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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3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룸에서 2021년까지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3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룸에서 2021년까지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한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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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는 없었다.

3일 법무부는 2017년 폐지 예정이던 사법시험을 4년 더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시 존치 여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주무부처가 마침내 명확한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김주현 차관은 이날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수십 년간 법조인을 선발·양성해온 사시의 중요성을 감안해 사회 각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 2021년까지 사시 폐지를 유예하고,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는 ▲ 일반 국민 1000명과 법대 출신 비법조인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사시 유예 의견 응답률이 85.4%에 달했고, ▲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제도를 시행한 지 10년째인 시기가 2021년인 점 등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관련 기사 : 정부 "사법시험, 2021년까지 존치하고 대안 마련").

하지만 법무부 발표 내용은 사시 존폐를 둘러싼 법조계의 오랜 갈등을 잠재우는 데에 역부족이었다. 실현 가능한 방안인지, 최적의 법조인 양성시스템을 마련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두고도 논란이 여전하다.

시간이 없다

당장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로스쿨을 도입하며 사시는 2016년 마지막 1차 시험을 실시한 뒤 2017년 폐지하기로 했다. 마지막 1차 시험일은 내년 2월 27일, 두 달 조금 넘게 남은 상황이다. 법무부 뜻대로 사시가 생명을 연장하려면 하루빨리 국회에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법안 처리의 1차 관문, 상임위 통과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전히 법안심사1소위원회 단계에서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법사위는 사안의 중요도를 고려해 11월 18일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법무부와 법원의 준비가 부족하다며 별다른 소득 없이 논의를 중단했다(관련 기사: '사시 존치 논란' 눈치만 보는 국회·법무부·법원). 법사위는 조만간 다시 공청회를 열기로 했지만, 3일 2016년도 예산안 통과로 올해 국회 일정은 사실상 끝난 터라 여의치 않다.

위원들의 의견도 모아지지 않았다. 소위는 대개 표결 없이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법안을 처리, 전체 회의로 넘긴다. 그런데 법안심사1소위 위원 8명 가운데는 예정대로 사시를 없애거나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어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법무부 '4년 유예'안에 소위 위원들 모두가 찬성할지도 아직 미지수다.

알맹이도, 조율도 없는 대안

국회 법사위의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공청회가 11월 18일 오전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열렸다. 진술인들이 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국회 법사위의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공청회가 11월 18일 오전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열렸다. 진술인들이 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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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폐지를 4년 뒤로 미루는 대신 법무부가 제시한 대안도 불분명하다. 법무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행법과 반대로 제도를 바꾸겠다면서도 여전히 설익은 계획만 내놨다.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법무부는 앞으로 4년간 ▲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시험을 따로 실시하고 ▲ 로스쿨의 학사관리, 학생 선발과정, 졸업 후 채용 등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며 ▲ 사시 존치가 확정 나면 사법연수원이 아닌 대학원 형식의 연수기관에서 자비로 연수하도록 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꾸준히 대안으로 언급됐던 얘기들이었다.

법무부는 이마저도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주현 차관은 세 대안을 소개한 뒤 "기존에 제기된 것들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면밀히 연구·분석하고, 유관부처·관련 기관과 논의해나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봉욱 법무실장도 사시 대체 시험에서 얼마나 뽑을지, 자비 연수는 어떻게 진행할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앞으로 면밀히 분석해야 하고, 유관기관과 협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정부 차원에서 방침이 정해지지도 않았다. 또 다른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3일 법무부 발표 뒤 따로 낸 보도자료에서도 "언제까지나 사시와 로스쿨 제도가 병존할 수 없다"며 거듭 같은 의견을 내놨다. "존치를 연기한 기한이 지나면"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2021년 이후에도 사시 존치를 감안한 법무부와는 온도 차가 나는 모습이었다.

기름만 더 부은 법무부

법무부의 뜨뜻미지근한 발표에 사시 존치 찬반 진영 모두 께름칙해 하고 있다.

찬성 목소리를 높여온 대한변호사협회는 법무부의 '유예'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사시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정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결정을 4년 후로 연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역시 "사시 존치문제를 두고 첨예한 대립과 혼란이 있었는데, 다시 '한시적으로' 존치하자는 것은 혼란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의미"라며 법무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4%가 사시 존치에 찬성했는데도 4년만 시험을 유지한다면 "국민 의사를 왜곡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25개 로스쿨이 모두 참여하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법무부가 떼쓰는 자들에게 떠밀려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고 미봉책을 내놓았다"며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방침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법개혁 목적으로 로스쿨 도입에 찬성했던 참여연대도 논평을 내 "로스쿨의 폐해가 있다면 개선 방안을 마련하면 될 문제"라며 "그동안 손 놓고 있던 법무부가 다시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결국 법무부는 어떤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채 논란에 기름만 부은 격이다. 이제 모두들 국회만 쳐다보고 있다.


태그:#사시 존치, #로스쿨,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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