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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게잡이 원숭이 '삼순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유는 삼순이가 11년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반려인과 살다 한순간 생이별하고 이후 옮겨진 곳마저 열악한 환경의 동물원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삼순이가 현재 있는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경남 김해의 ○○동물원. 한 번 다녀온 바 있어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걱정과 미안함이 앞서 급히 해당 동물원을 찾았다. 삼순이는 물론 이미 1년 전 이맘때 목격했던 처참한 동물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음 사진과 영상은 지난 10일에 촬영됐다. 본 동물원이 국제적 멸종위기종 2급 삼순이에게 국내에서 유일하게 살 곳을 제공하고도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이러한 동물원이 존재하는 까닭 혹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1년 만에 다시 간 동물원… '변한 게 없다'

원숭이 '삼순이'가 있는 경남 김해의 ○○동물원
 원숭이 '삼순이'가 있는 경남 김해의 ○○동물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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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찾은 동물원. 입구 주변에 잔점박이 물범, 코아티 등 새로운 동물들이 보였고 당시에 한창 공사 중이던 '야외 사파리'는 거의 완성된 듯했다. 반가운 것은 여기저기 꼼꼼히 붙은 관람 시 주의사항 안내문. 지난번 방문 때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그리고 동물보호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여 '만지기 체험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소식.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 동물원의 대표적 볼거리이자 동시에 가장 암울한 '실내 사파리'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역시 새로운 동물들이 있었고 몇몇 동물은 우리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동물도 있었다. 온종일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실내, 조잡한 그림이 그려진 좁고 삭막한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곳에서 1년이란 시간을 더 견뎠을 동물들을 보는 게 죄스러웠다.

자연에선 숲에서 나무에 둥지를 틀어 생활하는 투구코뿔새
 자연에선 숲에서 나무에 둥지를 틀어 생활하는 투구코뿔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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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투구코뿔새. 옆에 붙은 안내문에 따르면 고향은 태국,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지의 우림이며 일반적으로 암수 한 쌍이 함께 생활하며 가끔 무리를 짓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곳 투구코뿔새는 제 모든 본성과는 정반대인 환경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바로 옆에서 "안녕!" 하고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구관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 키보다 큰 잡목과 나무가 우거진 숲이 고향인 알비로 왈라비. 또다른 이름은 '작은 캥거루'
 제 키보다 큰 잡목과 나무가 우거진 숲이 고향인 알비로 왈라비. 또다른 이름은 '작은 캥거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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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초면인 알비노 왈라비. 또다른 이름인 '작은 캥거루'처럼 딱 그렇게 생겼다. 이들도 자연에서라면 제 키보다 큰 잡목이 우거진 숲에 살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함께 있는 세 마리 모두 꼬리털이 상당 빠져 있고 특히 한 마리는 양쪽 귀가 찢겨 피가 맺혀 있었다. 지켜보니 다른 한 마리가 계속 상처 부분을 물려 했다.

입 주변이 터져 피가 흐르는 그린 이구아나
 입 주변이 터져 피가 흐르는 그린 이구아나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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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이구아나. 한 마리가 맘껏 움직이기도 턱없이 좁아 보이는 공간에 무려 여섯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는 코와 입 주변이 터져 피가 고여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사육사에게 "싸워서 이렇게 됐나?" 물으니 "네!" 했다. 혼자 있는 동물도 가엾지만 겨우 꿈쩍하는 수준의 좁은 우리에 같이 있는 동물들도 위태로워 보였다.

잠시 후 방금 내 옆을 지나간 사육사가 들어간 문 쪽에서 폭언이 들렸다. "△△, 원숭이 때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곧바로 삼순이가 있을 만한 우리로 갔다. 실내 사파리 전체라 봤자 워낙 협소해서 방송에서 봤던 녀석의 담요와 인형이 놓인 곳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삼순이는 없었고 "밖에 직원이 데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11년 동안 살던 집과 가족을 떠나 동물원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삼순이'의 방.
 11년 동안 살던 집과 가족을 떠나 동물원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삼순이'의 방.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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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우리 벽면에는 동물원 측과 SBS <TV 동물농장> 제작팀 입장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주요 내용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개인이 사육할 수 없는 현행법에 대한 설명, 방송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삼순이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전 가족들의 상황, 그리고 말미에 지금은 현실적으로 완전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우리는 '삼순이의 고통'과 무관할까

이러한 입장 표명이 있었지만 지난 12일 확인한 관련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은 물론 외국 출장 중 식재료가 될 위기에 놓인 삼순이를 구해 어찌 됐건 11년간 정성으로 보살핀 전 가족들에 대한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과연 삼순이와 같은 동물들이 이렇듯 고통을 당하는 데 당신과 나는 무관할까?"

어쩌면 아래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 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삼순이와 같은 동물원에, 하지만 삼순이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곳에 있어온 동물들이다. 본인이 실내 사파리를 보는 동안 주변에는 다른 관람객들도 있었다. 그들이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것은.

"하이에나가 사자보다 비싼가?"
"사자 팔자가 상팔자네."

그리고 이어지던 웃음소리…

이 동물원은 앞서 '만지기 체험'을 중단했다고 했지만 '먹이 주기 체험'은 여전했다. 줄곧 마주치던 어린 딸과 아빠도 홍당무와 건빵 등이 수북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아이는 먹이를 줘도 동물들이 반응이 없자 우리 벽을 두들겨댔다. 맹수 중에서 유일하게 하이에나가 적극적으로 반응했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되레 의아했다.

1년 전에도 지금도 보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이곳 맹수들의 모습
 1년 전에도 지금도 보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이곳 맹수들의 모습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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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과 너무나 똑같은 풍경. 하지만 이 동물들이 지금껏 느꼈을 고통은 1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1년 전과 너무나 똑같은 풍경. 하지만 이 동물들이 지금껏 느꼈을 고통은 1년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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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동물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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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짐승 아닌 '같은 생명'으로 인식해야

실내 사파리에서 나와 바깥 출입구 근처에서 드디어 삼순이를 봤다. 일부 블로거들의 사진처럼 아주 앙상해 보이진 않았는데 사육사 품에 안겨 있어 몸 전체를 확인할 순 없었다. 다만 방송에서 본 집 근처 놀이터에서조차 한껏 겁을 먹었을 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삼순이를 발견한 몇몇 관람객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동물원의 원아무개 팀장은 "저도 동물을 좋아하고, 사실 삼순이 가족분들과 비슷한 경험도 있고 해서 옆에서 보며 눈물도 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동물원 환경 많이 미흡한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희들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처 보지 못하는 문제나 개선 사항은 언제든 긍정적으로 수용하겠습니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사람에게 잡아먹힐 운명에서 자신을 구해준 또다른 사람에게 구출돼 11년간 살다가 최근에 동물원으로 옮겨진 원숭이 '삼순이'.
 사람에게 잡아먹힐 운명에서 자신을 구해준 또다른 사람에게 구출돼 11년간 살다가 최근에 동물원으로 옮겨진 원숭이 '삼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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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들은 다행스러운 소식 한 가지는 오는 12월에 햇빛이 전혀 통하지 않는 '실내 사파리'의 사자, 호랑이, 하이에나가 있는 일부 구간만이라도 샌드위치 판넬 천정을 뜯어내 보수공사를 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맘때 왔을 때도 동물원 대표에게 실내 사파리 환경 개선 계획을 들은 바 있다.

당시 대표는 실내 사파리 동물들을 바깥으로 옮기기 위해 '야외 사파리'를 짓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갔을 때 야외 사파리에는 또 다른 동물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 역시 동물이 생활하기에 결코 적절한 환경이 아니었다. 야외임에도 불곰과 흑곰 등은 사방이 막힌 철창 우리에 갇혀 있었고 여러 종류 새들의 우리는 곰의 그것보다 조금 높을 뿐이었다.

'야외 사파리'란 이름이 무색하게 좁은 인공 우리에 홀로 갇혀 있는 불곰.
 '야외 사파리'란 이름이 무색하게 좁은 인공 우리에 홀로 갇혀 있는 불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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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게잡이 원숭이 삼순이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삼순이가 겪고 있는 고통, 또한 다른 수많은 동물이 겪는 더한 고통을 몇몇 특정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자연에 사는 동물들을 강제로 데려와 사람 가까이 전시하는 행위, 그 동물이 매일 사는 동물원 환경이 자연을 닮기는커녕 좁은 감옥을 닮아있는 현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보면서도 웃거나 그저 외면한 다수의 사람…, 이 모든 문제들과 당신은 무관한가?"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삼순이 , #게잡이원숭이, #부경동물원, #TV동물농장 , #동물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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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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