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산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고농도의 산소는 화재 발생률을 높이고, 폐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사람이 고농도의 산소에 장시간 노출되면 폐에 염증이 생겨 결국 풍부한 산소 속에서 질식사 하는 모순된 상황을 맞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약 38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시 지구에서 혐기성 생물에게 산소는 독가스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산소가 유독한데도 태초의 생명체들은 산소호흡을 고집했다. 이는 산소 호흡이 황이나 철과 같은 화합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수한 효율을 가진 호기성 생물은 산소가 풍부한 환경이 되자 혐기성 생물을 몰아내고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산소의 독성이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다세포 생물이 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세상을 움직이는 화학>에서.<세상을 움직이는 화학>(다른 출판사 펴냄)을 지난주 출·퇴근 길 내내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었다. 막연히 멀고, 어렵게만 생각해온 과학 관련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책은 5분만 차단되어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를 만큼 인류는 물론 많은 생명들에게 가장 중요한 산소의 여러 성질과 그로 인한 다양한 현상을 '헐크 같은 산소'란 제목으로 조근 조근 들려준다.
영화 <헐크>에서 실험 도중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 배너 박사는 흥분하게 되면 초록색 괴물인 헐크로 변한다. 평소에는 다정한 과학자의 모습이지만, 화가 나면 무서운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호흡할 때 발생하는 활성화산소는 배너 박사의 또 다른 모습이랄 수 있는 헐크처럼 산소의 또 다른 성질이다.
활성화산소는 그리 오래지 않은 최근 언젠가부터 노화나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거론, 인체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 1호가 되었다.
그와 함께 항산화제나 항산화식품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아니, 꾸준한 항산화제 복용은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활성화산소는 알려진 것처럼 과연 해로운 존재인가? 그러니 상식대로 반드시 항산화제나 황산화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어야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걸까?
"항산화제나 항산화식품을 둘러싼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요즘, 산소와 활성화산소에 대해 흔히 알려진 사실과 그 속에 숨은 반전을 통해 산소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타민 씨가 항산화작용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용량으로 계속 먹는 것이 활성화산소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인지는 분명치 않다. 항산화제를 과다 복용하는 것과 건강과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활성산소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이는 활성산소가 정상적인 세포뿐만 아니라 병원균을 공격하는 역할은 물론 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촉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 안의 활성산소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 효과가 의심스러운 고용량의 항산화제를 복용할 필요는 없다. 가장 확실한 것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만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 <세상을 움직이는 화학>에서.저자는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산소지만 활성화산소라는 어두운 면도 존재하는 것은 진화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며, 활성화산소도 무조건 해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산소의 본질과 활성화산소의 생성과 우리 몸에서의 역할들을 설명한다.
과학의 발달로 얼마 전까지 그 존재조차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각되곤 한다. 나아가 활성화산소처럼 건강에 해로우니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공공의 적 같은 존재가 되곤 한다. 아울러 항산화제나 항산화식품들처럼 그를 해결해주는 것들이 등장, 보편적인 상식이 되곤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 누구나의 희망이다. 그래봤자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낸 약에 불과한데 맹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건강에 과연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남들은 다 먹는데 내가 너무 무심한 것 아냐?'와 같은 생각으로 혼란스럽고, 흔들리게 된다. 활성화산소와 항산화제도 최근 몇 년 전부터 이처럼 혼란스럽고 고민스러운 존재였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혼란과 고민으로 이왕이면 항산화물질이 들어있다는 제품을 선택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의 '항산화제나 항산화식품은 활성화산소로부터 건강을 지키거나 노화를 줄이는 그 최선책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참고, 단지 활성화산소를 제거하고자 비타민 씨와 같은 영양제를 먹거나 '황산화식품'들을 선호한다면 책을 통해 산소와 활성화산소의 진실을 꼭 접해본 후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날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비만, 무조건 해로울까? ▲관련 논문이 수천 건에 이르는데도 여전히, 끊임없이 발표되는 전 세계 인류의 관심사 커피, 과학적으로 해석해보니... ▲옛 동굴과 같은 유물 벽화에 붉은 색이 유독 많은 그 까닭은 무엇일까? ▲경천사지10층 석탑(국보 제66호)과 같은 대리석 유물들을 손상시키는 물질들은 무엇일까? ▲그리 멀지 않아 '나만을 위한 맞춤 알약'이 가능해진다? ▲이산화탄소는 과연 우리에게 해롭기만한 '악의 가스'일까? ▲상처엔 홍합을 바르세요? 그렇다면 홍합의 무엇으로? ▲방사선은 사람을 살리는 고마운 물질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과 같은 수많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것은 실은 화학 덕분이다?
책은 우주 탄생과 불의 사용,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환경오염을 줄이는 그 대안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미래 에너지까지, 인류 역사와 생활 전반에 깊이 밀착되어 있는 화학, 우리의 생활 전반에 밀착되어 있는 화학, 그 흥미로운 사실들을 6장에 걸쳐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 친화'나 '천연물질'과 같은 용어들이 우리 몸에 이상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동시에 '화학물질'은 우리 몸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물질로 낙인찍혀 버렸다. 이는 오늘날 보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화학이 정말 우리의 삶을 위협하며 해를 끼치는, 그래서 사라져야 하는 그런 존재인가? <세상을 움직이는 화학>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화학 덕분"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아울러 화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버리는 사람들도 많았으면 좋겠다.
"금을 귀금속이라 부르는 진짜 이유는 금이 다른 금속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금은 잘 산화되지 않는다. 녹슬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강한 산이나 알칼리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도도한 화려함을 지닌 채 수천 년을 너끈히 버틸 수 있는 금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는 유물은 대부분 금으로 만든 것이다. 금은 오직 왕수(염산과 질산을 3:1로 혼합한 용액)라 불리는 강한 산성 용액에서만 녹는다. 이 특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로부터 노벨상 메달을 지키는데 활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나치는 독일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겨 메달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독일인 '막스 폰 라우에'와 '제임스 프랑크'는 자신들의 메달을 '닐스 보어'에게 맡겼고, 헝가리의 화학자 '게오르크 헤베시'가 이 메달을 왕수에 녹여 보어 연구소의 선반에 보관해 검열을 피했다. 전쟁이 끝난 후 헤베시는 왕수에서 금을 추출해 노벨 재단에 보냈고, 다시 메달로 만들어 주인에게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 <세상을 움직이는 화학>에서.저자는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하는, 특히 '생활 속에서 과학적인 요소들을 찾아 관련 다양한 상식들을 녹여 씀으로써 과학을 쉽게 알려주는 것'으로도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이 책도 저자의 이런 글쓰기 특성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금 이야기처럼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읽는 맛이 쏠쏠한 그 이유가 되겠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을 움직이는 화학>(최원석) | 다른 | 2015-11-23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