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제나처럼 수원미술전시관 앞에 서 있는 만석거 표석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만석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은 숲속에 있는 '구영화정터'란 표석을 보고, 혹시나 내용을 새롭게 교체하지는 않았을까란 기대를 하지만 역시 내용도 맞지 않는 낡은 안내간판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만석거 가을 풍경
 만석거 가을 풍경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미술관 주차장을 가로질러 영화천에 놓인 북지교를 건너면 만석거로 갈 수 있다. 영화천 주변 뚝 위 버드나무는 축축 늘어진 채 고목이 되었고, 북지교는 뚝 보다 2미터 가량은 낮게 웅크리고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리를 건설한 후 만석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2미터 가량을 돋워 공원으로 만든 게 아닌지 생각된다. 영화정 터에서 보면 영화천이 흐르는 곳까지 만석거의 물이 차 있었을 것 같은데, 오래전에 만석거의 구조가 바뀌어 상상만 할 뿐이다.

현재의 만석거가 어떤 사람은 정조시대의 만석거 보다 많이 작아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화성성역의궤에 만석거의 둘레가 1022보, 제방의 길이가 725척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1보를 미터로 환산하는 과정과 1척을 미터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편차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1보를 주척의 길이 20.8cm로 하면 현재 만석거의 둘레인 약 1.3km와 비슷하고, 화성성역의궤에 나와 있는 포백척의 길이처럼 46.7cm로 하면 현재보다 더 큰 만석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석공원 가을 풍경
 만석공원 가을 풍경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북지교를 건너가면 좌측에 여의루(如意樓)란 누각이 있다. 여의루란 뜻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며, 예전에 만석거에 있었던 여의교를 기념하거나 상징하는 의미의 건축물이란 생각이 든다.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현대의 건축물로 재창조한 공간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화려하고 곡선미가 돋보이지만 주변의 영화정과 비교해보면 정조의 애민 정신과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크고 화려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의루 2층 마루에 올라가면 만석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시원하고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만 여의루에 대한 안내문이 없어 상상만 할 뿐이다. 시민 편의를 위해 여의루에 대한 역사적 내력과 설명을 담은 안내간판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

만석거 제방 산책길에 이르니 왕벚꽃나무가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길가 의자에는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가을햇살을 안고 있다. 테러범처럼 얼굴을 가리고 빨리 걷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천천히 걷는 사람들 모두 깊어가는 가을에 만석거의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다.

만석공원에 있는 영화정
 만석공원에 있는 영화정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만석거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영화정이 나온다. 입구에는 깔끔하게 단장한 안내판이 있고, 문은 개방되어 있다. 영화정에 들어가보면, 마루에 앉아 만석거를 볼 수 있어 좋지만 창호지는 찢겨져 흉물스럽고 영화정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어 허허로운 느낌이다. 기왕에 개방을 했으니 영화정을 기념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영화정 주변에 있던 대유평, 관길야가 사라진 마당에 만석거와 영화정의 역사적 의미는 남다른 것이다.

영화정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작은 숲이 나온다. 왕벚꽃나무, 무궁화나무, 단풍나무가 제각각 가을꽃으로 변해있다. 모과나무, 구상나무, 느티나무, 메타세콰이어나무, 복자기나무, 모감주나무, 백일홍, 백합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등 만석공원의 울창한 숲은 깊어가는 가을의 끝에 있는 듯 오색 단풍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만석거 수변 탐방로 주변은 연꽃이 지고 난 후 시들어 꺾이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지만 생명을 품고 있음을 알기에, 다음해 단아한 연꽃을 볼 수 있기에 위안이 된다.

만석공원 가을 풍경
 만석공원 가을 풍경
ⓒ 한정규

관련사진보기


만석거와 광장 사이에는 작은 실개천이 있다. 작은 버드나무가 자라고, 갈대가 자라고 있는 실개천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실개천의 끝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다. 물레방아 인생, 깊어가는 가을에 한해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호들갑 떨면서 단풍놀이를 하기 보다는, 만석거를 천천히 걸으면서 가을햇살을 이고, 나뭇잎 하나하나가 꽃이 되었다가 가을 끝에 매달린 생명을 보듯,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겨보면 어떨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만석거, #만석공원, #영화정, #여의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