 비교를 해보면 인종 분할 정도와 사회복지지출 수준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존재한다. 인종 분할 정도가 더 높은 나라일수록 복지 지출을 더 적게한다. 인종 분할이 복지지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우리의 추정치를 사용하면 미국과 유럽의 복지지출 차이 중 약 50%는 인종 분할에 기인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227쪽)저자들은 여러 집단이 존재할수록 '증오'가 형성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인종집단이 비교적 소수이거나 사회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서 정치노선의 어느 한 쪽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을 때 증오의 매력적인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대상이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는 그들이 빈곤하다는 사실 때문에 좌파 정치세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지속적인 수단으로서 흑인에 대한 증오가 이용되었다"(296)고 분석했다.
매우 이질적인 미국사회에서는 소수자들이 가난한 사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득 재분배를 공격하기 위해 언제나 쉽게 인종적, 민족적 증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인종적 분열과 정치제도의 차이는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는 이데올로기,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믿음, 낮은 수준의 소득재분배만을 용인하는 시각이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반공주의'와 '복지국가'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다저자들은 오늘날 복지정책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차이를 좌우하는 근원적 요인을 좌파 정치세력의 몰락과 인종적 민족적 이질성에서 찾았다. 미국의 인종주의 못지 않게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이데올로기는 '반공주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치는 부모들과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유모차 엄마'까지 '빨갱이'로 낙인찍는 세상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반공주의의 연원을 따지다보면 친일과 마주하게 된다. 해방 이후 친일세력들은 그대로 정치 기득권을 차지했고 '반공'을 앞세워 입지를 다졌다. 반면에 독립운동가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거나 공산주의자로 몰려 3대가 망하는 현대판 '연좌제'의 희생양이 됐다.
최근 영화 <암살>이 메가히트를 기록하면서 친일 청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영화 속 실제 인물들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의열단 단장으로 등장하는 약산 김원봉의 가족들이 해방 이후 보도연맹으로 몰려 '빨갱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몰살당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만 엄연한 역사의 진실이다.
미국이 소득재분배에 인색한 정치제도 갖게 된 기원을 인종주의와 좌파의 몰락에서 찾는 것처럼, 한국이 '복지국가의 암흑기'라 할 만한 20세기를 보내야했던 이유도 삐뚤어진 역사와 반공주의의 득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반공주의와 소득재분배 정책의 구체적인 상관관계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반공주의가 한국 정치의 왜곡과 현대사의 수많은 질곡을 낳았다는 점에서 그 혐의는 충분하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보수 양당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정치구조로의 개편도 이를 실현할만한 진보적 정치세력의 강력한 등장이 있을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다수대표제에 비해 비례대표제는 소득재분배에 훨씬 유리한 정치적 제도이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례대표제 자체가 복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의 사례처럼 강력한 노동운동과 결합된 비례대표제가 복지국가를 튼튼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요지는 "제도가 경제 성장과 복지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면 먼저 제도는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보다 근원적인 힘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복지국가가 가능하려면 정치경제적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제는 정치경제적 재편을 실현할 정치세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은 무엇인지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복지국가의 정치학>(알베르토 알레시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 생각의 힘 펴냄 / 2012. 11.)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