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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까지 챙길 여력이 어디 있나?"

동물보호를 외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말이다. 이런 말에 나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응답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사회의 최약자인 동물을 배려하는 나라에서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을 리 없다고 호소했다. 결국 '동물보호가 사람보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동물보호 운동을 하는 동료들에게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공공연히 말하게 됐다. 신념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사회에서 동물을 대변하는 외침이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한국이 왜 살기 힘든 나라인가에 대해 긴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을까.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동물보호의 외침은 잔소리가 되기 쉽다. 나도 힘들어죽겠는데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하라는 건가?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내게도 한국은 '두 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이다. 이곳에서의 삶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부족하지도 않은 내가 이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동물보호 활동가로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녹색당에 가입했다.

'권력정치'에 밀려 '삶의 정치'가 사라졌다

9일 <숨통이 트인다> 북콘서트에 출연한 저자들. 왼쪽부터 황윤 다큐영화감독, 김주온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 신지예 '오늘공작소' 대표.
 9일 <숨통이 트인다> 북콘서트에 출연한 저자들. 왼쪽부터 황윤 다큐영화감독, 김주온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 신지예 '오늘공작소' 대표.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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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에 투표 안 할지도 몰라."

오는 4월 13일 치러지는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두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 무관심하지도 않은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게 된 배경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저 친구에게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이야말로 기득권을 쥔 자들이 원하는 것'이며 '그럴수록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멀어진다'고 상기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숨통이 트인다>(포도밭출판사)의 여는 글에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현실에서,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자리와 이권을 놓고 싸우는 '더러운 정치판'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권력정치'만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정치에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삶의 정치'도 있다고 했다. 주거·환경·교육·인권·원전을 비롯하여 삶에 직결된 문제를 개인들이 혼자서 풀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치가 철저하게 권력정치로만 흐르면서 삶의 정치가 실종됐다고 한다. 그 결과 개인들이 삶의 문제를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각자생존'의 사회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팍팍해진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각자생존의 시스템을 부수고 '숨통이 트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녹색당은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황윤(다큐영화감독), 이계삼(밀양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김주온(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 구자상(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 신지예(오늘공작소 대표)를 각각 비례대표 후보 1~5번으로 선출했다.

<숨통이 트인다>는 이들 5명이 정치를 결심한 이유를 담은 책이다. 정치에 나선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1월 9일, <숨통이 트인다> 서울 북콘서트 개최

9일 북콘서트에는 김탁환 소설가와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영화감독이 초대손님으로 출연했다.
 9일 북콘서트에는 김탁환 소설가와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영화감독이 초대손님으로 출연했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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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이 트인다>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지난해 12월 말부터 전국 순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9일에는 서울 카톨릭청년회관에서 개최됐다. 책의 저자들 중 황윤, 김주온, 신지예 후보가 출연했고, 녹색당원인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국민에게 특히 알리고 싶은 녹색당 정책으로서, 황윤 비례대표 1번 후보는 동물권 정책을 들었다. 황 후보는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후보는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다"면서, "국내법에서 동물은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간주되어 그 권리가 철저히 무시돼왔다"고 했다. 또한 국내법상 동물이 '소유물'로 간주되어 주인에게 학대당하는 동물을 동물보호단체가 구출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황 후보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 중의 약자인 동물을 배려하는 것은 도덕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국내법에서 동물학대 범죄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가 진정 선진국이 되려면 유럽,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큐감독인 황 후보는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다룬 <작별>,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어 희생되는(로드킬) 야생동물을 조명한 <어느날 그 길에서>, 육식과 농장동물 문제를 다룬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비롯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하나같이 한국 동물권 운동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로서, 동물의 권리를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김주온 비례대표 3번 후보는 책 제목과 반대로 숨 막히는 사회인 오늘날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는 사회가 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최종 목표가 아닌 삶을 전환하는 출발점"이며, "머지않아 시대의 상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모든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보통선거권이 상식이 됐듯이, 기본소득 역시 시민의 경제적인 권리로서 상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배당과 핀란드에서 추진하는 기본소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신지예 비례대표 5번 후보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의제로서 교육과 집 문제를 들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집을 사고, 결혼해서 자가용을 보유하는 것이 보통의 삶으로 간주되는 교육에 우겨넣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경제적인 풍요를 이룬 사회에서는 다양한 삶의 노선이 마련돼야 하며, 그것이 국가정책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내 집 마련이 거의 불가능한 오늘날, "집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떠돌아다니지 않고 자신의 지역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자세한 정책의제는 책에 소개돼있다. 책에는 동물권·먹거리와 농업·탈핵·민주주의·기본소득·성평등과 인권·기후와 에너지·노동과 일자리·주거·교육으로 구성된 녹색당의 10가지 의제도 제시돼 있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의제들은 녹색당 정책자료집에 소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자살 기도한 친구에게 뭐라고 조언해야 하나?

김영준 당원은 20대 총선에서 서대문(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 김영준 녹색당원의 축하공연 김영준 당원은 20대 총선에서 서대문(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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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각각 서울 동작갑과 종로에 출마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조광수 영화감독, 이유진,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 그리고 보조사회를 맡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이유진,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각각 서울 동작갑과 종로에 출마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조광수 영화감독, 이유진,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 그리고 보조사회를 맡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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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김탁환 소설가와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인 임순례 영화감독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아직은 인지도가 낮은 녹색당을 당원으로서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하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김탁환 소설가는 "녹색당은 대하소설과 같은 당"이라고 응답했다.

장편작가인 그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면서, 글이 하루 잘 써진다고 해서 작품이 바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글이 잘 써진다고 하룻밤을 새면 사흘 동안 앓는다"면서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색당은 한 번에 잘해서 세상을 뒤집는 게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대하소설을 쓰는 당"이라고 설명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청중들의 질문에 후보들이 응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살기도를 한 친구가 있다"며, "미래가 안 보인다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 청중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신지예 후보는 "지금껏 청년활동을 하는 동안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며 찾아오는 청년들이 많았다"면서 '벌새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밀림에 화재가 나서 그곳에 살던 동물들이 정신없이 밀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벌새 한 마리가 작은 부리로 강물을 길어 나르며 불을 끄고 있었다. 그러자 코끼리가 '그건 네가 끄지 못하는 불'이라며 벌새를 비웃었다. 이 말에 벌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응답했다.

신 후보는 "오늘날 우리는 불타는 밀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벌새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녹색당에 모여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주변에 지친 친구가 있다면 함께 녹색당을 찾아오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녹색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뿌린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태그:#녹색당, #숨통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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