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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고시 된 지난 3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5인 미만 인터넷 언론'의 등록을 제한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려면 취재·편집 5인 이상의 상근기자를 채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4대 보험가입을 필수로 한다. 2016년 최저임금이 시급 6030원임을 감안할 때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려면 월 1천만 원 이상의 운영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다수 인터넷신문의 광고수입이나 여건으로 봤을 때 사실상 대규모 인터넷신문 외에는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 기존 인터넷신문은 1년의 유예기간을 둬 소급적용한다고 한다. 결국 이대로 갈 경우 1년 뒤면 등록된 인터넷신문 5950개 중 5000개 이상이 실제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을 통제하는 문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막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사실상 인터넷언론의 입을 막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앞으로 큰 혼란이 우려된다.

정부가 이처럼 느닷없이 인터넷신문 통제에 나선 이유는 '사이비 언론'의 범람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이비언론이 비단 인터넷신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지역에서는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종이지역 신문의 폐단을 지적해왔고, 언론단체들은 거대신문과 종편의 경우가 더 심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왜 인터넷신문을 통제하려 드나 

지난 2005년 7월 15일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식. 정부의 인터넷신문 통제로 인터넷신문들이 퇴출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5년 7월 15일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식. 정부의 인터넷신문 통제로 인터넷신문들이 퇴출 위기에 처했다
ⓒ 김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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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부터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한 인터넷신문은 2004년까지는 허가제나 등록제가 아니었다.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탄생한 인터넷신문은 서버를 갖추거나 임대해 그냥 운영을 하면 됐다. 특히 지난 2000년 시민기자 저널리즘으로 창간된 <오마이뉴스>로 인해 인터넷매체는 국민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당시 종이신문 기자로 있던 나는 인터넷신문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 후보가 야밤에 정몽준 후보 집 앞을 찾아간 상황을 실시간 보도한 <오마이뉴스>가 그날 하루 660만명의 접속자수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그동안 최고인 줄 알았던 조중동 거대신문의 부수를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이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한 것이다.

대선을 하루앞둔 2002년 12월 18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노 후보가 정몽준 대표 집을 방문했으나, 정 대표가 자고 있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부당해 발길을 돌렸다.
 대선을 하루앞둔 2002년 12월 18일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노 후보가 정몽준 대표 집을 방문했으나, 정 대표가 자고 있다는 이유로 방문을 거부당해 발길을 돌렸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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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인터넷이 막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해서 나와 같은 세대들은 <야후>에서 채팅을, <다음>에서 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고작인지라 인터넷신문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04년, 재직 중이던 지역일간지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 노조위원장으로 있던 나는 결국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른 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사를 그만둔 뒤에도 노사분규 때 있었던 일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고소당해 검찰에 불려다니는 고충을 겪었다.

당시 나를 취재하러 온 <오마이뉴스> 기자는 "인터넷신문 창간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권유했고, 결국 당시 운영하던 레스토랑 한쪽에 사무실을 내고 동료, 후배 등 5명과 함께 2005년 7월 인터넷신문 <시사울산>을 창간했다.

그동안 사주의 의중에 따라 기사를 써가던 종이신문 때와 달리, 인터넷신문에서는 할 말을 시원하게 하고 다루지 못했던 일들도 다룰 수 있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신문의 활성화와 제도권화를 위해 인터넷신문 등록제를 시행했다. 따라서 당당하게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양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인터넷 매체, 하지만 사이비 언론은...

2005년 등록 당시 250여 개였던 전국의 인터넷신문이 9년 뒤인 2014년에는 5950개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양적 팽창이 결국 정부가 인터넷신문을 통제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보면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터넷신문은 정부나 지자체, 대기업 등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양산하던 기존 언론을 긴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는 인터넷강국으로 성장해나가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정부가 인터넷 언론의 통제 이유로 드는 소위 '사이비 언론 범람'은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사실 지역에서도 언론매체가 늘어나면서 사이비 언론에 의한 피해도 늘어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이를 꼭 인터넷신문에만 국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인터넷신문이 늘어나자 이명박 정부도 한때 사이비언론 단속에 나선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법으로 인터넷신문을 없애려는 시도는 감히 못 했다. 단지 사이비 언론을 적발하는 수준이었다.

"지난 2009년, 울산지방경찰청은  울산을 비롯해 부산, 경북 경주, 경남 양산 등의 사이비언론 일제단속을 벌였다. 경찰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17개 언론사 32명으로부터 피해를 본 업체가 42곳에 달하고 금품 갈취나 광고료로 입금한 금액이 4억7000여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금품 갈취 기자들 무더기 구속... 몸통은?)

경찰 발표에 따르면 3만 원의 주유권을 갈취하거나 몇십만 원의 돈을 갈취한 인터넷신문 기자가 있는가 하면, 억대의 광고를 갈취한 주간신문사도 있었다. 그런데, 창간 광고 협찬 요청 등으로 사이비 기자 명단에 오른 일부 주간신문이 "지역언론이 모두 같은 판국인데 왜 힘없는 언론만 적발하냐"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 같은 반발은 사이비언론 수사가 인터넷신문과 주간신문에 한정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주간신문사는 "적발된 광고의 경우, 모든 일간지에 광고가 나온 것이다. 만일 죄가 된다면 모든 지역 언론을 다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거론된 일간지들이 "우리보다 더 큰 거대언론과 방송은 우리보다 심한데 뭘 그러나"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결국, 당시 적발된 언론사들의 항변처럼 힘없는 인터넷신문과 군소언론만 사이비로 적발된 결과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 울산지역 일간지 사주들이 공사현장 갈취, 선거여론조사 때 금품 수수 등 거액을 편취한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하지만 이들 사주들은 대부분 지금도 해당 신문의 사주로 있다.

이처럼 사이비언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인터넷신문이든 지방신문이든 거대언론이든 금품을 갈취하는 사이비언론은 있기 마련이다. 사법당국이 이를 적발해 처벌하면 된다. 결국 정부가 해야할 일은 인터넷신문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언론에 대한 신고제도를 강화하거나 철저한 단속을 통해 사이비언론과 사이비언론인이 발붙이지 못하게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사이비언론 탄생시킬 우려도 있어

지난 8월 3일자 메트로신문 1면 갈무리
▲ 메트로 지난 8월 3일자 메트로신문 1면 갈무리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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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1년 뒤 퇴출 될 위기에 몰린 인터넷신문들은 어떤 길을 택할까. 일부 매체처럼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강행하는데 이런 일쯤이야...'라며 인터넷신문을 포기하든지, 혹은 여러 곳이 뭉쳐 하나의 매체로 탄생할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을 기자로 등록시켜 4대 보험에만 가입시켜 새로 인터넷신문 등록을 하는 매체도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의 경우, 인터넷신문을 포기하고 전공을 살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혹은 다른 매체로 옮겨 언론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대부분 보수언론). 아니면 뜻있는 사람들과 손잡고 주간신문이나 월간지로 전환할 수도 있다. 단지, 앞 두 사례의 경우라면 지난 10년 동안 해왔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몇 해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때 편집기자가 내게 '기자생활을 얼마나 할 것인가'고 물었다. 나는 서슴없이 '그것은 숨을 언제까지 쉴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뜻하지 않게 숨을 쉬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태그:#인터넷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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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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