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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책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만든 책을 독자들의 손에 들리는 것은 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숱하게 많은 승객이 책을 펼쳐 든 풍경으로 기억되던 지하철 속 모습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스마트폰 직사각형 화면에 고정된 시선을 종이책으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종이책을 찾는 사람들은 CD의 편리함 속에서도 블랙디스크(LP)를 고수하는,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 카메라의 아날로그 감성에 탐닉하는 극소수로 국한되지 않을까요.

출판계 원로를 자처하는 분들은 혀를 차면서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을 꾸짖곤 합니다. 저는 분연히 말하는 이런 어조가 안타깝습니다. 책을 내놓으면 언론이 주목하고, 독자들이 받들듯 책을 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영화'를 놓고 싶지 않으려는 그 분들의 구실에, 연민의 마음을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책보다 재미있고 유익하기까지 한 수많은 '거리'들이 즐비한 세상입니다. 시대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에게 왜 책을 소비하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기존 책의 소비자였던 독자들은 이미 다른 형태로 책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 다른 형태라는 것이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책이 텍스트뿐이라고 여기는 출판기획, 그런 기술방식은 달라진 독자들의 기호에 부합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텍스트와 기술방식의 가치가 없어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진 미디어환경을 사는 삶이,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2

매체환경도 변했습니다. 기존의 신문과 방송 등 자신들의 시각과 주장을 일방적으로 발신하는 대중매체만이 존재했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사용자들이 직접 생산하는 콘텐츠 즉 UCC(User Created Contents),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텀블러, 카카오스토리 채널, 아프리카 TV 등 직접 개인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하는 '마이크로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소비자나 독자라는 개인은, 예전의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의 남다른 주의 주장을 전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이크로미디어환경에서는 누구나 대중매체의 기자와 대적할 수 있는 무기를 쥐게 되었습니다. 원한다면 언론사와도 싸울 수 있는, 자신만의 채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가장 난감한 것은 기득권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구축된 진지 속에서 안일했던 그들은 마이크로미디어라는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댓글도 뉴스로 기능하는 시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계가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소비자의 기호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기존에 구축한 진지의 붕괴는 시간문제입니다.

"왜 책을 사지 않느냐"고 독자를 꾸짖는 것이 출판 불황을 타개하는 바른 해법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출판환경이야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시대입니다. 스승의 보람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을 극복한 제자를 꾸짖는 건 사제 간의 도리도 아닙니다.

출판계도, '쪽'보다도 더 푸른 대중들의 가치와 기호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꾸중보다 기획이 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안수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판#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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