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민 여성비하, <맥심 코리아> 표지 사건 등으로 '여성혐오'가 한국사회의 큰 문제로 부각됐습니다. 최근 '메갤'(메갈리안)이 등장해 새로운 여성운동 흐름을 만들었지만, 운동방식이 폭력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에 '메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최현지 시민기자가 보내와 싣습니다. 관련한 다양한 논쟁글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
최근 트위터 등 SNS에서 가장 논쟁적인 단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페미니즘' 그리고 '여혐(여성 혐오)'이다. 익명성이라는 천막이 드리워진 공간에서 "누리꾼들"은 자신이 겪은 기상천외한 경험담 혹은 '보고 들은바'를 나누고, 격한 동의나 폭발적인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어느 때보다도 '여성' 이슈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몇 달 전 혜성처럼 등장한 '메갤'(
http://megalian.com)은 불붙은 논쟁의 중심 격전지다. 여성 문제를 커뮤니티의 최정점에 두고 게시글과 댓글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여성단체를 후원하는 방법,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에 민원 제기, 한국성폭력상담소 몰카 사례 제보 및 모니터링단 모집 공고 등 여성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게시물과 그에 따른 논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메갤' 덕분에 각종 데이트 성폭력, 강간, 성희롱 같은 경악스러운 현실이, 그리고 수많은 언어적 성차별의 사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들에게 빠른 속도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맥심 코리아>가 9월호에 여성 납치·살해를 연상시키는 표지를 싣자, 강력하게 항의해서 <맥심 코리아> 측이 '9월호 전량 회수·폐기' 조치를 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불에 얼마 전부터는 '부채질'이 시작됐다. '메갤 유저'들이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전략이다.
미러링은 그동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가해온 혐오 발언, 차별 발언들을 '거울반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베에서 '김치녀 삼일한'(삼일에 한번씩 팬다)'라고 한 것을 메갤에서는 '씹치남('김치녀'에 대응하는 '김치남'을 속되게 이르는 말) 숨쉴한(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팬다)'이라는 말로 패러디하는 방식이다. 연예인 같은 공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특정 다수의 일반 남성들이 써온 '여혐' 발언들을 성별만 바꾸어 똑같이 가하는 이 전략은 습관적 발화 속 여성 혐오를 폭로하는 효과를 의도한 만큼 뭇 여성들에게 유쾌, 상쾌, 통쾌함을 안겨줬다.
그런데 '미러링'이 불화살처럼 날아다니는 지금, 어딘지 불편한 구석이 생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일대일대응 방식의 일차원적 복수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불의를 당했으니 나의 복수는 정당하다'라는 논리는 너무도 쉽게 복수하려는 주체를 '정의의 사도'로 만들기 때문에 위험하다. 다른 변수들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수월하게 간과된다. 이런 우려는 기우일까.
'정의의 사도'가 '매도의 구실'이 될 때며칠 전 뮤지션 아이유와 장기하가 연인 관계라는 사실이 미디어에 보도된 후 트위터의 정두리(@du******)씨가 "아이유 너는 그러지 말아야지. 미쳤냐"라는 트윗을 적었다. 정두리씨는 개방적인 성을 다루는 '젖은잡지' 제작자이자 '메갤' 유저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는 페미니스트다.
뒤이어 "삼촌팬들이 강력 코르셋이라도 채웠나"라고 썼는데 이는 11살 나이 차이가 나는 장기하를 두고 한 말로, 나이 차이 많은 남성과 연애하는 것 자체를 일반화해 문제시했다. '코르셋'이란 남성이 여성에게 씌운 억압적 족쇄로서의 행동 규범을 뜻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정두리씨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정두리씨는 "물론 남의 연애에 왈가왈부 하는게 웃기다고 하지만 원래 트위터는 사담의 공간 아닌가요?" "제가 누구를 욕했네 계급을 나눴네 어쨌네 하기 이전에 늘 여성연예인이 공식 연애했을 때 처해졌던 불특정 다수의 성희롱과 후려치기의 실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네요"라는 말로 해명을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두리씨는 문제적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는 않은 채 '정의의 사도'를 자임했다.
실상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니었다. 그는 '남성'인 장기하가 아니라 '여성'인 아이유를 상대로 비난했다. 게다가 그것이 그동안 '메갤'에서 자유롭게 내버려 두라고 외쳐왔던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비난이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컸다. 당연히 비판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메갤'에서 '갓(god)두리'라고 불리는 정두리씨를 '메갈리안'들은 한목소리로 옹호하기 바빴다. 어디 옹호뿐인가.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격한 매도가 쏟아졌다. '우리'는 옳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너희'는 뭘 모른다는 식이었다. 마치 페미니즘의 든든한 기둥 하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듯이.
"반발적 자아인식" - '여혐혐'의 정체성은 어디에 인도 출신의 철학자 아마티아 센은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이라는 저서에서 서구와 비서구, 혹은 반(anti)서구로 나뉘는 천편일률적인 분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어느 개인도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역설한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종교나 문명 같은 큼직한 단위들이지만, 이를 '젠더' 분야에서 바라봐도 무방하다고 본다. 즉, 남성이나 여성 또한 성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만 나뉘지는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표현 중 "반발적 자아인식(reactive self-percep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식민화된 정신은 식민지 권력과의 관계에 기생적으로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 관계에 종속된 인식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자극하고, 세계 전체를 왜곡해서 독해하는 데 이바지한다.
'메갤'의 일부 세력은 '남성'이라는 젠더 전체를 '적'으로 파악해 그것만 파괴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혹은 최소한 기존의 견해를 전복 시킬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분노에도 여러 방향이 있다. 분노 이후 차분히 가라앉아 감정을 초탈한 '현자 타임'을 한동안 즐길 수도 있고, 더욱 많은 분노를 재생산하는 데에 쓸 수도 있다. '여혐'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기치로 모여든 것이 '메갤'이라면, '여혐' 논란의 최전선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점검해봐야 한다.
혐오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일시적 충격 효과로써는 탁월하지만, 이내 그 효과는 사그라지고 모두에게 '불쾌'가 남는다. '메갤' 유저 중 남성에 대한 "반발적 자아인식"을 기존에 강하게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메갤'에서 보이는 발화에는 "반발적 자아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너무도 신속한 '여혐' 낙인("너도 여혐이네"), 그리고 그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몰아가기'.
최근 '메갤'이 보여주는 반발적 활동이 우려스러운 것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데서 그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메갤'이 '미러링'을 시도하기 시작한 시점 이래로, 줄곧 '남성'의 언어습관과 사고를 통째로 빌려왔으므로 그것을 반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사유방식, 즉 '비하' '무시' 혹은 '차별'이라는 기제가 사용자들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될 수 있다. '메갤'이 계속해서 '미러링'만을 구사하는 이상, 그들은 본질적으로 대외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미러링' 거울 속 이미지도 '나'다'미러링'이 정말로 '미러링'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발화 뒤에 "이것은 이러한 현상 혹은 태도에 대한 '거울반사'다"라고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칫 또 다른 단순한 혐오발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걸 굳이 부연해야 알아듣니?"라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 목소리는 배제의 논리를 자체 내에 포함하므로, 그래서 폭력적일 수 있으므로.
잘못된 발언에 대해 "너희(라는 단어 역시 모호한 일반화를 포함하지만)가 한 것과 똑같이 했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것은 기존에 존재한 잘못 그 자체를 시정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잘못을 재생산함으로써 '잘못' 바이러스를 더욱더 증식시키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발언의 당사자가 반성하거나 성찰하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어떤 운동이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지점은, 기존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열띤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해오지 않았거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외부의" 사람들에게까지 문제의식이 확산될 때다. '메갤' 사용자들이 '너희는 아직도 우리의 전략을 이해를 못 하겠지'라는 우월감으로 가득해 보이는 건 나만의 걱정일까. 잘못은 언제나 '(선한)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있지 않았나.
거울 속 이미지가 어떤 변형도 왜곡도 없이 동일하게 보이는 까닭은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기 때문이다. 단지 좌우가 바뀌어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우리 눈에서 나온 빛을 정말로 우리 눈에서 나왔다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은 이러한 '착각'이 '메갤'에서 나타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여초' 커뮤니티 내부에서 오가는 것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온라인상의 운동을 오프라인과 연결 지어 실천했다는 점에서 '메갤'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여성혐오 이슈들은 '메갤'이라는 후원군이 없었다면 어쩌면 공론화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비로소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고, 이에 '메갤'이 결정적인 지지자로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폭로'는 단발적인 충격으로 작용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통쾌하게 하거나, 놀라게 하거나, 분노하게 한다. 잘못, 부도덕, 범죄를 폭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도덕적이다. '메갤'은 최초로 '미러링'을 시도해 나름대로 큰 규모의 '충격과 공포'를 랜선 속 세상에 퍼뜨렸다. 그러나 '폭로'가 영원토록 이루어질 수는 없다. '폭로' 이후가 중요해지고 있다. "너희도 당해봐라"만을 끊임없이 '시전'하는 집단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깊이 혐오한 대상과 자신이 닮은 것 같아 보일 때, 우리는 얼마나 뼈저린 수치심을 느끼는가. 과격하게 굴지 말라는 게 아니다. 더 나은 전략이 필요하지 않은지 고려해보라는 말이다. 분별력을 가지는 것과 나이브한 것은 다르다.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 균열을 내기 위해선, 거울 앞에서 자신과 동일해 보이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패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