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미국이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4개 핵심기술 이전 불가 입장을 재확인함에 따라 KF-X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만나 KF-X 핵심기술 이전 문제를 협의했으나 "조건부 KF-X 4개 기술이전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카터 장관의 이런 발언은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한 장관이 출국 전 미측에 핵심기술 이전 불가 재고를 요청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 대해 일각에서 체면치레도 못할 '뒷북 군사외교'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측은 자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을 들어 우리 정부가 요청한 AESA(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와 IRST(적외선탐색 추적장비), 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RF 재머(전자파 방해장비) 등 4개 핵심기술 이전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기술보호를 규정한 이 규정에 따라 민감하거나 핵심적인 군사기술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제3국으로 이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전투기의 눈과 귀 등에 해당하는 이들 4개 기술은 우리 공군 주력기인 KF-16급 이상의 고성능 전투기를 개발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 기술로 꼽히고 있다.
AESA 레이더는 공중전에서 적기를 먼저 식별하고 지상의 타격 목표물을 찾아내는 데 필수적인 장비이다.
정보처리 속도가 기계식 레이더보다 1천배가 빠르고 전투능력도 3~4배가량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15K나 KF-16은 기계식 레이더를 쓰고 있지만 F-22나 F-35 스텔스 전투기는 AESA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IRST는 공대공 전투 상황에서 위협표적의 적외선 신호를 탐지 추적하는 데 이용된다. 적기가 미사일을 쏘려고 조작할 때 이를 탐지해 조종사에게 알려주고 조종사가 즉각 대응토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전자광학 및 적외선 센서를 통해 주·야간 표적을 탐지 추적하는 EO TGP는 레이저를 이용한 무장 유도 및 지상표적 정밀 타격에 이용되는 장비이다. RF 재머는 고출력 전자파를 쏴 적의 전자장비를 먹통으로 만든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유럽과 이스라엘 등 국외 업체 협력과 국내 독자개발로 이들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으나 R&D(연구개발) 특성상 개발 성공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AESA 레이더는 ADD 주관으로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참여해 2006년부터 개발 중이며 현재는 지상시험 중에 있다. 레이더 개발에 30여 개 기술이 필요한 데 이중 5개 기술은 국외 업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기술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외 업체와 협력으로 이런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완제품을 도입해 전투기와 체계통합은 불가능하다. 외국 부품을 그대로 가져와 전투기에 탑재된 미국산 장비에 끼워 넣을 때 오작동이 발생해 먹통이 되기 때문이다.
ADD는 2021년까지 AESA 레이더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이런 계획에 대해 "황당한 얘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KF-X는 개발 목표 연도는 2025년이다.
미측은 이번 국방장관 회의에서 우리 측의 체면을 감안한 듯 KF-X 사업을 포함한 방산기술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 운영에 합의했다.
이 협의체에는 외교, 국방 등 양국 여러 기관의 관리나 전문가들의 참여가 예상되지만 어떤 수준의 관리가 책임을 지고 어떤 범위까지 협력을 할지는 아직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 협의체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 동북아 지역의 민감한 군사문제인 미사일방어까지도 논의할 수 있는 채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민구 장관과 카터 장관이 방산기술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운영키로 합의한 협의체는 애초 회의 의제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협의체의 책임자가 누가될지, 협력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 등은 앞으로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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