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우쭐대게 하지만 사랑은 세워 줍니다" - 고린도 전서 8:1
덕이는 매 시험마다 재시험을 보기 위해 방학 중에 학교를 다시 찾아야 했다. 룸메이트와 함께 가기로 했으나 언제나 룸메이트는 먼저 가곤하였다. 특히 그중에 세 번째 했던 약속은 문제가 컸었다. 덕이는 오지 않는 룸메이트를 기다리는 동일한 상황이 세 번째 발생하다보니 나에게 친구와 만나지 못했단 말을 하지 않은 채로 오전 버스 떠나도록 룸메이트를 기다렸다. 결국 늦은 오후 한 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갔다.
기다리다 혼자 버스를 타고 인천터미널에서 학교 인근 지역의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그러나 도착은 했으나 학교 마을근처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이미 운행이 끝난후였고 어차피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간다한들 학교에서 잠잘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덕이는 터미널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잤다. 그 다음날 오전에 학교에 도착을 한 후 재시험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덕이가 집에 와서야 그같은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고모:"덕아, 어제 저녁에 너가 알아서 한다며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고 해서 믿고 기다렸었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한데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덕:"친구(룸메이트)가 인천터미널에 오지 않았어"
고모:"응, 너가 많이 속상하고 난감했겠다."
덕:"응"
고모:"그렇지 않아도 어제 너의 그 말을 듣고 나도 가슴이 아팠거든, 분명 룸메이트는 우리 덕이와 함께 다니고 싶어하고 그 친구 엄마 또한 덕이를 좋아하는데~~"
덕:"나도 알아"
고모:"응 나두"
덕이는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이유야 어찌되었든 룸메이트와 그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상황에 직면한 덕이가 한없이 안쓰러워 가슴이 아렸었으나 어느덧 '덕이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라고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제 덕이 스스로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하고 적응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었다. 든든했다.
사실 어제 전화상으로 "고모 내가 알아서 할게, 이제 전화하지마"라는 말을 듣고는 '어디서 잘 것인가', '무엇을 먹을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룸메이트에 대한 감정이 어떻겠나', '내일 재시험은 잘 보고 올 수 있을까' 등 스치는 생각들로 걱정이 되어 밤새 한 숨도 못잤다. 덕이만 견디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견디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덕이에 대한 측은함이 나의 온몸과 정신을 마비시키듯 밤새 의자에 앉아 있게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위로를 하고 있었다. '덕이가 지금 훈련한다고 여기자, 이 훈련을 덕이가 잘 마무리 할 거야 틀림없이'라는 야무진 마음을 밤새 다잡아야 했다.
덕이가 스스로 잘 하고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만 5세 때부터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곤 했었을 때 덕이가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지도를 보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내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그리고 태권도에서 밥 짓는 일을 비롯하여 다양한 일상적인 일들을 척척 해냈기에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고모:"사랑하는 덕아, 고모가 덕에게 '그 룸메이트와 앞으로 사겨라, 마라'라는 말을 해주면 좋겠니 아니면 나는 원래부터 덕이를 믿으니까~ '너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믿고 있으면 좋겠니?"
덕:"믿고 있어"
고모:"믿고 있어?"
덕:"응"
고모:"응"하고 내가 아무말을 잇지 않자 덕이가 내 눈치를 보면서 한 마디 한다.
덕:"이제 내가 할 수 있어"
고모:"덕이가 그렇게 말하는 뜻을 나도 알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분명히 너는 스스로 할 수 있어. 믿고 있을게"
"믿고 있을게"라고 나는 대답은 했지만 늘 마음 한 편이 조마조마하다.
대학생활 1학년 1학기부터 2학년 1학기까지 3학기 동안 계속 그 룸메이트였다. 교수님도 다른 아이들 보다는 지금의 둘이가 심성이 착하고 서로 도움도 주고 받는 것 같으니 계속 같이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고, 덕이와 룸메이트, 그리고 룸메이트 부모님과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긴 결정이였다. 덕이는 스스로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어른들의 말과 가르침을 그대로 잘 따르는 온순함과 선함이 돋보이는 성향을 지녔다.
그런 덕이의 태도는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의 뜻을 잘 따라주었다. "가능하면 매일 잠들기 전에 '잠언' 1장씩 읽고 쓰는 것"을 권했더니 그대로 하고 그 다음으로는 예수의 삶을 기록한 성서의 내용을 정기적으로 읽고, 쓰고, 연구하고 묵상(연구와 묵상은 무료성서지도 봉사자에게 꾸준히 지도 받았다.)했다. 더불어 생활에 적용한 지 약 5년쯤 되어서 부터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이웃들에게 봉사해, 오늘날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덕이의 성품 덕에 교수님의 눈에 들었을까. 2학년 2학기 9월에 '성실하고, 착하고,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그대로 한다'는 격려적인 교수님의 추천으로 덕이는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대기업의 기능직에 취직하여 대학 기숙사를 룸메이트 보다 먼저 떠나왔다.
"용서는 단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를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베풂이자 사랑이다." - 달라이 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