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이 개인 저자 동의 없이 학자들의 논문을 무료로 공개한다는 점을 지적한 지난 14일 "'공짜 논문', 유명대학 교수도 그냥 당한다" 기사 관련, 황은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반론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황 교수는 "학자들의 논문이 공개되어 널리 읽히도록 하는 일은 진정 우리 학계의 학문적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편집자말] |
학자들의 논문이 무료로 공개되는 상황, 즉 학자들이 논문의 저작권을 의지와 관계없이 부당하게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이 억울해 하고 있다는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서 매우 원론적인 한마디를 하고자 합니다. (관련기사:
"'공짜 논문', 유명대학 교수도 그냥 당한다")
이 기사에서는 크게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논문의 목적과 기능을 잘못 인식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목적은 '저자권리'와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자신이 연구를 통해서 생산한 정보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 동료학자들의 평가와 협조를 통해서 그 정보의 타당성을 보강하여 하나의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게 그 목적입니다.
공짜논문? 학자들은 오히려 고마워 한다
논문을 발표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지식을 공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발표된 논문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의견에 불과합니다. 발표 이후 동료 학자들의 도움으로 내가 던진 정보와 가설이 평가되어야, 그 이후에 논문이 주장하는 것이 비로소 어떠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전제는 "읽혀야 한다"는 점입니다. 권리를 주장할 일이 아니고, 읍소를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공짜논문", "무료서비스가 벌어지고 있다"는 등의 말은 학자들의 현실에서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얘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자들은 나름대로 하나의 학문의 탑을 쌓게 되고, 이에 대한 긍지와 명예를 얻습니다. 이것이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학자들은 결코 저작물의 재산권과 수익을 얻고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논문이라는 저작물이 그 자체로 현실적인 재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거의 없습니다. 논문으로 돈을 벌려면 발표 전 그 안에 있는 실용적인 가치에 대해서 특허를 출원하면 됩니다. 그러면 훨씬 큰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특허 역시 공개를 통해서 그 가치를 올릴 수 있습니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해당 기사에 그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긴 합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정부가 무료 공개를 사실상 강요하면서 개인저자의 권리가 무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 부분입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발표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릴 것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율적 의지와 권리를 빼앗는 일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이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가장 바라는 일은, 내 논문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많이 인용되고, 또 다른 사람의 연구에 많이 활용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학자들의 논문이 공개되어 널리 읽히도록 하는 일은 진정 우리 학계의 학문적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국제적 학계의 트렌드와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요새는 논문을 구해서 읽는 사람이 구독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써서 발표하는 사람이 게재료를 냅니다. 조금 이상하지요? 그런데 이런 학술지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생명과학계에서는 논문 한 편을 게재하면서 100만~200만 원 정도, 또는 그 이상을 지불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렇다고 게재를 위한 엄격한 심사가 면제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유료서비스가 '논문 부실화'로 이어져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제 그 이유를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네. 논문들이 읽히는 데 방해가 되는 장벽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을 널리 알리고 그 가치를 증진시켜서 학문의 발전과 인류의 삶의 질을 증진할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국내학술지들이 낙후된 이유가 폐쇄성에 크게 기인한다고 보고, 이를 타계하는 방안으로 학술지 논문 공개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학술지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라는 당근 이외에도 국내 학자들 간의 정보교류가 도모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 불합리한 처사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학자들이 저자권리의 침해에 억울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자의 권리, 즉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재산권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논문의 재산권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볼까요? 학자들이 자신이 저술한 논문의 유상공개를 통해서 보편적으로 얼마나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한 번 들어보지요. 논문 한 편이 읽히면 크게 잡아서 만 원을 번다고 가정해 보지요.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라면 보통 10~20번 정도로 인용되면 괜찮은 경우입니다. 그것도 몇 년에 걸쳐서 일어나지요(제가 발표한 한 논문은 300회 가까이 인용되고 있기도 합니다만 좀 드문 경우지요). 이로 인해 학자는 수년에 걸쳐서 10여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논문 다운로드 수로 따지면 이보다 커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국내 학술지 논문은 얼마나 인용되는지 아십니까? 대부분 논문이 잘해야 1~2번 인용됩니다. 그런데 그나마 돈을 지불해야 논문을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실제로 논문 읽는 것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는 논문 속 정보 유통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해 학자들의 연구관행에 커다란 장애를 일으킵니다. 결국 국내 논문 부실화를 야기할 것입니다.
내 논문에 대한 저자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는 교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작인격권 안에는 "창작된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권리"라는 '공표권'이 있고, 이것이 침해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학술 논문의 발표에서는 그리 의미가 있는 지적은 아닙니다.
다만 차제에 학술지에서는 논문을 일괄 공개하는 것을 발표자가 잘 알고서 동의하도록 하는 작업을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결코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대부분 발표자들에게 이는 매우 형식적인 일에 그칠 테니까요.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의아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내 논문이 내가 모르게 돈을 받고 공개되고 있는가?", "왜, 내 논문으로 다른 사람이 돈을 벌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학술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히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논문공개 사업을 하는 회사의 수입 중 적은 금액이 학술지에 제공되고, 초기에 이것이 학술지 운영에 도움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것이 필요한지 학술지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업적인 이해와 상충한다고 해서 논문 공개의 공익성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학자적 자존심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본인을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은 우리의 논문이 어떠한 수익을 챙기지 않는 방법으로 공개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반감도 가지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끝으로 바라건대 "공짜논문", "무료서비스가 벌어지고 있다"와 같은 말은 해외 뉴스매체에 나가지 않길 바랍니다. 외국의 학자들에게 상당한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자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출판윤리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