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밀양 송전탑을 막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던 할머니들과 함께 해온 이계삼(42)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이 정치에 뛰어들었다. 녹색당의 제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로 그가 선출된 것이다.

녹색당은 당원 7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30일부터 5일까지 20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계삼 사무국장이 43.2%(2536표)로 최다 득표했다.

여성 후보를 홀수 순번에 부여하는 공직선거법과 당헌․당규에 따라 이계삼 사무국장은 황윤 다큐작가에 이어 두 번째 순번을 받았고, 그 뒤로 김주온, 구자상, 신지예 후보가 후순위로 정해졌다.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창당 4년째인 녹색당은 지난 19대 총선 때 전국 0.5%(11만표) 정도를 얻는데 그쳐 원내진입에 실패했고, 이번이 두 번째 도전한다. 비례대표 1석을 차지하려면 최소 3% 정도, 2순위까지 되려면 3.5% 정도는 얻어야 한다.

녹색당은 임기순환제를 택하고 있다. 녹색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면 임기 4년의 절반만 하게 된다. 이계삼 사무국장이 금배지를 달 수 있는 방법은 내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정당득표에서 2순위 후보까지 당선되는 득표를 해야 하고, 1석만 차지한다면 2년 뒤 승계하는 방법이 있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9일 전화통화에서 "녹색 이슈가 많은데 지금 정치권은 정치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제도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며 "규정에 보면 비례대표 후보는 개인 유세도 못하게 되어 있다. 행사나 투쟁 현장을 다니며 발로 뛰는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11년간 밀양에서 학교 국어교사를 지내다 2012년 1월부터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 무렵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에 반대하며 밀양 보라마을 한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밀양 사람들이 대책위를 꾸릴 때,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었던 그가 실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지금까지 밀양 송전탑 반대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밀양송전탑 투쟁과 관련해 여러 차례 경찰·검찰 조사를 받았고, 때로는 기소가 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가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지 않았다면 이런 고초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밀양 어르신들이 녹색당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에 동의를 해주셨다"며 "이것도 밀양 투쟁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 출마하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이계삼 사무국장은 최근 '출마의변'을 통해 왜 정치에 나서게 되었는지를 털어놓았다. 그는 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게 되었는지, 결단하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토로해 놓았다.

"선거에 출마하는 일 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을 제 자신에게 쳐 놓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다. 존경하는 벗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피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밀양송전탑 싸움의 도정에서 제게도 무언가 변화가 생겼고, 조금씩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고민 끝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대한민국 나쁜전기 보고서 - <탈핵탈송전탑원정대>(탈탈원정대)가 26일 오후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계삼 대책위사무국장, 고준길(72), 남어진(20, 대책위활동가), 구미현(66), 김옥희(61).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대한민국 나쁜전기 보고서 - <탈핵탈송전탑원정대>(탈탈원정대)가 26일 오후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계삼 대책위사무국장, 고준길(72), 남어진(20, 대책위활동가), 구미현(66), 김옥희(61).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밀양 주민들의 바람을 전했다. 그는 "대책위 활동하면서 많이 놀라기도 했고, 또 마음 저렸던 것은 어르신들이 매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며 "연대 시민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그리고 밀양을 찾아 온 정치인, 정부 관료, 언론인들 앞에서 터뜨리는 당신들의 울분은 끝내 '국가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생동안 국가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던 적이 없었고, '국가가 하는 일에는 협조해야 한다'는 믿음이 당신들의 소박한 공민의식의 전부였을 것"이라며 "그러나 밀양 송전탑 사태라는 횡액을 지나면서 깨닫게 된 국가는 '피땀 흘려 가꾼 내 재산, 내 농토'를 빼앗아가는 강도였고, 그들의 삶의 전체였을 '마을공동체의 평화'를 갈가리 찢어놓는 협잡꾼이었다"고 했다.

국가에 배반당한 밀양 주민들은 '정치'에 희망을 걸었다는 것. 이계삼 사무국장은 "국회의원이 밀양 현장을 찾으면 어르신들은 그들 앞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고,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며 "그러나, 이 싸움에 들어와 활동하던 지난 4년 내내 저는 단 하루도 이 나라의 정치를, 정확히 말하면 '국회'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저는 지난 4년 동안 수십차례나 어르신들과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자료를 들고 국회 의원회관을 누비며 호소하고 또 호소하였다"며 "때로는 진상조사단 구성을 촉구하면서, 때로는 공사 재개를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밀양송전탑 문제를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 국회의원회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안 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다"며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외판원처럼, 다단계 판매원처럼, 옹송거리며, 고개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며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19대 국회의 '진상조사단' 구성을 떠올렸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몇 명의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의원들은 사실상 방조했다. 진상조사단 구성 여부를 결론짓던 상임위(국회) 회의 날, 밀양 주민들은 대표단을 꾸려 국회로 올라가서 방청했지만, 크게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밀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주민들을 볼 낯이 없어 고개를 떨군 채 국회의사당 건물을 돌아 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때, 부북면의 '야전사령관' 한옥순 할매가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점마들 안 믿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다!'"

그는 "누군가는 부딪쳐야 한다. 누가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며 "바로 녹색당이다"고 외쳤다.

"녹색당이 국회로 들어가, 비록 한 석이 되든 두 석이 되든, 저들의 법령과 제도가 구축한 성채에 부딪쳐 싸워야 한다. 10년이 걸릴 지, 20년이 걸릴 지, 그 이상이 걸릴지, 시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나 자신이 이렇게 해 보려 하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저는 문자 그대로 믿는다."

그는 "어둠을 저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한 자루 촛불을 켜는 일이다. 캄캄한 밤길에 주저앉은 이가 더듬어 길을 찾아가는 것에는 거대한 조명탑이 필요하지 않다"며 "한 자루 촛불이면 넉넉하다. 녹색당은 너와 내가 손잡고 밝힌 따뜻한 한 자루 촛불의 불빛으로 힘없고 약한 이들, 세상사에 좌절한 이들을 불러 모을 것"이라 다짐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이계삼, #녹색당, #밀양송전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