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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터호수
 아터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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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에서 야경을 즐긴 우리는 E60 고속도로를 타고 장트 게오르겐(St. Georgen)으로 간다. 장트 게오르겐은 아터호숫가에 있는 인구 4000여 명의 작은 마을로,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터호수(Attersee), 할슈타트(Hallstatt)호수, 볼프강(Wolfgang)호수, 몬트(Mond)호수와 그 주변 마을을 살펴볼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마을이 할슈타트와 장트 길겐이다.

아침이 일어나니 날씨가 좋지 않다. 버스에 오른 우리는 호숫가에 있는 아터세 마을로 간 다음 물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아터호수는 1000m 내외의 산으로 들러 싸인 빙하호로 남북으로 길게 발달되어 있다. 가장 깊은 곳은 깊이가 172m나 되며 아주 추울 때를 제외하고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가 중간에 누쓰도르프(Nuβdorf)와 운터라흐(Unterach)를 지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터호숫가 리츨베르크'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터호숫가 리츨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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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터호수는 세기전환기의 유명한 화가와 작곡가가 즐겨 찾던 곳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가 호수의 북쪽 리츨베르크(Litzlberg)라는 작은 도시로 여름 휴가를 와서는 아터호수의 모습을 그렸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아터호숫가 리츨베르크(1914)', '리츨베르크 술집(1915)'이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1893년부터 1896년까지 여름을 아터호숫가 슈타인바흐(Stinbach)에서 보냈으며, 그가 작곡을 하던 작은 집이 현재도 남아 있다.

우리는 호수의 서남쪽을 한 바퀴 돈 다음 바이쎈바흐(Weiβenbach)에서 R15번 지방도를 따라 바트 이쉴(Bad Ischl)로 내려간다. 바트 이쉴은 아터호수와 몬트호수, 할슈타트호수, 볼프강호수, 트라운호수(Traunsee)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어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인구가 14,000명이나 된다. 그리고 바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온천으로 유명하다.

바트 이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별궁
 바트 이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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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이쉴은 19세기 초 치료온천으로서의 효과가 빈까지 알려졌고, 1823년 처음으로 염분을 함유한 온천이 개장했다. 그 후 바트 이쉴은 요양과 치료, 휴양을 겸한 온천으로 유명해졌고, 오스트리아 수상인 메테르니히(Klemens Lothar von Metternich), 왕족인 프란츠 칼(Franz Karl)과 소피(Sophie) 부부가 이곳을 찾았다. 그러자 1827/28년 바트 이쉴에 호텔이 건립되었다.

1849년에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여름 별궁이 이곳에 세워졌고, 1853년에는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ph I) 황제가 이 궁전에서 바이에른 공주 엘리자베트(일명 Sisi)와 약혼을 했다. 그 후 1914년까지 여름마다 황제가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많은 음악가들이 연주를 위해 이곳으로 왔다. 이곳을 가장 자주 찾은 작곡가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로, 그는 자신을 '황제의 오르가니스트'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외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레하르(Franz Lehár), 브람스(Johannes Brahms) 등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자연과 호수 그리고 마을이 어우러진 할슈타트 풍경

할슈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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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이쉴에서 길은 트라운이라는 작은 하천을 따라 상류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할슈타트호수를 만나게 된다. 할슈타트호수 역시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호수로, 서쪽편 절벽 아래 할슈타트 마을이 위치한다. 할슈타트는 인구가 78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할슈타트 호수, 다크슈타인(Dachstein) 산악지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다크슈타인산은 높이가 2996m나 되기 때문에 여름에만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2100m의 크리펜슈타인산까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기 때문에 언제나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할슈타트만 보기로 한다. 그래서 버스터미널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호숫가를 따라 나 있는 호수로(Seestraβe)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시장광장까지 이어진다.

할슈타트의 루터교회
 할슈타트의 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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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주변으로는 호텔과 여관, 상가와 레스토랑, 선착장 등이 있다. 상가 중 기념품점은 문을 열었지만, 호수에서 배를 타는 사람은 아직 없다. 저 멀리 마을 한가운데 루터교회가 보이고, 호수와 산 쪽으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장광장에 이르기 전 우리는 할슈타트박물관을 만난다. 이 박물관은 일종의 자연사박물관으로 기원전 800-450년 사이 할슈타트시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건너편에는 행정사무소(Gemeindeamt)가 있다.

이제 우리는 시장광장으로 간다. 그곳에는 페스트 퇴치기념탑이 있고, 개신교회인 루터교회가 있다. 마을 중심에 루터교회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할슈타트에는 개신교도가 더 많을 것이다. 교회 안에는 루터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할슈타트를 비롯한 알프스 광산지역에는 루터의 개신교가 많이 전파된 경향이 있다. 이 교회는 1863년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모승천교회
 성모승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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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보고 나서 우리는 산록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으로 올라간다. 이 성당의 공식명칭은 성모승천교회다. 교회 안에 유명한 마리아 제단이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혀 볼 수가 없다. 그 대신 성당 문 위의 벽화를 보고, 정원에 잘 가꿔진 꽃밭을 감상한다. 그리고 호수 쪽 조망도 즐긴다. 성당이 높은 곳에 있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호수 건너 알프스 산맥 조망도 좋은 편이다.

할슈타트는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지 않다. 그것은 아마 날씨가 좋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할슈타트를 찾을 때마다 날씨가 나쁜 징크스가 있는지, 이번에도 비가 좀 내린다. 우리는 갔던 길을 되돌아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온다. 이제 선착장에도 사람들이 모이고, 호수를 유람하는 배가 출발 준비를 한다.   

볼프강호수 즐기기

장트 볼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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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볼프강호수로 떠난다. 바트 이쉴까지는 온 길을 되돌아가고, 바트 이쉴에서 좌회전해 슈트로블(Strobl)로 간다. 슈트로블은  볼프강호수의 동남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곳에서부터 배를 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장트 볼프강(St.Wolfgang)까지 버스로 간 다음 그곳에서 배를 타기로 한다. 배는 전용 유람선으로 장트 볼프강에서 장트 길겐(St. Gilgen)까지 운행한다.

장트 볼프강에 도착하니 날씨가 조금은 좋아진다. 호수 물도 석회석 때문인지 에메랄드색이다. 볼프강호숫가 가운데쯤 위치하고 있는 장트 볼프강은 280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다. 장트 볼프강은 748년 수도원이 지어지면서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1052년 볼프강이 성인이 되면서 이 마을에서 기적과 치유가 일어났고, 주민들은 더 경건해지고, 이 도시를 숭배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볼프강호수에서 바라 본 성 볼프강교회와 바이세스 뢰쓸 호텔
 볼프강호수에서 바라 본 성 볼프강교회와 바이세스 뢰쓸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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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처음 세워졌고, 1314~1318년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지어진다. 이후 15세기까지 순례자 숙소는 확장되었고, 1515년부터 다시 교회 건축이 확대되었다. 이것이 순례교회인 성 볼프강교회다. 이 교회는 경치가 좋고 편안해, 아헨에서 로마로 가던 수도승들이 즐겨 묵곤 했다고 한다. 교회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과 조각이 뒤섞여 있다.
 
유람선을 타고 볼프강호수로 들어가니 장트 볼프강의 모습이 더욱 멋지게 보인다. 배에서 보니 이곳의 집들이 방갈로 형태로 호수를 향해 있다. 이들은 호텔과 숙박시설로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이를 이용한다. 이곳 장트 볼프강에서 하루 이상 묵어가는 관광객이 1년에 8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호수 안으로 좀 더 들어가니 성 볼프강교회와 이곳의 대표 호텔 바이세스 뢰쓸(Weißes Rössl: 흰 말, 白馬)이 이루는 앙상블을 볼 수 있다. 이 호텔은 바로 호수에 접해 있어, 식사와 숙박을 바로 물 위에서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호텔을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볼프강호수 주변 산의 모습
 볼프강호수 주변 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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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호수 주변에는 샤프베르크(Schafberg: 1782m), 쾨니히스베르크 호른(Königsberger Horn: 1621m), 츠뵐퍼호른(Zwölferhorn: 1521m) 같은 높은 산들이 있다. 이들 산까지는 걷기길이 잘 조성되어 모두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이 중 츠뵐퍼호른을 장트 길겐에서 케이블카로 올라갈 것이다. 장트 길겐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어머니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장트 길겐에서 만난 모차르트 하우스

장트 길겐의 모차르트 하우스
 장트 길겐의 모차르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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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5분 정도 배를 타고 우리는 볼프강호수 서북쪽에 있는 장트 길겐에 도착한다. 장트 길겐은 장트 볼프강보다는 평지에 자리 잡은 평화로운 마을이다. 인구는 3800명쯤 된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모차르트 하우스로 간다. 이 집은 모차르트의 어머니인 안나 마리아 페르틀(Anna Maria Pertl: 1720~1778)의 생가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 볼프강이 죽자, 페르틀 일가는 잘츠부르크로 이사를 한다.

잘츠부르크에서 안나 페르틀은 1747년 레오폴트 모차르트(Leopold Mozart: 1719~1787)를 만나 결혼하고, 모두 일곱 자녀를 낳는다. 그러나 이들 중 볼프강 아마데우스와 마리아 안나만 살아남는다. 음악 신동이자 천재였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6살 때부터 유럽 전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고,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리고 난넬(Nannerl)이라 불린 마리아 안나는 외할아버지의 후계자였던 요한 밥티스트 베르톨트(Johann Baptist Berthold)와 결혼했고, 1784년부터 1801년까지 장트 길겐의 모차르트 하우스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이 집이 모차르트 하우스가 된 것은 난넬 때문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는 이 집을 결코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세기까지 이 집이 모차르트의 어머니 생가라는 사실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집이 재조명된 것은 1905년 이 지방 판사였던 안톤 마치히(Anton Matzig)에 의해서다. 그는 이 집의 천장에서 오래된 악보를 발견했고, 고증을 거쳐 이 집이 모차르트가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모차르트 모녀의 부조
 모차르트 모녀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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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을 기념해서 1906년 8월 건물 벽에 모차르트 모녀의 부조를 설치했다. 1991년 이 집 앞에는 대리석 받침 위에 서 있는 소녀상이 하나 세워졌다. 소녀는 머리 위로 둥근 고리를 들고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소녀가 모차르트의 어머니인 마리아 안나 페르틀이며, 그녀가 쏟아내는 것이 아들 모차르트에게 주는 음악적 영감이다. 1991년은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다.

모차르트 하우스는 현재 박물관, 기념품점,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장트 길겐 실내악단의 연습장 겸 공연장으로도 쓰인다. 장트 길겐 사람들은 이곳 볼프강호수에 와서 경치도 즐기고, 문화도 향유하고, 축제에도 참여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런데 식당 이름도 난넬이다. 이곳 장트 길겐에 오면 모차르트가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나 보다.


태그:#아터호수, #할슈타트호수, #볼프강호수, #장트 볼프강, #장트 길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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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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