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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9집 표지(왼쪽)와 동인들의 모습
 수필사랑 9집 표지(왼쪽)와 동인들의 모습
ⓒ 포항수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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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가도 가도 남은 길이 더 길었지만, 주거니 받거니 떠들고 노래를 부르며 걷고 또 걸었다.
무장산... 돌길을 걸으며 자국마다 욕심을 내려놓고 억새를 품었다.
한라산... 신비에 쌓인 눈길을 걸었다. 새하얀 눈은 처음 찾은 등산객에게 설산의 풍경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금강산... 다시 밟을 수 있을까?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은 보고 싶은 나의 이산가족이다.
운제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처소인 운제산 자장암 석등 앞에 서면 내 마음은 항상 푼푼하다.
경주 남산... 수없는 등산로를 가진 산, 사람을 이끄는 등산로의 수만큼 남산의 품이 넓다는 말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이 많다.
지리산 둘레길... 산동 골짜기에서 산수유꽃이 물들면 나도 덩달아 마음에 꽃물 들어 가방을 꾸린다.
가야산 만물상... 세상 모든 계단의 집합소

지리산, 무장산, 한라산, 금강산, 운제산, 경주 남산, 지리산, 가야산... 각각의 산에 대한 짧은 명상 혹은 시 구절를 모아놓은 듯한 이 문장들은 뜻밖에도 <수필사랑>의 '편집후기'들이다. 최경하, 양태순, 윤순옥, 김태선, 장미영, 김순희, 이순혜, 이미옥이 각각 썼다. 이들은 모두 <포항사랑수필> 문학회 회원들이다. <포항수필사랑> 문학회의 회원들은 아홉 번째 동인지를 발간하면서 이렇듯 특이한 편집후기를 남겼다. 너무나 시적인 표현들이지만 그러나 모두 산문인 수필의 한 문장들인 것이다.

이런 편집후기가 탄생한 것은 포항수필사랑이 이번 호 특집으로 '특별한 이야기- 산'을 꾸몄기 때문이다. 김순희는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 경계에 있는 봉좌산을 오른 경험을 <어슬렁 숲 탐방>이라는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도시 인근의 낮은 산이나 숲을 천천히 걷는다고 해서 '어슬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모임이 마음에 들어 작가는 어느 날 처음으로 그 산행에 참가했다.  

기존 회원들과 달리 산행에 익숙하지 아니한 작가는 얼마 오르지 않아 숨이 가빠진다. 작가가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챈 한 기존 회원이 주위에 피어있는 꽃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설명을 들으며 작가는 샘가에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에서 잎을 따 비벼본다. 손에서 향긋한 숲내음이 난다. '저리던 다리를 부추겨 다시 더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향'이다.

어슬렁 산모임은 정상을 고집하지 않아서 좋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가파른 오솔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가 미끄러지는 작가를 잡아준다. 작가는 '마라톤에서 뒤처져 달리는 선수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처럼 나무들이 나를 지켜봐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들이 왜 그렇게 손이 많은지 작가는 이제 알 것 같다. '다음 산행에도 꼭 오라며 손을 흔드는 기존 회원들의 손이 나뭇잎을 닮아 있다.'

백두산 천지 전경
 백두산 천지 전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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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작가는 남편과 함께 백두산에 다녀왔다. 작가는 백두산 천지에서 '주례 선생님 앞에 선 신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을 슬며시 쳐다보면서 '하늘서방과 천지아낙이 되기를 언약하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젖는다. 북방의 폭포가 모두 얼어붙어도 장백폭포는 결코 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남북을 지켜보는 폭포의 심장이 뜨거운데 어찌 얼 수 있으랴!' 하고 내심 탄식하기도 한다.

다른 일행 중 부모님과 함께 온 삼대 여행객들 보면서는 '나도 어머니 살아생전에 (백두산에) 같이 올 것을...' 하고 안타까워한다. 백두산 천지을 바라보며 작가는 남자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서인지 천방지축 뛰어다녀 어머니의 애를 태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중 스스로 '이제는 안개 끼고 비가 와도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니를 향해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셔요!' 하고 외친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 <천지 분간할 나이>가 되었다. 절묘한 중의법이다. 

양태순 작가는 산에서 다람쥐를 만나 얻은 깨달음을 <다람쥐, 간이 커지다>로 형상화했다. 윤순옥 작가는 평생을 산사람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창 밖으로 산이 보이는 병원 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신 일을 추억한 <아버지의 산>을 발표했다. 이미옥 작가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지리산을 13시간 동안 걸은 소중한 가족 추억을 담은 <지리산에 밑줄 긋다>를 썼다.

그런가 하면, 이순혜 작가는 '산은 땅 위에 털썩 주저앉아 크고 작은 나무들을 이고 있다'와 같은 문장이 돋보이는 <산>을 실었다. 정미영 작가는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 등의 석등 답사와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버무린 <석등>을, 최경하 작가는 친구들과 더불어 백 리가 넘는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새삼 깨달은 우정을 그린 <지리산, 종주하다>를 기록으로 남기면서 벗들과의 힘든 동행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돌볼 수 있는 마음씀씀이'를 길러준다고 증언했다.

포항 전경(왕룡사에서 본)
 포항 전경(왕룡사에서 본)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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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사랑> 9집은 '특별한 이야기- 산' 외에도 많은 신작들을 보여준다. 김순희는 <사랑하면 보이나니> 등 3편, 김태선은 <어머니의 땅> 등 4편, 양태순은 <제사> 등 3편, 윤순옥은 <이불에 빠진 남자> 등 3편, 이미옥은 <아들의 머리 연대기> 등 2편을 이번 호에 발표했다. 그 외 이순혜는 <탱자나무 골목> 등 3편, 정미영은 <포항역> 등 3편, 최경하는 <아제> 등 3편의 신작을 실어 독자들에게 수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정미영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꽃잎이 떨어져 날리면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내 안의 수많은 느낌표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버린다"면서 "(우리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편린들들 부여잡아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친 후 한 편의 잘 다듬어진 탄생하면 글을 챙겨 든 채 설렘 가득 안고 집을 나선다. 달밤에 (작품 토론을 하려고) 정인(회원)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아홉 번째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포항수필사랑은 신입 회원을 모집 중이다. 매해 가을마다 동인지를 발간해온 포항수필사랑은 스스로를 '수필사랑은 수필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규정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정기 모임을 가지며 '수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회원들이 아는 만큼 이끌어준다.' 회원 가입 문의는 parao1107@hanmail.net. 물론 나이와 성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수필 창작 의욕'이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포항수필사랑> 문학회 연간 동인지 <수필사랑> 9집(2015년호), 2015년 11월 발간, 비매품



태그:#포항수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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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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