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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글을 통과한 선수들의 대가는 가혹했다.
▲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바욘사원을 지나는 필자 정글을 통과한 선수들의 대가는 가혹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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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공부를 할 때, 무언가를 새롭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은 배우자를 향한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처음 다짐처럼 꾸준히 유지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나는 10년 넘게 여행을 핑계 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체험을 하고 있다. 처음 사하라 사막 횡단을 결심할 때는 도전과 열정이 나를 사막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의지를 한결같이 지켜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3년 4월, 북아프리카 사하라에 첫발을 내디딘 후에도 사막과 오지를 향한 모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전의 회 차가 거듭될수록 자만할 수도 있지만 그 험난한 장도에 오를 때마다 나는 단 한 번도 완주를 장담한 적이 없다. 코스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나를 더 당혹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교만을 떨다가는 자칫 실패와 낙담을 넘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사막에서는 급작스레 불어대는 모래폭풍은 물론이고 온천지를 쓸어버릴 듯 퍼붓는 폭우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05년 시각장애인과 함께 고비사막 250km를 달리다 맞은 레이스 둘째 날 저녁,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굉음의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퍼부었다. 고비사막 전부를 삼켜버릴 기세로 광분하듯 휘몰아쳤다. 몰아치는 폭풍우에 철핀이 뽑혀나가고 텐트가 뒤집히면서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폭풍우 속에 이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에 텐트 안에 숨죽이고 있는 선수들은 혼란스러웠다.

사막에 몰아친 폭우... "형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도우미는 그를 위한 충직한 낙타가 되었다.
▲ 시각장애인과 고비사막의 빅듄을 넘는 필자 도우미는 그를 위한 충직한 낙타가 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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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 캠프에서 급작스레 불어대는 모래폭풍 그래도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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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야 한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웅크리고 앉아있는 시각장애인 이용술님을 침낭 속에 밀어 넣으며 애써 침착하게 말을 했다. "이 형, 괜찮을 거야. 걱정 하지 마…", "이 형, 그냥 침낭 푹 뒤집어쓰고, 귀 막고 누워 있어."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부디 이 포악한 비바람을 빨리 멈추게 해주옵소서.~' 오후 9시 30분, 그제야 성이 찼는지 2시간 넘게 퍼붓던 대자연의 반격이 사그라졌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그랜드캐니언, 겁도 없이 시각장애인 송경태님과 함께 지구상 두 번째로 큰 대협곡, 피시 리버 캐니언(Fish River Canyon)으로 들어섰다. 부시맨이 화살 통으로 만들어 쓰는 별모양의 잎을 가진 퀴버 트리(Quiver Tree)가 주변에 듬성듬성 자라나 있었다. 사고는 내가 조심한다고 비껴가진 않는다. 강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강변을 두리번거리다 커다란 바위가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루트를 선택했다. 먼저 시각장애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허리춤까지 찬 강의 하상과 물 위로 솟은 바위를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며 세 개의 강줄기를 건넜다.

홀로 결승선을 통과시키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등을 떼미는 순간
▲ 260km 나미브사막 레이스 결승선 앞에선 필자 홀로 결승선을 통과시키기 위해 시각장애인의 등을 떼미는 순간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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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알티플라노 고원지대 넘어 도착한 우유니사막
▲ 우유니사막 한가운데 선 필자 볼리비아 알티플라노 고원지대 넘어 도착한 우유니사막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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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강물을 가로지르다 수면위로 돌출된 커다란 바위와 맞닥뜨렸다. 시각장애인을 암반 중앙에 안착시키기 위해 함께 점프를 하다 중심을 잃고 바위 모퉁이로 미끄러졌다. 두 다리가 바위 틈새에 끼면서 무릎과 머리가 바위에 부딪쳤다. 두 팔을 버둥거렸지만 꿈쩍할 수 없었다.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하지만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내 안의 내가 '깨어나 일어서라'고 나를 다그쳤다. 강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선수들은 발만 구를 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듬해인 2010년, 죽음의 바다 타클라마칸사막 100km를 건넜다. 원주민들의 삶은 모래와의 전쟁 그 자체였다. 레이스 중에 블랙 제이드 강변에 터전을 잡은 투슬루코타크(Tuslukotak) 마을로 들어섰다. 농로를 따라 달리던 중 아랫도리가 조금씩 근질거렸다. 무심코 다리 쪽을 내려다보니 양 허벅지와 종아리에 수백 마리의 모기떼가 우글거렸다. 녀석들은 어깨와 팔뚝에 목덜미까지 들러붙어 무언가에 열중했다.

다리에 달라붙은 수백 마리의 모기떼들

완주자의 여유
▲ 용케 타클라마칸사막을 넘어 캠프에 도착한 필자 완주자의 여유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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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쩍펄쩍 뛰며 온 몸을 털었지만 대롱을 박고 피를 빠는 놈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드는 모기떼에 놀라 레이스에 가속이 붙었다. 모자를 벗어 종아리와 허벅지를 연신 내리치고 휘저으며 달아났다. 녀석들도 맹공을 퍼부으며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타클라마칸사막에서 흡혈파리에게 피를 빨릴 걱정을 했던 것은 기우였지만, 모기라는 복병을 만나 혼쭐이 났다.

하지만 이건 전조에 불과했다. 주로에서 다시 온밤을 맞았다. 오전 1시를 넘어서자 쌀쌀한 기운이 돌더니 모래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레이스 출발 전에 불어대던 돌풍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땅바닥을 훑으며 몰아치는 광풍에 주로 표시를 위해 꽂아둔 푯대가 순식간에 뽑혀 날아갔다. 몸을 지탱하기 조차 힘들었다. 몸을 때리는 모래 알갱이들이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린 채 바람을 피해 보았지만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질긴 놈이 이긴다. 벗어날 수 없다면 버텨야 했다. 이것이 '존버정신'(이외수씨가 말한 '존나게 버티는 정신')이다. 한 시간 넘는 사투 끝에 모래폭풍의 핵이 중심이동을 하며 서서히 비껴갔다. 이 순간 나를 지탱해준 힘은 처음 사하라로 향했던 그 도전과 열정을 늘 처음처럼 마음속에 새겼기에 가능했나 보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각자 원하는 것이 있다. 남은 이해 못할 가슴속 열망이 자라 숨쉬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갈 권리도 있다. 굳이 달리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인생에는 달리기보다 사막을 건너는 것 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과거에 학업 때문에, 가족의 생계 때문에 뒤로 밀어 두었던 일들. 여행, 자격증, 연애, 운동 등 당신이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이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늘 처음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꾸준히 준비 한다면 당신의 생애에 최고의 순간들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열사의 땅, 사하라는 희망의 언덕이고 절망의 장벽이었다.
▲ 사하라사막의 불타는 광야를 달리는 필자 열사의 땅, 사하라는 희망의 언덕이고 절망의 장벽이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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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10일 동안 530km을 달리고 피니쉬 라인 목전에서
▲ 호주 울룰루를 배경으로 선 필자 8박10일 동안 530km을 달리고 피니쉬 라인 목전에서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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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막, #오지, #김경수, #직장인모험가, #오지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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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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