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77,000t'라고 표시된 숫자가 서울 광화문 거리에 나타났다.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공식 집계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바다에 버린 육상폐기물의 양이다.
2013년까지 1억2974만3000톤이던 해양 폐기물 양이 작년 한 해 49만1000톤, 올해 24만3000톤이 더 늘었다. 정부가 산업계에 '막차'를 탈 수 있도록 2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31일이 지나면 바다에 폐기물을 쏟아 버리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된다. 포항·울산 등 주요 항구의 폐기물 저장탱크도 철거를 마쳤다. 열 사람이 팻말에 적어서 들어 올린 긴 숫자 외에, 해양투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30일 낮 12시 무렵,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가 '해양투기 종료를 축하하고 기억하자'는 뜻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들은 각각 해양으로 배출된 육상폐기물 규모를 상징하는 숫자 피켓을 하나씩 들고 카메라 앞에 줄지어 섰다.
기업과 정부와 국민이 그동안 바다에 안겨왔던 상처를 기억하자는 의미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은 "숫자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저렇게 많이 버렸는지 몰랐다", "이제라도 끝내게 돼 다행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1990년대 급증한 해양 폐기물, 내년부터 폐기 금지
1975년 영국 런던에 모인 세계 각국은 해양오염방지에 관한 협약에 서명했다. 1996년 채택된 이른바 '96의정서'에서는 해양투기 근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그즈음 미국, 중국, 영국 등 각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해양투기를 공식적으로 종료했지만, 한국은 오히려 해양투기 규모가 이 시기 급증했다. 1990년대 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서부터다.
2007년 일본마저 해양투기를 중단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2005년 한 해 천만 톤 규모에 육박하는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며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당시 한 언론을 통해 '홍게에서 돼지 털이 나온다'는 보도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환경운동연합과 정부도 이때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이 OECD에서 하나뿐인 해양투기 국가라는 점도 반대운동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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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캠페인을 벌인 바다위원회가 그간 해양투기의 '싼 맛'에 취한 기업들을 고발하는 동안, 정부는 매년 해양투기 허용한계를 10%씩 줄여나갔다. 그 사이 육상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전량 처리할 수 있는 육상시설이 이미 갖춰져 "방법이 없다"던 산업계를 진작 머쓱하게 한 셈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투기해역으로 지정된 바다의 수질이며 생물분포 등 생태계 전반에 걸친 역학조사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학계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해양투기를 하면서 성장의 열매를 독차지해 온 산업계의 역할은 앞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게 됐다.
국민에게도 숙제가 주어졌다. 고철환(68, 서울대 명예교수) 바다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나라의 선배 시민들이 어떻게 바다를 오염시켜 왔는지 기록할 것"이라면서 "바다를 육지의 바깥이라고만 여기지 않는 생태적 감수성은 공짜로 길러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국민 여러분이 오늘 이 기쁜 날을 똑똑히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전병조 시민기자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사무국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