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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정책으로 '초이노믹스'를 내세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정책으로 '초이노믹스'를 내세웠다. ⓒ 주철진

우선, 일면식도 없는데 불쑥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됨을 너그러이 헤아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공개편지를 쓰게 된 까닭은 이번 방학이 끝나면 중2가 되는 제 아이의 '삐딱한' 국가관 때문입니다. 그저 사춘기의 반항 같은 거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켜켜이 쌓인 국가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것이어서 아빠로서 설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엊그제 대통령께서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못난이라고 하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며 강조하셨지만, 제 아이를 두고 하신 말씀 같아 조금 뜨끔했습니다. 요즘 아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썩어버렸다'는 겁니다. 처세에 능하고 약삭빠른 사람만 살아남고 착한 사람은 바보가 되는 사회라면서, 이런저런 근거를 찾아댈 줄도 압니다.

신문 찾아 읽는 중1 아들의 삐딱함

몇 달 전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신문을 찾아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용어가 어려워 읽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기사를 정독하며 이따금 그 뜻을 묻거나 사전을 뒤적이기도 합니다. 사회의 공기로서 비리를 밝히고 진실을 드러내주는 게 신문의 존재 이유라지만 정치, 사회면 기사를 접하면서 중학생이 연신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은 부모로서 보기가 참 민망합니다.

요즘 들어선 철모르는 초등학생 동생에게까지 '삐딱함'이 전염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부채가 뭐고 소송이 뭔지, 또 청탁이 뭐고 좌천이 뭔지 등을 꼬치꼬치 물어오는 동생에게 오빠랍시고 이렇게 답하더군요. 우선은 동생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는 게 귀찮다는 뜻일 테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래. 너도 얼마 안 있어 우리나라가 얼마나 '웃기는' 나라인지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런데, 굳이 왜 부총리님을 찾았냐고요? 최근 채용 청탁 의혹에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리된 부총리님의 사례가 제 아이의 '증세'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아이가 관련 신문기사를 읽은 직후 제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 맞장구치기 뭣해서, 생뚱맞게 "한자 실력 많이 늘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었습니다.

사실 아이의 불신은 우선 '몰상식한' 검찰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엔 신문기사의 내용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중2 수준의 상식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라는 겁니다. '채용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잘 봐달라며 채용을 청탁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되묻더군요. 청탁한 사람은 무혐의고, 청탁을 받아들인 사람이 외려 처벌을 받는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겁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 같았으면 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을 검찰이 부총리님 앞에서는 충직한 변호인을 자처하는 모습에, 아이는 하도 익숙해져서 화도 안 난답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예를 여태 많이 봐왔고, 선생님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사람 되라는 말도 그것 때문 아니겠냐며 반문했습니다. 뭐라 답변하자니 궁색한 변명 같아 내내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행여 자신더러 검사가 되라는 말은 애초 꺼내지도 말라며 도끼눈을 떴습니다. 학창시절 공부 열심히 해서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높은 사람이 된 뒤 하는 짓이란 게 고작 저딴 거냐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아이의 저속한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명색이 최고 엘리트라는 검사들이 저렇게 '빨아대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되바라진' 아이를 아빠인 저는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요? 아빠이기 전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아이 앞에서 훈계하기는커녕 들어줄 면목조차 없습니다. 그저 모르는 척 속 편하게 '아니꼬우면 출세하라'고, '출세하면 돈도 법도 다 네 편'이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직업이 교사인 아빠로서, 아이에게 참 미안하고 적잖이 괴롭습니다.

이번 청탁 사건이 언론에 처음 제기됐을 때, 수업시간 고2 아이들과 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부총리님이 처벌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되레 검찰이 부총리님을 적극 변호하게 될 거라는 몇몇 아이들의 예언은 마치 족집게처럼 들어맞은 셈이 됐습니다. '웃픈' 현실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진 않습니다. 교실에서 아무리 정의와 도덕, 공평과 무사를 외친다 해도, 그들이 살아가며 몸으로 부대끼는 일상이 그와 동떨어져 있다면 그런 소중한 가치들은 한낱 조롱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길러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10억 원만 준다면 기꺼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답했다는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부총리님께서도 접하셨을 줄 압니다. 물론, 듣자마자 혀를 끌끌 차셨을 테지만, 그러한 말세적인 현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닐 겁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보듯, 부총리님 또한 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부총리님은 '떳떳한' 아빠인가요?

제가 부총리님께 공개편지를 쓴다니까, 제 아이가 꼭 여쭤달라는 게 하나 있습니다. 검찰의 결론 대로 이번 사건의 법적 책임이, 진정 부총리님의 청탁을 순순히 들어준 전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이사장과 운영지원실장 이 두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답니다. '가벼운' 청탁을 '과도하게' 받아들였다가 쇠고랑을 차게 된 그들을 구제해주실 의향은 없으신 지도 묻습니다.  

부총리님 말 한 마디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불법행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성적을 조작했다면, 그걸 과연 '가벼운' 청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부총리님은 국회의원 시절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었던 데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을 감사하고 평가하는 기획재정부의 수장이십니다. '가벼운' 청탁이라지만 아랫사람에게는 '주상 같은' 명령이었을 겁니다.

제 아이가 가장 역겨워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애국심'이라는 말입니다.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헬 조선'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답니다. 아직 자학사관을 심어준다는 검정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기도 전인데, 제 아이가 벌써 대통령의 우려대로 '혼이 비정상'이 된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헬 조선'이라는 말은 역사교육을 잘못해서 생겨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아이는 부총리님의 위세에 납작 엎드린 검찰의 무혐의 결정이 '헬 조선'의 백만 스물한 번째의 증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부총리님의 자녀분들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이번 사건에 대해 '떳떳한' 아빠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도 했습니다.

이 공개편지가 많이 불편하셨다면 부디 저, 아니 '삐딱한' 중1 제 아이의 무례함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총리님께서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 일하시면서 우리 경제가 더욱 나빠졌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라 많이 서운하실 테지만, 검찰을 변호인으로 삼아버린 이번 '쾌거'로 위안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병신년 1월 8일

벌써부터 '헬 조선' 운운하는 '삐딱한' 국가관을 지닌 중1 아이의 아빠 올림.


#최경환 경제부총리#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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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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