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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양천구민들은 새해 벽두부터 황당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긴급) 양천구민체육센터휴관안내 2016년 예산이 구의회에서 의결되지 않아 강사료 및 운영경비 지급이 중단돼 1/2일(토)부터 잠정 휴관하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정상 운영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양천센터

양천구립 도서관 중 하나인 갈산도서관에서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문자를 양천구민에게 보내어 준예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양천구립 도서관 중 하나인 갈산도서관에서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문자를 양천구민에게 보내어 준예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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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양천구민체육센터에서만 온 게 아니었다. 양천구립도서관 아홉 곳은 물론 16개 동의 작은 도서관, 목동·신월 문화 체육센터 등 양천 구립의 모든 공공 기관이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12월 31일 구의회에서 5022억 원 규모의 2016년 양천구 예산이 의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를 두고 '양천구, 초유의 준예산 사태'라고 보도했다. 비록 지난 4일 양천구의회에서 2016년 예산안이 타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씁쓸한' 풍경이 연출됐다.

양천구 초유의 '준예산 사태' 막전막후

구민의 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성 글들.
 구민의 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성 글들.
ⓒ 양천구의회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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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양천구 예산이 의결되지 못한 배경은 이렇다. 양천구는 신월 1·3·5동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신월어르신복지관' 신축과 신월 7동 주민센터를 주민편의 복합시설로 새로 건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양천구의회 총 18명 구의원 중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 9명은 '양천구가 사업 예산을 편성하면서 법적 필수 절차인 구유재산 관리계획을 누락해 하자를 발생시켰다'는 입장을 내놓고 지난해 12월 31일 본회의 등원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양천구는 "구는 해당 사업의 예산이 구 전체 예산의 1.2%에 불과하고, 절차상 문제가 없다"라면서 "일부 구의원들이 관련 법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반대하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라고 반박했다.

양천구 개청 이래 처음으로 '준예산 사태'가 터지자 곳곳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공무원노동조합 양천구지부는 지난 1일 성명서를 내 양천구의회를 비판했다. 이들은 "기초자치단체의 예산은 주민 생활과 직결된 예산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예산도 다수 포함돼 있다"라면서 "(구의원들은) 구민 최우선이라는 자세로 공명정대하게 의정활동을 펼쳐야 하는데 (예산이 의결되지 않음에 따라 50만 구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라고 지적했다.

양천구의회 누리집 '구민의 소리' 게시판에도 원성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요금을 내고도 이용할 수 없는 문화센터에 대한 불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구립도서관 이용 불가에 대한 고충 토로, 본회의에 등원하지 않은 구의원들의 직무유기를 개탄하는 글들이었다.

'뿔난' 구민들, 구의회 찾았지만...

주민 기자회견에 참여한 양천구민들.
 주민 기자회견에 참여한 양천구민들.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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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준예산 체제가 야기한 문제를 몸으로 체감한 양천구민들은 지난 4일 양천구의회로 모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경로당 난방비가 끊겨 따뜻한 쉼터가 없어지고 하루 한 끼 무료급식에 의존하던 어르신들, 구립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방학특강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 아이들과 그 학부모, 어린이집에 어린 아이를 보내는 엄마, 지역 사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 등이었다. 이들은 이날 예산안 의결 촉구를 위해 구의회를 찾았다.

구의원들과 행정직 담당자들이 회의실에 모여 예산안 타결을 위한 막판 조율을 하고 있었다. 구의회에 모인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잠시 미뤄두고 본회의 방청을 신청한 뒤 본회의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본회의는 제때 개회하지 않았다. 개회가 미뤄지자 구민들은 원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반쯤, 심광식 양천구의회 의장이 '이견 조율이 끝났다, 20분 뒤 개회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타결되기도 전에 나온 기사

본회의가 열리기 전인 11시 31분, <매일일보>에서 예산 타결 됐다는 기사를 냈다.
 본회의가 열리기 전인 11시 31분, <매일일보>에서 예산 타결 됐다는 기사를 냈다.
ⓒ 매일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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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1분, 본회의장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양천구 준예산'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양천구 예산안이 타결됐다'는 <매일일보> 기사가 나온 것을 알게 된 한 구민이 "아직 본회의는 개회되지 않았고, 본회의장에는 구의원이 한 명도 입장하지 않았는데 누가 이런 기사를 쓰게 했느냐"라고 구청 행정직 공무원에게 따지고 있었다.

항의한 구민은 해당 기사의 한 대목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양천구 준예산 타결에는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민은 "등원을 거부하고 직무를 유기한 새누리당 구의원들이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구을)을 앞세워 뭐하는 짓이냐"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 내용은 바로 심광식 양천구의회 의장에게 전달됐고, 기사는 5분 뒤 삭제됐다.

이날 12시 반이 돼서야 양천구의회 본회의가 시작됐다. 2016년 예산은 구청이 제시한 신월어르신복지관 신축 10억 원, 신월7동 주민편의 복합시설 예산 10억 원을 삭감하는 것으로 타협됐고, 예산안은 의결됐다. 양천구 김수영 구청장은 본회의에 참석해 "준예산 사태를 몰고 온 것에 대해 구의회에 대한 유감과 복지예산이 삭감된 것에 대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본회의를 방청한 주민들도 기자회견을 통해 "예산안 의결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라면서도 "하지만 이 사태를 몰고 온 양천구의회 구의원 18명과 양천구청은 50만 구민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과해야 할 것이며, (이런 사태가) 다시 거듭돼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회의원의 문자 그리고 구의원의 문자

예산 의결 직후 구민들에게 보낸 양천구을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의 문자
▲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의 국정 보고 문자 예산 의결 직후 구민들에게 보낸 양천구을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의 문자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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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준예산 사태를 둘러싼 갈등은 이렇게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매일일보>에 '예산 의결과 관련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언급된 김용태 의원의 의정보고 문자 메시지 그리고 한 구의원의 문자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김용태 의원의 의정보고 문자 메시지는 양천구의회 본회의 폐회 1시간 뒤 양천구민들에게 전달됐다. 김용태 의원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주민의 뜻을 이기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라고 적어놨다.

그럼 한 구의원의 문자 메시지는 무엇일까. 지난 5일 양천구민 남아무개씨는 새누리당 소속인 한 양천구의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남씨는 ▲ 앞으로 예산 의결은 회기 내에 이뤄져야 할 것 ▲ 김용태 의원의 '관여'에 관한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남씨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구 의원은 "(김용태 의원이) 예산 법적 절차를 어긴 것은 예산 통과 후에 잘잘못을 따지시고 어르신·어린이들을 위해 원만한 합의를 하라고 당부 말씀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구민들에게 '당부 말씀'이 있었다고 전하는 한 구의원의 문자 메시지.
 구민들에게 '당부 말씀'이 있었다고 전하는 한 구의원의 문자 메시지.
ⓒ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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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자 메시지를 받은 남아무개씨는 "구의원의 메시지 속 '원만한 합의'와 <매일일보> 기사의 '깊숙이 개입'이라는 말이 오버랩됐다"라면서 "50만 구민의 편의와 안전을 담보로 한 준예산 체제는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정치적 놀음이 아니었나"라고 씁쓸해했다. 구의원과 구청의 갈등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고,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해 구의 예산 의결이 좌지우지되는 모양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당과 정당, 의회와 자치단체 사이의 의견 대립은 민주주의에서 무척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견을 조율하지 못할 때마다 피해를 보는 건 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주민들이었다.

양천구민들을 불편하게 만든 건 구의회와 구청이었다. 등원을 거부한 새누리당 소속 구의원 9명도, 입장 발표 한 번 없이 사태를 관망한 9명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의원도, 법정 기간 내에 이견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양천구청, 모두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구민들이었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한 노력과 약속을 구민에게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지역의 주민은 구민이다.


태그:#양천구 준예산, #정치싸움, #새누리당 김용태, #양천구 구의회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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