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증후군(MERS)은 전염병의 국제적 확산 위험성보다 중국인 여행객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가를 체험하게 되었다.
양국은 여행객이 1천만 명에 다다른 인적 교류 이외에도, 무역액이 3천억 달러를 향할 만큼 기적적인 성장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수교 첫해인 1992년을 제외하고 매년 흑자무역을 유지하면서 금년 8월까지 4749.5억 달러의 누적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에 우리의 무역흑자 총액이 4165.4억 달러였으므로, 중국무역이 없었다면 우리는 적자무역을 한 셈인 것이다. 이 통계는 중국이 한국경제에 기여한 정도를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
한편, 2015년 8월 말 기준으로 중국은 수출(25.5%)과 수입(20.0%)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해, 미국(13.3%, 10.1%)과 일본(4.9%, 10.5%)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비해 기술력이 앞서 있는 한국은 중간재 수출을 통해 중국의 성장에 기대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즉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면 일본의 흑자가 늘어난 것처럼, 일본-한국-중국이 기술력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 분업체계를 통해 중국의 수출 증가와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가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대중 의존도 심화의 그림자
중국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빛은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 심화라는 그림자를 낳았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진하듯, 한국경제는 중국의 영향권으로 빠르게 쏠려가고 있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이 중국 증시와 동조현상을 보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의 증시하락은 곧바로 한국증시에 충격을 주고,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는 한국의 수출과 무역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제 "중국경제가 재채기를 하면 한국경제는 독감에 걸린다"는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외국자본 비율이 높은 한국증시는 경제대국의 영향이 큰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미국 증시를 반영한 주가의 움직임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증시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다. 즉 올해 코스피와 상하이 지수의 상관계수가 0.78에 달해 미국과의 상관계수 0.57을 크게 상회한 것이다.
이는 한국증시가 오전 9시에 개장하지만, 중국증시가 개장하는 10시 30분이 되어야 주가동향의 확실한 방향을 알 수 있는 현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또한 양국 무역의존도의 불균형은 국가 간 협상력의 비대칭으로 나타난다. 이미 2000년 한중 마늘분쟁을 통해 협상력 비대칭에 따른 쓰라림을 경험한 우리가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동시에 또 다른 카드를 늘 준비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비대칭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런 비대칭 속에서도 많은 이익을 확보해왔다. 따라서 대중 경제관계는 또 다른 빛으로 그림자를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전략을 추진하고,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타결시켜 중국과 경제블록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정치·경제 대전환의 환경에서 우리는 중국의 시장, 정부정책, 산업구조 변화와 국제경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중국 신창타이와 내수시장 확대전략
지난 30년간 평균 9.3%의 성장을 이룩한 중국이지만, 작년에는 24년 만에 7%대의 성장에 멈췄고 금년에는 그조차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이미 중속성장의 시대로 접어든 사실을 인정하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하겠다는 것이 바로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이다. 이는 더 이상 고속성장의 시대는 없다는 선언인 동시에 산업구조 고도화와 개혁을 추진하려는 새로운 전략의 도입인 것이다.
이 선언의 배경에는 중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과도한 부채와 생산 공급과잉 및 금융의 저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부채차입과 과잉·중복투자를 통해 고속성장을 해온 중국경제는 외적 성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4조 위안의 재정을 투자하면서 인위적인 건설투자와 내수활성화 정책을 강행한 결과 생산과잉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 결과 투자비중이 GDP 대비 47%에 달해(2013년 기준) 적정수준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글로벌 수요부족과 겹치고 중국증시 거품이 꺼지면서면서 경제위기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중국은 투자주도 성장전략에서 소비주도 성장전략으로 전환하면서 노동자임금인상과 도시화를 통한 수요창출에 전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여전히 기대 이하이다. 중국은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을 2배 올린 것을 비롯하여 평균임금을 35.1% 인상해 구매력을 높이려는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매년 도시화율을 1%씩 올려 현재 52%가 도시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수입·소비·투자·금융 부문의 감소로 성장동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한 실정이다. 올 8월까지 수출은 전년 동기 1.4% 감소했으며, 수입증가율은 14.9%, 소비증가율은 10.5%, 투자증가율은 11.2%로 낮아졌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를 제외하고는 신규주택 상승률이 –4.1%에 머물러 부동산 구매심리도 매우 위축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거품이 우려됐던 예전과 달리 건설경기 하락으로 인한 건설사 도산과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나마 중국이 일자리 1천만 개 창출을 위해 8% 성장을 유지했던 것에 비하면, 최근 7%대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늘지 않은 것은 민간영역의 서비스업이 일정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은 생산성에 비해 고용효 과가 높아 실업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구하면서 구조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힘도 일정 정도 여기에 근거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AIIB와 일대일로 그리고 TPP 중국은 AIIB를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즉 국내 투자 과잉을 해소할 기회를 마련하고, 중국의 자본수출을 뒷받침하는 다국적 금융기구를 창설하여 미국의 금융패권에 균열을 내고, 주변국과의 인프라 연결을 통해 경제적 협력 이외의 정치안보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3대 경제발전축'을 재수립하고,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하며, 해양통로를 확보하여 미국의 중국봉쇄를 무력화하려는 그랜드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AIIB는 'BRICS개발은행'과 함께 이 계획을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가 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각국이 GDP에 근거해서 출자토록 함으로써 금융패권을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났으며, 미국과 달리 참여국의 지분을 보장하는 체계를 제시함으로써 명분과 실리를 확보하고 있다. 그 결과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자본투자를 희망하는 유럽국가들까지 57개국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미국의 저지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이에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10월 5일 타결함으로써, 세계 GDP의 40%인 28조 달러와 교역량의 1/3을 차지하는 12개 회원국을 중국이 배제된 경제협력체로 끌어들여 반격의 채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중국은 총 GDP규모 22조 달러와 34억 명이 가입대상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연내 타결을 추진하고 있어, 아태지역에서의 미중 경쟁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한중 경쟁구도 형성과 우리의 대응 한국은 중국시장과 경제전략 변화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첫째, 대중 투자 증가율은 2010년 19%에서 2014년 –10.3%로 추락했다. 급격한 임금상승과 외국인기업에 대한 특혜가 사라지자 투자처를 동남아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2014년 대한 투자가 6억3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374% 증가해 대조를 보인다.
둘째, 기술격차가 날로 좁혀지고 있어 중국의 수입대체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중 기술격차는 2012년 1.9년에서 2014년 1.4년으로 좁혀졌고, 중국의 중간재 수입 비중은 2000년 64.4%에서 2014년 49.8%로 떨어졌다. 매년 1%포인트의 수입대체가 진행된 것이다. 이는 중간재 수출이 73%를 차지하는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중국의 산업정책이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은 '7대 신흥산업 육성계획'과 '제조업 2025전략'을 통해 산업구조 고도화와 전략산업 육성 및 지속발전가능산업 위주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자본집약적 산업 외에는 중국시장에서 생존이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먼저, 매우 어려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중간재 수출 비중을 줄이고 소비재·자본재 등 최종재 비중을 확대하는 수출구조 변화가 추진돼야 한다. 다음으로, 중국의 2~3선 도시를 중심으로 신흥시장을 발굴해야 한다. 이는 중국의 도시화 성장전략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면서 성장거점과 연계하는 지역공략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AIIB에 적극 참여하여 아시아 인프라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우리는 인프라사업에서 중국과 일본에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부대개발과 중부굴기 등 중국이 원하는 개발지역에도 과감하게 진출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경제협력기구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 TPP에 가입하는 것은 일본과 간접적인 FTA를 체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고, RCEP 협상에서는 TPP에 맞서려는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익을 확보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다만 일본이 RCEP을 통해 일본-한국-중국의 '공급사슬'을 강화해 '아시아의 독일'이 되고자 하는 시도에 대응할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들어 중국시장 확대로 인한 '중국효과'의 가장 큰 수혜국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한국경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여전히 10조 달러의 GDP 규모를 가진 나라이고 2020년에는 10조 달러의 내수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AIIB를 통해 8조 달러의 아시아 인프라시장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비록 현재는 중국경제 연착륙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속성장을 통해 여전히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에게 빛과 그림자의 양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그림자를 지우는 능력은 우리가 빛을 낼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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