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얼 먹을까. 날마다 먹는 삼시세끼에 가끔은 외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음식들이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곰탕, 설렁탕, 육개장, 비빔밥, 국밥, 꽃등심구이, 삼겹살 등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들은 대부분 한두 끼니에 그친다. 먹다보면 금세 물리기 때문이다.
이내 집밥이 다시 그리워진다. 그래서 외식 메뉴도 집밥 같은 순수하고 진실한 음식이면 좋겠다. 구수한 된장찌개에 밥 한공기면 충분하다. 시래기 넣은 시래기나물밥도 좋겠다. 삼겹살이나 꽃등심구이도 가끔은 먹어줘야 한다. 고향의 맛,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터. 오늘은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서울의 밥집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13년째 6천원 생선구이 백반... 하루 쌀 한가마 밥 짓기도
연희동 할머니네다. 생선구이 백반집인 이곳은 기사식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정자(80) 할머니는 "손님들이 낮에 와 갖고 줄서있어요, 미원 안 넣고 집에서 먹는 것처럼 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메뉴는 딱 하나 생선구이백반이다. 그러므로 메뉴 선택장애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손님 인원수대로 음식을 내온다. 된장국에 흰쌀밥을 주는데 집밥 느낌이다.
찰랑찰랑한 청포묵과 콩나물무침, 오이무침, 깍두기, 새금한 나박 물김치 등의 반찬은 소박하고 맛깔스럽다. 생선은 고등어구이와 가자미구이다. 즉석에서 노릇하게 잘 구워낸다.
바로 옆 가게에서 장사를 하다 이곳으로 옮겨왔다. 올해로 20년째다. 생선구이 백반 가격은 13년째 올리지 않고 6천 원을 지켜왔다.
"하루에 생선 세 다라이를 구워, 한때는 쌀 한가마니(80kg)씩 나갔어,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장사가 덜 돼."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10여 명이다. 아침 5시 30분에 문을 열어 저녁 10시에 문을 닫는다. 영업일은 1년 365일 명절날도 쉬는 날이 없다.
"일하는 사람이 열이나 돼, 아침 다섯 시 반에 문을 열어 저녁 열시에 닫어."최근에는 카드 사용의 증가와 경기 침체로 인해 영업이 예전 같지 않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 급여와 식구들 먹고 사는 게 전부다.
가게가 연남동에 있는데 연희동 할머니네라는 상호를 짓게 된 연유는 이렇다. 예전에 할머니네가 살던 곳이 연희동이었다.
"내가 살던 집 팔고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연희동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간판하는 사람이 연희동 할머니네라고 가게 이름을 지었어."대한민국 맛집 선홍색 꽃등심 "살살 녹아요 진짜~"
대한민국 맛집이다. 서울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삼성역 부근에 있어 삼성역 맛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입구에는 평일에도 태극기가 펄럭인다. 고유명사인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짓다니 그 주인장 배포 한 번 크다. 아마도 그 배포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맛집이 되었나보다. 아무튼 가게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들 부부가 함께 요식업에 몸담은 지 올해로 어언 20여년, 나름 내공이 있는 집이다. 서울의 유명 호텔 쉐프 출신인 주인장에 조리 실장 역시 서울의 이름난 호텔에서 모셔왔다. 맛깔난 이집 음식을 한 번 맛본 이들이 다시 이곳을 찾는 이유다.
오늘 선보일 음식은 최고 등급의 꽃등심이다. 양념한 벌교꼬막과 도라지무침 버섯나물 등 5찬은 깔끔하다. 음식 회전이 빠른지 하나같이 그 맛과 신선함이 돋보인다. 이들 반찬들은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들 위주로 조리하며 날마다 바뀐다.
참숯에 꽃등심을 굽는다. 선홍색의 꽃등심은 마블링이 잘 분포되어 윤기가 자르르해 침샘을 자극한다. 맛을 보니 고소한 풍미가 순간 입안을 희롱한다. 이 좋은 먹거리에 한잔 술이 빠지면 섭섭할 터. 오랜만에 소맥 한잔을 말아 들이켰다. 목젖을 타고 넘는 짜릿한 전율이 전해질 즈음에 꽃등심 한 점이 더해지니 무얼 더 바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한 일행들의 입에서 저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캬~ 이 맛이다!" "한우 꽃등심 진짜 맛있어요." "살살 녹아요 진짜~" 그래 이 맛에 다들 우리 한우 꽃등심을 선호하는가 보다. 꽃등심의 두께감도 대단하다. 맛도 두 배다. 적당한 기름이 촘촘히 배어있는 한우 꽃등심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곤 한다.
고향 어머니의 손맛 담긴 시래기나물밥
갈바람이 분다. 교대역에서 강남역 가는 길이다. 높다란 키를 자랑하는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한잎 두잎 바람에 진다. 떨어져 내린 이파리는 허공에서 맴돌다 보도와 차도에서 나뒹군다.
이렇듯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깊어지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시래기나물밥이다. 교대역을 찾은 건 문득 시래기나물밥이 생각나서다. 시래기 음식전문점 시래옥을 찾았다. 식탁에는 시래기나물밥에 비벼먹으면 참 맛있을 것 같은 양념장이 놓여있다.
무청을 볏짚으로 엮어 겨우내 말린 것이 시래기다. 배추나 푸성귀를 다듬을 때 나온 겉잎은 우거지다. 이러한 시래기는 베타카로틴과 비타민이 많아 암세포증식을 억제하고 칼슘과 식이섬유는 동맥경화를 예방해준다.
시래기나물밥에는 시래기가 듬뿍 들어갔다. 들기름을 두른 후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시래기와 물에 불린 쌀로 지었다. 양념장을 넣어 쓱쓱 비볐다. 별다른 찬이 없어도 산해진미 부럽지 않다. 시래기나물밥은 가을을 한껏 품었다. 고향 어머니의 손맛도 고향의 정취도 가득하다.
이어 나온 반찬에도 시래기나물이 보인다. 뚝배기된장국에 깻잎절임과 말린 가지나물에서도 가을의 향취가 느껴진다. 양념장에 쓱쓱 비벼낸 시래기나물밥 한술에서 만추의 고향 텃밭을 떠올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에도 일부 내용이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