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두 가지를 주목했다. 하나는 국정화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는 대목이다. 국정화 찬반 응답자는 42%로 같았다. 언론에서 주목한 또 다른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43%로 지난주 대비 4%p 하락했다.
지난 8·25 남북 합의 직후 50% 중반까지 치솟은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주까지 40% 후반을 기록하다가 이번 주 43%로 하락했다. 부정평가는 44%로 긍정평가를 역전했다. 지난 9월 첫주만 하더라도 긍정평가(54%) vs. 부정평가(38%)로 대통령을 지지하던 국민 여론이 한 달여 만에 요동을 친 것이다. <갤럽>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었다. '역풍'을 맞은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내용을 보면 뚜렷한 경향이 보인다. 수도권 여론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지정당 없음'의 무당층 성향 국민들도 이탈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과 여권에는 가장 큰 고민 지점일 듯싶은 '50대'의 지지율에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들을 움직인 커다란 이슈는 '국정교과서'였다.
싸늘해지는 수도권 민심, 속 타는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를 지역별로 살펴보자. 서울지역 응답자의 39%가 긍정평가, 48%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주 대비 긍정평가는 5%p 하락, 부정평가는 1%p 상승했다. 경기/인천지역의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 지역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 부정평가는 46%였다. 지난주 대비 긍정평가는 7%p 하락, 부정평가는 6%p 상승했다.
수도권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교과서 국정화' 여론조사 결과와 대단히 유사하다. 서울지역의 38%가 교과서 국정화 찬성, 45%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경기/인천지역 역시 43%가 찬성, 46%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50%에 달한다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교과서 국정화를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이끌고 있는 형국이다.
차기 총선을 6개월여 앞둔 민감한 시점,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교과서 국정화'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수도권 민심을 의식한 듯 수도권 의원들의 다른 입장이 들린다. 수도권 3선인 중진 정두언(서울 서대문구을) 의원이 앞장섰다. 그는 15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국정교과서는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며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골적으로 당론에 반기를 든 것이다.
하태경 의원 역시 15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을 때는 야당의 2배도 되는데 국정 교과서 관련 여론은 찬반이 비슷하다"며 "총선을 염두에 둔다면, 특히 수도권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의원 역시 지난 12일 "국정교과서는 아직 당론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론으로 채택된 15일에는 "이미 당론으로 채택됐고, 개인적 의견을 얘기하진 않겠다"고 말해 개인적 의견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하 의원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지난 3월 셋째 주 <갤럽>은 '초중등 무상급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슈는 '전면 무상급식 vs. 선별적 무상급식'이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급식정책 전환에 따른 여론조사였다. 야당은 전면 무상급식, 여당은 선별적 무상급식 입장이었다.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실제 결과는 달랐다. '전면 무상급식(31%) vs 선별적 무상급식(66%)'이었다. 커다란 차이로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었지만 '선별적 무상급식' 또한 역풍을 받았다.
전체 30%에 달하는 무당층, 입장 정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주목할 두 번째 대목은 '무당층'의 입장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명확하게 입장 표명을 했다. 야당도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국정교과서'는 정치성을 띠게 된 것이다. 새누리당 지지자 중 18%만 국정교과서에 '반대'했다. 새정치연합 지지자 중 24%만 국정교과서에 '찬성'했다. 이 정도면 각 정당의 지지층은 대부분 결집한 상태로 해석된다.
각 정당에서 선명한 대립을 주고받은 상황에서 각 당 지지세력을 출렁이게 할 반전 계기가 갑자기 등장하리란 쉽지 않다. 국정교과서 찬반 여론을 뒤바꾸는 세력은 결국 '무당층'이 될 전망이다. 30%에 달하는 '무당층'의 입장은 어떠하며, 향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가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무당층'의 26%만이 국정교과서에 '찬성'했다. 수도권 민심 이반과 더불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49%는 '반대'했고, 나머지 25%는 '모름/의견거절'이라고 응답했다. 이 25%의 '모름/응답거절' 수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 지지자 중 14%, 새정치연합 12% 지지자의 '모름/응답거절' 수치에 비해서 두 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무당층'의 이탈이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영향 중 하나로 분석됐다. '무당층'의 24%가 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긍정적 평가, 5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6%p 하락, 긍정평가는 4%p 상승했다. 이들이 갑자기 이탈한 계기 역시 국정교과서 이슈였다.
50대에 나타난 의미 있는 변화, 그리고 이후 상황 전개는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박 대통령 전통적 지지기반인 '50대' 연령층에서 확인되는 의미 있는 변화다. 50대의 59%가 박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32%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과반이 넘는 지지를 얻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전주 대비로 비교해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주대비 긍정평가는 11%p 하락, 부정평가는 12%p 증가했다. 지난주 70% 지지에서 금주 59% 지지로 하락, 부정평가는 지난주 20%에서 금주 32%로 증가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의미 있는 수치다.
50대의 이탈 이유 역시 '국정교과서' 이슈로 분석된다. 50대 연령층의 57%가 국정교과서 '찬성' 입장을 밝혔다. 29%는 '반대', 15%는 '모름/응답거절'이었다. 앞서 확인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수치와 대단히 유사하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 계층을 국정교과서 이슈로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50대가 국정교과서 이슈로 박 대통령 지지에서 이탈한 것이다. 50대 지지층에서도 역풍이 확인된 것이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맞은 역풍 세 가지를 확인했다. 수도권의 민심 이반, '무당층'의 이탈, 그리고 50대 연령층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변화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응답층은 '국정교과서' 이슈로 인해 박 대통령에게서 이탈했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싸움, 과연 반전의 계기가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먼저, 역사학계가 등을 돌렸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거부를 유행처럼 선언하고 있다. 국민 여론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민감한 여론 흐름을 간파한 보수언론은 여론몰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차기 총선을 반년 남겨둔, 지역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이 정두언 의원을 필두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찬반여론 '42% vs 42%'에서 애써 위안을 찾는 모습이나,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국정교과서' 추진동력을 얻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수도권과 무당층, 그리고 50대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이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된다면 당-청 관계의 재정립도 예상된다. 유승민 의원을 비롯 개혁파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쯤되면 8·25 남북합의 이후에 순풍에 돛 단 것처럼 보였던 박 대통령이 갑자기, 왜 '국정교과서' 이슈를 전면에 부각시켰는지 궁금해진다.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