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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직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기제는 승진 제도다. 남자 초등교사 99퍼센트가 승진 준비 대열에 합류한다. 젊은 교사들 중 상당수가 교직 입직 직후부터 승진을 준비한다. 권역 내 교육대학 선․후배 관계인 초등교사들은 그들만의 강력한 '카르텔'을 바탕으로 공고한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특이하게도(!) 배구 클럽과 같은 '사조직'이 이들을 이끈다. 클럽의 선배 교장, 교감들은 (수업이 아니라) 배구를 잘하고 말 잘 듣는 후배에게 승진 비법을 전수한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동업자 의식'이 승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지난 여름, 교포 교사(교장 되기를 포기한 교사)로 살아가는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는 승진파 교사들 간의 관계를 '조폭 의리'에 빗댔다.

<교사가 교사에게 -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교사가 교사에게 -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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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되겠다고 교직 사회에 들어서는 교사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승진에 목을 맨 채 점수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젊은 교사들 얘기를 듣고 보니 내 의문이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 교장들의 직무 만족도가 그 방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초등학교 교장은 1위,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장은 49위로 나타났다. 평교사는 90위였다. 2년간 우리나라 759개 직업의 현직 종사자 2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평판, 정년보장, 발전가능성, 시간적 여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관적으로 평가한 결과였다고 한다.

권재원 서울 성원중학교 교사는 <교장 제도 혁명>에서 교장의 직무 만족도가 높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교장은 별로 일 안 하고도 월급 받는다. 누구의 제어도 받지 않는 유일한 행위자로서의 권력을 만끽한다. 지나친 풍자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교사 승진 제도 혁파가 교육 '혁명'을 위한 유효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이성우 선생님이 <교사가 교사에게>에서 주목한 지점도 여기다.

'이 땅에서 교사인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선택과 갈등은 '승진'이라는 문제입니다. 이 땅에 교사는 승진을 이룬 사람과 승진을 포기한 사람이 있을 뿐 이 두 존재 양식을 벗어난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단언컨대, 교사치고 승진을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겠습니다. 이렇듯 승진을 꿈꾸는 이는 많은데 승진 자리는 적기 때문에 승진의 길은 이런저런 추함과 부조리를 파생시킵니다. 학교교육에 약간의 고민이라도 품고 살아가는 교사라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가 바로 이 승진제도에서 기인한다는 문제의식을 품을 겁니다.'(5쪽)

저자는 교사가 '승진'이라는 이름의 '외발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에 사로잡히는(passive) 순간 더 이상 선량한 교사이기를 그친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온갖 반교육적 작태들의 대부분이 '승진'이라는 외발적 동기를 바탕으로 빗나간 정념(passion)에 사로잡힌 교사들, 왜곡된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부에 있는 소수의 승진파들에 의해 빚어진다고 일갈한다. 교사를 교사로 움직이게 만드는 '내발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강조하는 이유다.

'가르침이라는 교사의 행위(action)는 '액션'이란 명사와 조응하는 형용사의 의미처럼 능동적(active)인 것으로서, 그 동기는 교육혼이란 낱말로 대변됩니다. 학생을 신명나게 가르칠 때 흥을 느끼고, 그 능동적인 스스로의 액션에 힘입어 학생이 지적․정서적으로 변화를 보일 때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이것이 교사입니다. 기실 교사의 존재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즉,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학생들에게 최선의 가르침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그 열의가 교사 존재론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입니다.'(44쪽)

저자는 교사를 "걸어 다니는 교육과정(walking curriculum)"으로 규정한다. 교사의 진솔한 삶 자체가 학생들에게 가장 위력적인 교육 행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저자가 이 책 전체에 걸쳐 학생들과 맺는 '관계'와 학생들을 향한 '사랑'을 강조한 이유일 것이다.

'관계'와 '사랑'에 바탕을 둔 교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생활지도'라는 말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통해 알아보자. 생활지도는 수업과 더불어 교사의 양대 본분에 해당한다. 저자에 따르면 영어로 'life guidance'쯤에 해당하는 말을 일본 학자가 오역해 쓴 뒤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 지끔까지 쓰이게 된 말이라고 한다.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군사독재 시대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돼 온 교육관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life guidance'는 "실의에 빠진 아이의 손을 붙잡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그런 교사의 자세인데, 우리네 학교에서는 실내화 신고 바깥 출입 못 하게 하는 것이나, 약간이라도 개성을 발휘하는 청소년 학생의 복장을 단속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음에 통탄합니다. 이건 교육이라 할 수 없고, 최고로 좋게 봐서 훈육(discipline)도 아닙니다. 아동학대라 고백해야 합니다.'(58쪽)

교직은 전문직이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는 교원의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과 더불어 전문성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육기본법> 제14조 제1항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교원의 전문성은 존중되며"라고 규정한다. 유네스코는 일찍이 1966년 <교원 지위에 관한 권고> 제6항에서 "교원은 전문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명문화했다.

법전이 규정하는 대로 교사들이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위상과 책무를 가질까. 현실은 다른 것 같다. 대표적인 전문직 종사자인 의사가 환자 치료를 하다 의사협회에서 보낸 공문을 처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만든 '국가치료과정'에 맞춰 환자를 치료하라는 압박을 받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교사는 공문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사이사이 수업을 한다! 교사들은 획일적인 국가교육과정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를 따라 가르쳐야 한다. 교직이 전문직이고 교육의 본질이 수업에 있음을 고려할 때 본말전도다.

교사는 교육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거나 교육당국이 만들어 놓은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말단 행정 집행자에 불과해 보인다. '평교사'인 저자가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계의 부속품이나 말단 행정 집행자처럼 살아가는 이 땅의 40만 교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다.

'릴케는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무엇, 자기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무엇은 신뢰해도 좋다고 말이죠. 이 내적 필연성에서 말미암지 않은 무엇은 반드시 허구와 위선으로 잠식될 것입니다. 교사의 필연성은 가르침에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교단에 서는 것이 부끄러운지는 모르겠지만, 젊을 때부터 교단을 탈출해서 관리직으로 진출하려는 자세가 훨씬 부끄러울 일입니다.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 침잠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이 같은 대답이 들려올 겁니다.'(6쪽)

<교사가 교사에게: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이성우 지음 / 우리교육 / 2015.6.26. / 231쪽 / 1,30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교사가 교사에게

이성우 지음, 우리교육(2015)


태그:#<교사가 교사에게>, #이성우, #교장 승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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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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