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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는 외암리 마을.
 가을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는 외암리 마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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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야 하는 고향 없는 불쌍한(?) 도시인들의 연휴 보내는 방법은 서울 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멀리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부터 고즈넉한 가을 산사에 들어가 명상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는 템플 스테이, 왠지 평소엔 잘 가지 않게 되는 고궁과 박물관 구경가기... 해바라기, 코스모스가 손 흔드는 쌀 익는 가을들녘 또한 추석 연휴를 풍성하고 한가로이 잘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닐까싶다. 마치 정성들여 잘 지은 밥 한공기가 놓여져 있는 듯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가을 풍경이 외암리 마을(충남 아산시 송악면)에도 펼쳐져 있다.

수도권 1호선 전철을 타고 온양온천역으로 갔다. 역 앞에 이삼십 분 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20여 분 달리면 외암리 민속마을에 닿는다. 매표소를(입장료 2천 원) 지나 세상의 다리 가운데 가장 인간미가 느껴지는 섶다리를 건너 외암리 민속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외암리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중엽 명종(1534∼1567)때에 장사랑 벼슬을 지낸 이정 일가가 낙향하여 정착함으로써 예안 이씨 세거지로 되었으니 400년의 내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정의 6세손인 이간이 설화산의 정기를 받아 호를 '외암' 이라고 지은 뒤에 그를 따서 마을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마을 들머리에서 손님을 맞아주는 섶다리와 노송 소나무 숲.
 마을 들머리에서 손님을 맞아주는 섶다리와 노송 소나무 숲.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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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들머리, 외암리 마을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을 늙은 정자나무와 함께 야트막한 언덕 위에 모여 사는 노송 소나무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거북이 등딱지 같은 나뭇결이며 등이 구부정한 모습이 흡사 동네 어른들 같다. 수백 년 전통의 외암리 민속마을엔 고택(古宅)에 어울리는 고목(古木)들이 많이 산다.

마을엔 송림숲 외에도 다양한 나무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소나무, 상수리 나무는 물론 향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와 과실나무 (감, 밤, 호두, 복숭아, 매실 등)들이 지천이다. 갖가지 수목들이 마을, 집, 돌담들과 잘 어울리며 살고 있어 한 폭의 큰 그림이나 정원 같기도 하다. 나무와 숲과 마을 풍경으로 만나는 조화로움은 외암마을만이 갖는 아름다움인 듯싶다. 요즘 같은 가을날뿐만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매력을 간직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열린 대문, 얼기설기 쌓은 돌담, 말린 과실... 모두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열린 대문, 얼기설기 쌓은 돌담, 말린 과실... 모두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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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마을의 풍경은 무엇보다도 나지막한 돌각담장이다. 마치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돌담장에 둘러싸인 느낌을 주는데 집집마다 둘러쳐진 돌담이 무려 5.3㎞에 달한다고. 마을에 들른 엿장수가 열 번을 헤매다 겨우 동네를 빠져나갔다는 어르신 얘기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겠구나 싶다.

그러나 돌담들은 고관대작들의 집 돌담처럼 위압적으로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소박하게 등을 구부리고 엎드려 있다. 이 돌담은 대개 줄눈이나 흙을 채우지 않고 막돌을 허튼층쌓기(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쌓는 방법)로 쌓은 모습인데 전남 승주의 낙안읍성 마을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돌담이라고 한다. 소박하게 쌓은 돌 담장이 오래 묵은 집들과 함께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 논

보기만해도 배부른 큼지막한 호박은 논, 돌담과 참 잘 어울린다.
 보기만해도 배부른 큼지막한 호박은 논, 돌담과 참 잘 어울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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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사시사철 언제가도 좋지만 요즘 같은 가을날에 가면 더욱 좋다. 여름날의 화살처럼 따가운 햇살과 달리 따사로운 온기가 느껴지는 가을 햇볕, 열매가 익어 가는 감나무, 밤나무들은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그런 숲이 있는 시골마을에서 가을이 오는 정취를 느껴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조상들의 문화유산이 따분하고 고루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는 곳은 바로 '논'이라고 했다. 그 말에 무릎을 탁 치며 수긍하게 되는 걸 보니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태어난 나도 농경민족의 후손이 맞긴 맞나보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가을이 익어가는 요즘 같은 날, 벼가 고슬고슬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 서면 흐뭇함과 배부른 풍요를 절로 느끼게 되고, 농부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들녘에서 마주친 부지런한 농부, 농모님들의 모습은 몸을 쓰지 않으려 하고 머리만 굴리며 사는 내 삶을 얼마나 돌아보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이루어낸 수많은 것들 중에서 논보다 위대한 창조물은 없었다던 최수연 사진작가의 인상적인 사진집 <논-밥 한그릇의 시원(始原)>에 나오는 풍경들이 마을에 한창이다. 논은 단순히 벼를 재배해서 쌀을 얻는 것 이외에도 이렇게 도시인들의 메마른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것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혜택을 인간에게 베풀고 있다.

거닐면 거닐수록 좋은 외암리 마을.
 거닐면 거닐수록 좋은 외암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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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돌담길 위 나뭇가지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 마당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닭들의 목청 좋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을을 돌다보면 550살 먹었다는 신령스러운 느티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외암민속마을의 당산나무요 수호신이다. 이런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한다. 나무 앞에 서면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산신령 할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다.

문 열린 어느 집 뒤뜰로 들어가다보니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전통 한옥을 가보면 장독대 옆에는 으레 커다란 감나무가 호위하듯 서 있다. 가을 장독대에서는 맛있게 익어가는 장의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아니나다를까 집 구경을 하다보니 외암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고택 '신창댁'이었다.

외암리 마을처럼 구수한 된장국 한상이 5천원.
 외암리 마을처럼 구수한 된장국 한상이 5천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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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노부부의 모습처럼 잘 묵히고 삭힌 장 특유의 향과 맛이 물씬 나는 청국장, 된장국 한 상을 5천원에 먹을 수 있다. 마침 민박손님도 받는데서 하룻밤 묵어갔다. 외할머니 손맛에다 툇마루와 마당 평상에 들어오는 볕까지 좋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된장, 나무, 숲, 돌담, 둥근햇살... 외암리 마을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것들이 많기도 하다. 다른 가게와 식당을 찾는다면 마을 입구에 조성한 '저잣거리'에 모두 모여 있다. 

대가족이 모여 앉아 있는 것 같은 크고 작은 크기의 항아리들과 우물터, 벼 익어가는 논에서 마주친 반가운 고추 잠자리, 경쾌한 메뚜기, 동네 곳곳에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화사하고 코스모스들과 해바라기 꽃. 어릴 적 방학 때마다 갔던 시골 외갓집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해지고 며칠 더 머물고 싶게 하는 마을이다. 선선하고 상쾌한 가을날 저녁,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해의 긴 그림자를 따라,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마을 돌담길을 한가하게 거니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와 밤나무 열매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와 밤나무 열매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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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숙박을 하며 머무르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마을에서 숙박을 하며 머무르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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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ㅇ 지난 9월 26일에 다녀왔습니다.
ㅇ 마을 숙박 및 기타 문의 : 041-544-8290
ㅇ 누리집 : http://www.oeammaul.co.kr



태그:#외암리 민속마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아름다운 마을 숲, #느티나무 , #신창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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