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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의 <언젠가 너도> 겉표지.
 엄마가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의 <언젠가 너도> 겉표지.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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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나는 일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고르고 골라 구입한 그림책들 중에서는 가만가만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돌연 마음 놓고 울어버리고 싶은 책이 있었다.

한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 사람 생의 처음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대부분을 함께하는 또 하나의 사람이 엄마이다. 인간으로서 해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을 하지 못하는, 가장 처음의 미숙한 존재였을 때부터 엄마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지켜봐주고 격려해준다.

그 사람이 성인이 되어 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온몸으로 나를 봐달라고 애쓰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엄마의 시간도 이렇게 시작되었겠지' 생각하게 된다. 그제야 엄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린다.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서 지켜봐줄 엄마 덕분에 바람직한 위안을 얻어 방황을 멈추고 가던 길을 헤매지 않았던 기억들의 합은 마음의 고향이다.

이 그림책의 시계는 한 사람이 엄마로 살기 시작하는 시간에서부터 돌고 돌아 그 엄마의 딸이 작은 존재를 낳아 키우는 시간까지 움직인다. 빠르게 흐르는 그 시간들 속에서 지나치고 싶지 않고 놓치고 싶지 않은 인생의 기록과 같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 속에서 웃고 우는 것은 읽는 자의 필연으로 여겨진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야. 그토록 크게 느껴지던 이 집이 이상하게 작게 느껴지는 날이. 언젠가 느끼게 될 거야. 네 등에 온몸을 맡긴 너의 작은 아이를. 언젠가 나는 네가 네 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 걸 보게 되겠지.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 아주 먼 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 본문 중

품안의 자식이 이어받은 엄마의 인생

엄마의 인생은 계속된다. 달리는 주자가 바뀌고 방식이 바뀌고 속도만 바뀔 뿐 엄마의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가 내가 사는 집에 왔을 때 "우리 딸!" 하며 꼭 안아준 적이 있었다. 그때 깜짝 놀라며 바라보던 세 살 큰 아이의 호기심 어린 사슴 같은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아마도 커다란 사실을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너무도 좋아하는 외할머니의 존재가 내 엄마의 엄마였다니!

놀란 눈망울을 뒤로 주춤한 뒤 내게 "엄마도 엄마가 있어?"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엄마의 엄마는 누구냐고 기어코 확인을 하려 했다. 스스로 눈치 챈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하는 성향의 큰 아이는 내게 그 답이 '외할머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경이에 찬 눈빛으로 나와 내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또 다시 마지막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해서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야?"
"외할머니 배 속에서 엄마가 아기였다가 태어난 거야. 아기였던 엄마가 이렇게 큰 거야."

더욱더 경이에 찬 아이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다. 그때 내가 본 아이의 미묘한 눈빛의 변화는 그랬다. 자신의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건 편안하고 좋은 것이란 안도감. 그날 아이의 눈빛에서 내 위치를 확인했다. 그날의 꽤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입장을 보며 엄마라는 존재는 어쨌든 아이에게 큰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엄마의 시계는 쉴 새 없이 돌고 돈다. 이 세상에 엄마를 필요로 하는 작은 존재들 덕분에 엄마는 큰 존재로 살아간다.

작았던 그 어린 것들이 언젠가 하나 둘 집을 떠나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던 그때에 엄마는 그랬었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너희들이 내 품 떠나니 그간 인생이 신기루 같이 느껴진다."

모든 엄마에게는 그런 시기가 온다. 치열하게 살았던 엄마의 인생시계가 조금 느려지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희미하게만 느껴질 때가 반드시 온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불멸의 가치임을, 생각하면 눈물 나는 깊은 감정의 원천임을, 따뜻한 어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기 쑥스러울 때엔 조용히 이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더불어 사랑한다는 작은 쪽지와 함께.

덧붙이는 글 | <언젠가 너도>, 앨리슨 맥기, 피터 레이놀즈 글, 피터 H. 레이놀즈(동화작가) 그림, 김경연 역, 문학동네 펴냄, 8800원. 이 글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중복게재 됐습니다.



언젠가 너도

앨리슨 맥기 지음, 김경연 옮김, 피터 레이놀즈 그림, 문학동네어린이(2007)


태그:#그림책, #언젠가,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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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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