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겨울에, 엄마가 감옥에 갔습니다. 40대 후반인 엄마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지명수배 중에 자진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엄마는, 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요.
엄마는 공공건조물침입죄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법원은 용인시청 로비에 들어가려 한 것이 공공건조물 침입이라며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엄마에게 가혹한 형을 내렸습니다.
지체장애 1급 엄마가 자진 노역형 택한 이유
엄마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입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멋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던 어느 날부터, 엄마는 전업주부 생활을 접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아침 일찍 나갔다 밤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지켜봤습니다.
엄마는 한 번도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집회에 늦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시간을 잘 지키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했습니다. 지난 여름 오전 8시에 예정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그린라이트 투쟁'에 참석할 때도 오전 6시에 어김없이 집을 나서던 사람입니다.
어릴 적, 엄마는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게 되었고, 그 이후 많은 차별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제게 들려줬습니다. 체육 시간에 벤치에만 앉아 있었고, 학교에 양변기가 없어 14시간이나 생리 현상을 참으며 생활 했던 이야기 등등. 엄마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외치는 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픔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하며 타협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과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아낌없이 사용합니다. 2009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자립생활 보장 투쟁을 이끌어오면서 엄마는 수많은 재판에서 적지 않은 벌금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버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재정은 상근자 한 명을 두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서 함께 공공건조물 침입으로 벌금을 받은 활동가들까지, 총 500만 원의 벌금을 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종종 나에게 "이번에는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에 들어가야겠어, 언제까지 이렇게 벌금을 낼 수 있겠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해보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2015년 12월 21일 감옥에 들어가기 전,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자진노역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엄마도, 같이 들어가는 엄마의 친구들도, 모두 담대하게 잘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검찰청 안으로 흐르듯 들어갔습니다. 벌금에 굴하지 말고 당당해지자는 당부와 함께요.
2013년 용인시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을 약속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용인시는 용인경전철에 많은 예산을 사용해 장애인복지 예산을 책정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말 힘들게 얻어낸 약속인데 말입니다. 결국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엄마의 친구인 이도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무려 19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습니다. 당시 엄마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연행되었습니다. 8명이 연행되었고,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없는 '돈', 그걸로 옥죄려는 정부
아시겠지만, 대부분 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합니다. 벌금을 선고한 법원도 이러한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판결문에서 꼭 벌금형을 내려야겠다고 했습니다. 용인시청에 들어간 것이 공공건조물을 침입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우리 엄마는 정말 공공건조물을 침입했나요? 무엇이 그런가요? 장애인들은 용인시청 로비에 한 발자국만 들어가도 공공건조물을 침입한 것이 되나요? 그렇지 않다면, 용인시도 법원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장애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권력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3년 여름 용인시는 분명히 약속했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 수 200% 도입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24시간 보장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관련기사:
"경기공투단, 상반기 지역순회 투쟁의 성과는?")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용인시는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연행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다수 활동가는 벌금 낼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엄마에게는 지명수배까지 떨어졌습니다.
8명에게 선고된 벌금이 자그마치 500만 원입니다. 이들에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돈입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 앞으로 선고된 벌금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9년 이동권 투쟁으로 800만 원, 2014년 노동절 연대 투쟁으로 500만 원 등 총 18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중에는 아직 납부하지 못한 벌금도 남아 있습니다.
제게는 이런 벌금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겁주고, 억누르는 권력의 탄압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상버스 도입해서 교통약자들도 대중교통을 함께 이용하자고,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해서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엄마가 감옥에 가야 할 만큼 큰 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게 '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1일에 엄마가 감옥에 입감된 후 구치소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제게 몸이 불편한 사람이니 빨리 나오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저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를 감옥에 보냈겠습니까. 검찰청에 출두해 경계선을 넘는 순간부터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던 우리는 잠깐의 눈빛만을 겨우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당장에라도 그 경계선을 부수고 엄마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손을 꼭 잡아주고 힘내라고 얘기할 걸.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그곳에 누워 잠도 들지 못할 엄마를 생각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앞이 흐려집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돈' 이라는 걸,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벌금으로 활동가들을 탄압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굴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가 벌금 앞에 작아져, 그렇게 이야기 했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나는 엄마와 더 열심히 세상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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