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는 전북 익산에 조성될 70만 평(232만㎡) 규모의 국가식품클러스터에 '할랄식품 전용단지'를 지을 계획이다. 할랄식품 산업을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심산이다.
그런데 이제 막 부지 조성 공사에 들어갔음에도, 논란의 수위로 치면 이미 '완공 단계'다. 당장 기독교계의 반발이 거세다. 온라인엔 서명운동도 등장했다. 지난 6일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시된 청원에는 엿새 만에 1만6천 명 넘는 누리꾼들이 동참했다.
이에 더해 종교계 언론들은 자극적인 말의 성찬을 올린다. "복음화율 전국 최고인 익산에 웬 이슬람 위한 시설이"(<국민일보>, 2015년 12월 18일 자)라며 기독교인들의 궐기를 부추기고, "이슬람 율법의 '할랄인증식품'은 '웰빙'이 아니다"(<교회와신앙>, 2015년 8월 21일 자)며 넌지시 불매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할랄식품 전용단지 추진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근거로 제시하는 이야기들은 사실인 걸까?
[의혹 1] 무슬림 들어오면 테러와 강간 횡행? 먼저 무슬림이 대거 유입된다는 것부터 소문에 불과하다. 할랄식품 생산 공장에 무슬림을 채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슬림이 아닌 사람도 할랄식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할랄식 도축 제외).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입을 모아 예견한다. 단지가 들어서는 순간, 대한민국의 이슬람화가 시작되어 무슬림들이 자행하는 테러를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기엔 '이슬람교는 악(惡)의 종교다. 무슬림들은 위험하다. 언젠가 범죄를 일으킬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종교학의 서문을 연 막스 뮐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사실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다. '무슬림'이라는 말이 형용사로 쓰일 때, '평화로운'이 된다. 선지자 무함마드가 알라(신)에게서 받은 계시를 모아놓은 책 코란은 생명을 존중하라 가르친다. "무고한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은 전 인류를 죽이는 것과 같기"(5장 35절) 때문에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전쟁과 살인은 금물이다.
무슬림이 많아지면 테러와 강력범죄가 빈발할 것이란 걱정은 기우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14만3천여 명의 무슬림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 이들 모두가 흉악범의 DNA를 지니고 있을까. 내국인들 중에서도 범죄자가 나오는 건 매한가지다. 당장 오늘자 조간신문을 펼쳐들자. 사회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한결같이 내국인들의 범죄다.
[의혹 2] 산 채로 소머리를 자른다?생명 윤리의 차원에서 할랄식품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살아 있는 소의 목을 자르고 피를 흘리게 하는 할랄식 도축이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 학대 금지'를 명백히 못 박아뒀다. 목을 매다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수 없다.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죽여서도 안 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지난해 3월 '할랄식품 생산기술 안내서'를 펴냈다. 할랄식품의 생산요건과 그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제시돼 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안내서에 따르면, '권장하진 않으나' 가축을 공기압 장치로 머리를 치거나 전기 충격을 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절시킨 뒤 도축한다. 이 부분은 우리가 흔히 먹는 일반 육류의 도축 방식과 똑같다.
이를 두고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등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이제 '불가피한 경우'에 기절(을 통한 도축)을 허용한다. 가축 도축의 현대화 흐름에 맞춰 각 나라들의 할랄식품 인증기준이 이러한 사항(기절을 통한 도축)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기절을 하더라도 가축의 심장은 여전히 팔팔 뛰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상태'로 본다는 것이다.
동물도 인간처럼 통각이 있는 생명체다. 따라서 인간이 피치 못한 이유로 짐승의 육체를 앗아야 한다면 이들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여줘야 한다. 이러한 '동물복지' 개념을 이젠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의혹 3] 후발주자라 할랄식품 산업 망한다?
경제적 논리를 펴서 할랄식품 산업의 미래를 비관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소가 외국 소에 견줬을 때 비싼 마당에 과연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우린 아마 안될 거야"를 되뇌며 자조하는 격이다.
후발주자라 해서 안 될 거였으면, 1960~1980년대 일어난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우리의 주력 수출산업은 진즉에 무너졌어야 했다. 또 할랄식품은 아니지만, 일본의 '와규(일본산 쇠고기)'는 세계적인 고급 브랜드로 통한다.
정부 차원에서 순수 혈통을 지닌 소의 코무늬를 탁본으로 떠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송아지의 가계도를 파악하고 그 DNA를 꾸준히 관리한다. 양질의 고급 식품을 내놓는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한다면 우리 산업도 승산이 있다.
막 출발선 위에 선 할랄식품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와 관련 업계, 유관단체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중요하다. 정부의 재정적·법률적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지난 12일 농림축산식품부의 '할랄식품 산업 TF'가 해체됐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12일부로 할랄식품 산업 TF(태스크포스)가 해체됐다"고 밝혔다. 기독교계의 반발이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 할랄식품 정책의 밑그림을 대강 그렸기 때문에, TF의 핵심 역할은 끝났다. 할랄식품 산업 지원 업무는 다른 부서로 이관됐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어째 뒷맛이 쌉싸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