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저는 입대영장을 받았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공권력에 의해 '정리'되고, 송전탑 공사 강행을 위해 경찰이 밀양 주민들을 진압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입영기일에 보충대로 가는 대신 병무청에 입대영장에 대한 답장 한 통을 보냈습니다.
"국가는 선택된 사람들만을 보호했고, 비국민들에게 빨갱이·불법시위자·님비라는 딱지를 붙였다. 10월 8일 오늘 군대에 입대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은 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폭력에 동참할 수 없다. 나는 이제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국민이 되겠지만, 국가로부터 배제되고 폭행당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 최소한 그들을 탄압하는 국가의 편에 서지 않고자 한다.""소견서"라는 짤막한 이름으로 불리는 제 답장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담겼습니다. 군대에 가지 않는 대신 감옥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점을 몰라서 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감옥 생활은 혹독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4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시 만난 세상은 그 때의 제 선택이 옳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출소 한 달 후, 저는 '국가폭력으로부터의 배제'를 더 직설적인 형태로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경찰은 시위에 참여한 한 농민의 머리를 물대포로 쏘아 쓰러뜨렸고, 쓰러져 의식을 잃은 그의 몸 위로 최루액을 계속 쏘아댔습니다. 그의 생사를 장담하지 못하게 된 지 이제 열흘째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모였던 사람들의 요구는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 교과서를 좀 더 민주적으로 만들자는 주장, 먹고사는 문제를 좀 더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하자는 목소리였습니다. 이것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극악무도한 요구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용남 새누리당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오면 총 쏴야 하니 미리 물대포를 직사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습니다. 청와대로 행진하면 총을 쏴야 한다니요. 대통령이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국정화 찬성하지 않으면 '비국민'?
2014년 하루 평균 249명 산업재해를 당했고,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수는 한 해 1850명입니다. 또 2014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3836명입니다. 하루 35명이 자살로 죽는 셈입니다. 경찰과 군인들은 국가를 지키지만, 국가는 국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럴 때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하는 것은 이 나라가 아직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반면 그 앞을 가로막은 차벽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확신이 무너질 때 공공의 권력은 누군가의 사병이 됩니다. 그리고 국가폭력이 국민들에 의해 통제되지 않을 때, 국가는 어떤 살인자보다도 무서운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폭력은 합법이고 그 외의 모든 폭력은 불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때, 예를 들어 우리가 차벽 앞에서 진압의 대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 그 자체가 권력이 아닙니다. 국민이 국가 폭력에 자발적으로 동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권력입니다. 폭력은 권력의 한 형태일 뿐이지요. 실제로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폭력조차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용히 복잡한 용어를 사용해서 법을 바꾸면 되고, 방송과 신문, 연예인을 통해 홍보를 해도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은, 국민들을 강제징집해서 진압하면 됩니다.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주장과 내용은 정권과 국민의 대결이겠지만 현장에서의 싸움은 평범한 국민과 국민의 대결입니다.
이 나라에서 국민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입니다.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지 않아도 국민 자격이 없고,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도 비국민이 됩니다. 실신한 무저항의 시민을 살수차로 공격해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들고 나서도, 정권은 더 강력하게 진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구급 환자가 실린 앰뷸런스에 물대포를 쏟아붓고도 전혀 부끄러운 내색이 없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거기에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기에 동의해야만 국민의 자격을 얻는 것이겠죠.
"일반 시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나가 주십시오." 경찰이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진압하기 전 상투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안전한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그곳으로 나가기를 거절하는 순간 우리는 국민의 영역에서 밀려납니다
지난 날 스스로 감옥행을 택했을 때 병무청에 보냈던 소견서의 제목은 '나는 거절한다'였습니다. 오늘 또다시 저는, 비국민에 대한 국가폭력을 동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국민의 자격'을 거절합니다. 인간으로서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이성과 양심을, 비국민을 골라내는 국가의 손에 맡기지 않겠습니다. 12월 5일에도 저는 거리로 나갈 것입니다. 존엄한 비국민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