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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29일, 푹 자고 일어나 페이스북을 보았다. 인도로 원정투쟁을 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소식,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는 글 등 밤새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들의 여러 글을 보았다. 그렇게 뉴스피드에 올라온 글들을 보다가 친구가 공유한 어이없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는 29일 경찰청에서 발표한 '생활 속의 법치 질서 확립 대책'에 관한 것이었다. 경찰청은 준법시위문화의 정착을 위해 폴리스라인을 법 질서 확립의 기준으로 삼아 침범행위 만으로도 현장에서 검거, 자정 이후 옥외집회 금지, 정복경찰관을 향해 직접적 폭력을 행사할 경우 일선 경찰서 강력팀이 현장에 출동해 피의자를 체포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하는 등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 '정복을 입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해 생긴 상처에 이제 딱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이 기사를 보고나니 매우 어이가 없었다.

24일, 총파업 때 발생한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했다.
 24일, 총파업 때 발생한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했다.
ⓒ 차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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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 팔에 생긴 상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막기 위해 지난 23일 참가한 민주노총 총파업집회 현장에서 생겼다. 오후 3시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에서 시작된 총파업 집회가 끝난 뒤 우리는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풍물패의 신명난 소리에 맞추어 걸어갔다. 그렇게 새문안로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이번에도 역시 차벽을 세워 행진을 방해했다. 우리는 그 주변을 배회하다 "5시 30분까지 광화문광장으로 모여주십시오"라는 사회자 멘트에 따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쪽으로 우회하여 광화문으로 가려고 했다.

무릎 꿇은 채로 앉으란 경찰, 결국...

검은색 보호구를 착용한 경찰들이 가는 길목마다 막아섰다. 경찰은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미 모든 길이 막혔기 때문에 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입구를 다 돌아다녀보고 마지막으로 간 입구. 그 곳 역시 경찰이 막고 있었다. 길을 열어달라고 항의했다. 길을 막고 선 건 경찰이었음에도 그들은 우리에게 '시민의 통행권을 방해한다'며 해산하라고 했다.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과 몸싸움이 붙었다.

"검거해"라는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경찰은 갑자기 길을 열었고, 몇 명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중에 나도 포함돼 있었다. 그 안의 공간은 매우 좁았다. 나는 넘어져있었고, 사람들은 계속 그 안으로 들어왔다. 샌드위치처럼 깔렸다. 숨이 막혔다. 발목은 방패에 계속 부딪혔고, 손목은 계속 밟혔다. 일으켜달라고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몸싸움이 잠잠해지고 경찰은 나를 일으켜세웠다. 손을 잡아준다든지, 부축을 해준다든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난 경찰에 머리채를 잡힌 채 벽쪽으로 끌려갔다. 경찰은 우리에게 앉으라 했다. 양반다리가 아닌 무릎을 꿇은 채로. 다리가 저렸다.

편한 자세로 앉게 공간을 확보해 달라고 경찰에게 요구했다. 그 후 나에게 온 경찰의 답변은 폭력이었다.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주제에 어디서 편하게 앉으려 하느냐"라며 날 발로 툭툭 걷어 찼다. 때리지 말라고 항의하자 "이 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라며 턱을 잡고 얼굴에 최루액을 직사했다. 뺨도 맞았다. 같이 체포되었던 사람들이 말리자 경찰은 폭행을 멈췄다. 겁에 질린 나는 쪼그려 앉아 벌벌 떨었다.

경찰의 저지선이 뚫리고 사람들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괜찮냐는 물음에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인지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은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었다.

'경찰=국가'라면서 국민에게 폭력을?

9.23 민주노총 총파업집회때 발생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안경이 금이 갔다.
▲ 금이 간 안경 9.23 민주노총 총파업집회때 발생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안경이 금이 갔다.
ⓒ 차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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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제복을 입으면 개인이 아니라 국가예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행된 한 분이 경찰조사과정 중에 경찰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바꿔 생각해보면, 총파업집회에서 발생했던 경찰의 무분별한 폭력이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스스로 자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송전탑 반대 밀양 행정대집행 때도 그랬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강정마을 행정대집행 때도 그랬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에게도 국가는 폭력을 행사했고, 복직을 기원하는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때도 국가는 폭력을 행사했다.

'이 나라가 국민을 위한 국가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더 이상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태그:#총파업, #공권력, #경찰청,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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