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2번의 아전인수격 선동에 당하지 마시고, 선거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중앙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투표가 시작된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게시한 대자보 내용이다. 그리고 이날 오후 SNS에서는 중앙대 선관위를 풍자하는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었다. 패러디물에는 전임 총학생회인 '온에어' 총학생회 심볼을 얼굴로 한 캐릭터가 등장했다. 선관위원장은 '온에어'(ON-AIR) 총학생회장 한웅규씨가 맡고 있다.
패러디물에서 이 캐릭터는 "여러분! 선동당하지 마세요!!!"라는 다급한 외침과 함께, 맥북에어·아이패드·블루투스 스피커 등 고가의 경품을 뿌리고 있다. 어쩌다 중앙대 선관위는 패러디의 대상이 된 걸까.
"선관위가 불공정" vs. "기호 2번의 선동"이날 선관위는 투표 시작 한 시간을 앞둔 오전 8시, 선거 규정 위반 누적을 이유로 기호 2번 '함께바꿈' 후보의 자격 박탈을 공고했다. 예정대로라면 장장 2주간의 선거운동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고, 학생들은 경선에 나선 두 후보 중 한 쪽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전임 총학생회에서 활동 경력이 풍부한 '여권' 기호 1번과 학생회 활동 경력은 부족하나 '그들만의 리그'가 된 학생자치를 바꾸고 싶다며 기존 총학생회와 각을 세우며 출마한 '야권' 기호 2번이 그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호 2번의 후보 자격이 박탈되면서, 선거는 기호 1번의 단선으로 치러지게 됐다. 학생들은 찬반을 선택해야 하며 투표율이 50% 미만일 경우 이번 선거는 무산된다. 현재 기호 2번 측은 선관위 결정에 부당함을 주장하며 선거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동시에 선관위는 학생들에게 단체 문자를 발송하고, 고가의 경품을 내걸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대체 중앙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기호 2번인 '함께바꿈' 선거운동본부는 C 학과 학생회장에게 교내 카페 '웰스토리'로 나와 달라고 했다. 대학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후보들이 학과 학생회장들을 만나 학생자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일이 잦다. 캠퍼스 내 학생 개개인을 모두 만나는데 현실적 한계가 있어서, 대표들을 만나는 셈이다. 이날 만남도 이런 취지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C 학과 학생회장이 대화 중 마신 커피 한 잔 값 1700원을 기호 2번 선거운동본부가 지불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 사실은 이들이 자리를 파한 뒤 선관위에 알려졌고, 이틀 뒤 기호 2번은 '향응 제공'을 이유로 주의 1회 징계를 받는다.(주의 2회는 경고 1회, 경고 3회는 자격 박탈).
기호 2번 측은 반발했다. 커피값 1700원이 '향응'(특별히 융숭하게 대접함)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다. 기호 2번 대표참관인 조영일씨는 "만나는 과정에서 '찍어달라, 도와달라'는 요청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으며 총학생회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등의 의견을 들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1700원으로 어떻게 융슝하게 대접하느냐"고 반박했다.
반면 선관위 측은 "커피 한 잔이라도 사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징계 사유가 되는 것"이라며 맞섰다. 선관위 측 근거는 '선거시행세칙'(아래 세칙) 제1장 제2조이다. 이에 따르면, "세칙은 학생회를 민주적이고 공정한 것으로 하기 위하여 선거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있다.
이는 세칙의 목적 자체에 대한 규정이지만, '향응'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1700원 커피'가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저해한 '향응'인지는, 세칙상 최고의결기구인 선관위가 판단하게 된다. 선관위의 결정은 절차적으론 문제가 없지만, '민주적이고 공정한' 결정인지는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남는다.
이후 기호 2번은 또 한 번 주의를 받았다. 룰미팅 규정상(선거 운동 전 후보들이 약속한 규칙), 선거 운동 기간 중 비표를(명찰) 착용해야 하지만, 기호 2번 측 선거운동원이 지난 19일 합동유세에서 비표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기호 1번 측의 이의제기에 따른 것이었다. 선관위는 "앞서 한차례 양 선본에게 비표를 꼭 보이게 착용하도록 인지시켰음에도 또다시 이의제기가 들어왔기에 주의 이상의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주의 1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기호 2번 측은 "비표 미착용이 아닌 겉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며 "비표 미착용이 징계 사유이지 비표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또한 "선관위가 제시한 증거 사진만으로는 옷 안에 비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애초에 증거가 불충분한데 어떻게 비표 미착용을 증명하고 징계조치를 할 수 있느냐"고 밝혔다.
얼마 후 선관위와 기호 2번 선거운동본부는 또 한 번 충돌한다. 선관위는 기호 2번 측이 학내 모임인 '의혈하다'가 지난 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공약 자료를 만들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기호 1번 측은 기호 2번 측 부후보가 '의혈하다' 대표에서 사퇴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이 모임이 사전 선거운동본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조사에 착수한 선관위는 경고 1회를 결정했다. 이들은 "조사 결과 의혈하다에서 활동한 대다수 학생이 선거운동원으로 참여했다"며 "선거시행세칙 3장 12조 3항에 의거해 설문조사는 후보자 추천기간에만 가능하지만, 9월 중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선전물에 사용했기 때문에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기호 2번 측은 "학우들의 의견을 조사한 가장 적절한 자료라 판단해 인용한 것뿐"이라고 반론했다. 또한 "설문조사마저 사전선거운동이라면, 총학생회 출마를 꿈꾸는 학우들은 (평소에) 어떤 학생자치 활동도 해서는 안 되는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론은 기각됐다. 선관위는 "해당 사조직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세칙' 제12조 제2항에 에 따르면 사전 선거운동에 대한 판단은 선관위의 몫이다.
충돌 거듭하다, 끝내 투표 보이콧까지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23일 늦은 시각, 선관위는 기호 2번 대표참관인 조영일씨를 불렀다. 그리고 기호 2번에 추가로 경고 1회를 주었고, 경고가 3번 누적됐으니 '자격 박탈'이 결정됐다고 통보했다.
'대형 강의를 분반 시키겠다'는 기호 2번 측 공약과 관련 자료 중 일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우리 학교 대형 강의의 질이 낮음을 과도하게 조작했다는 기호 1번 측의 이의제기에 따른 것이었다. 기호 2번 측은 해당 자료는 선관위가 이미 심의를 끝낸 자료일 뿐더러 일부 누락이 있더라도, 자료의 전체적 맥락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더불어 룰미팅 규정에 따라 24일 0시까지 교내의 선전물을 모두 철거하던 선거운동원들은 선전물 철거를 중단하고 사후 대책을 논의했다. 그런데 0시 20~30분경, 선관위가 기호 2번 측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후보 자격이 있다'고 재통보 해왔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에 자격 회생이 통보됐지만, 기호 2번 측의 선전물 일부는 교내에 남아있었다. 이를 발견한 기호 1번 측이 이를 선관위에 알렸고, 선관위는 기호 2번에게 주의 1회를 줌과 동시에 누적 경고 3회로 다시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결국 기호 2번 측은 '투표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학내에 대자보를 부착하고 "학교와 이전 총학생회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탓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런 압박이 들어온 것 같다"며 "편파적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당한 총학생회 후보 자격 박탈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 또한 '투표 보이콧'을 선언한 기호 2번 측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선관위는 대자보에서 "기호 2번에게 내려진 모든 징계 사항은 선관위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에 의해서 결정된 사항이라며 "근거 없는 비방을 즉각 중단하고 총학생회 및 각 단과대 학생회 선거에 적극 협조하기 바란다"고 맞섰다.
중앙대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4~25일 양일간 치러진 총학생회 선거는 투표율 48.81%에 그쳤으며, 26일 오후 6시까지 연장투표를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