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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지난 11일,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혐의로 1097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6개월간 지속되며 수사 대상자가 1649명에 달했던 데 반해, 이번 민중총궐기는 단 하루의 집회임에도 1097명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순 집회참가자를 구속하거나,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에게도 출석요구서를 보내는 등 마구잡이식 연행과 수사를 벌여 "공안탄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3일 '민중총궐기' 건으로 체포되었고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적 있는 김수로(21)씨를 11일 만났다. 청년 정치단체인 '청년좌파'의 회원이기도 한 김수로씨는 충남 예산에서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다.

출석요구서 하나 없는 체포·구속영장 청구... 경찰의 무리한 수사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농장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김수로(21) 씨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농장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김수로(21) 씨
ⓒ 안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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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해 집을 비웠던 날, 나를 만나러 경찰이 집에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경찰이 직접 집으로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내렸는데 경찰들이 있었다. 체포영장을 디밀어, 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니 수갑을 채워 스타렉스에 태웠다."

김수로씨는 1년 전부터 대학을 휴학하고 가업인 농장 운영을 도맡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12월 1일 오후 3시 45분경 서울에서 있었던 다른 재판을 받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경찰 4명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김수로씨의 집 앞까지 경찰이 찾아와 체포할 수 있도록 체포 영장이 발부된 이유는 황당했다. 수사당국과 법원은 김수로씨가 '수사기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당시 '청년좌파' 성명 : http://yleft.kr/wp/?p=2856).

그는 진행되고 있던 재판에도 성실하게 출석하고 있었고, 주거와 신분이 명확한 상태였다. 김수로씨가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던 것처럼, 경찰은 김수로씨가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농장을 통보 없이 방문해 주거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김수로씨는 체포되기 전까지 서면으로 된 출석요구서 한 장도 받아보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체포 이후에 수사당국은 무려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구속은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염려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김수로씨가 '민중총궐기' 참가 관련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경찰이 직접 집을 찾아와 주거지를 확인했고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고 있으니, 주거불명이나 도망의 우려가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 청구는 강행되었다. 다행히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기각됐으나, 경찰의 원칙을 무시한 탄압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SNS 사찰'로 친구에게도 수사협조 요구"

"석방 후 경찰서로 2차 조사를 받으러 오란 연락이 왔고, 가기 전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경찰의 압력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수사관은 경찰 버스에 묶인 밧줄을 당기는 채증사진 세 장을 보여주며 내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여성에 대해 물었다. 몇 분 간격으로 찍힌 세 장의 사진에서 그 두 명은 나와 나란히 서 있었고, 따라서 경찰은 그들이 나의 일행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경찰은 대학동기 한 명의 이름을 대며 그 친구를 아냐고 물었다. 경찰은 이어 "여기 뒤에 있는 여성이 김ㅇㅇ인데...."라며 그가 확실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스크를 끼고 있던 그 여성은 내 친구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말했던 그 친구는 1년 가까이 교류가 없었으며, 재학 당시에도 깊은 친분을 나눴던 사이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집회에도 자주 참가하지 않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대학생이었다."

김수로씨는 경찰이 자신의 SNS를 사찰했고, SNS 친구 중 A씨의 신상을 구해 연락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신고가 들어왔다'며 '11월 14일 집회에 참가한 사실이 있냐'고 물었다. A씨와 부모님이 함께 일하는 가게에 찾아가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조사 후 경찰은 A씨에게 '11월 14일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진술서를 요구했다.

이 같은 자의적 절차에 따른 수사는 범죄수사규칙 위반이기도 하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54조에 따르면 출석을 요구할 때는 출석요구서를 발부해야 하며, 긴급성을 요하는 때에도 전화·팩스·전자우편·문자메시지(SMS) 등으로 출석 요구를 하도록 규정돼있다.

"경찰은 대단한 장비나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아도 SNS 사찰을 통해 내 주변 인물들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그 친구가 내가 속한 단체의 회원인지 등에 대해 계속 물었다.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으로 집회에 참가한 것이라면 처벌 시 그만큼 형량에서 참작되니, 경찰은 내가 개인으로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고자 했다. 친구가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했으나, 경찰이 어떻게 행보를 이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종류의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을 친구가 출석요구를 받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눈앞이 깜깜했다."

"일상이 위협당하고 있다"

집 앞에서 체포된 이후 면회를 하고 있는 모습
 집 앞에서 체포된 이후 면회를 하고 있는 모습
ⓒ 안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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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공안탄압이 아무 관련도 없는 내 주변 인물에게까지 뻗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 사실이 주는 중압감은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을 때보다 더 강하게 마음을 내리눌렀다. 검경은 내 일상과 관계망에 뛰어들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음껏 휘저은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삶을 자신들 앞에 증명하길 바랐다.

나의 선택은 없었다. 내 일상은 보여져야 했고, 증명 당해야 했다. 집회에 참가해 정부에 비판했다는 목소리를 낸 것은 곧 죄가 되었고,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부끄러움도 없이 출석요구서 발송이나 자택방문, 사찰, 체포와 구속영장 남발을 통해 나를 비롯한 집회참가자들의 삶을 옥죄었다."

김수로씨의 사례 외에도 SNS를 사찰해 경찰이 수사를 자행한 대표적 사례로 안아무개씨의 사례가 있다. 심지어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지난해 12월 23일, 경찰은 안씨 가족의 집을 찾아가 SNS 계정을 보여주며 '민중총궐기' 관련 수사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안씨는 현재 영국에서 유학 중으로, 2014년 9월 이후 한국에 없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경찰이 개인의 SNS를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있으며 연관성을 보이는 이를 무작정 수사 대상으로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기도 했다.

경찰이 '집회 참가'와 같은 정치적 사안에서조차 무작정 SNS 친구들을 수사대상에 올리고, SNS 게시물들을 수사자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엄청난 위협일 수 있다. 더불어 이 같은 광범위한 수사기관의 위협이야말로 정치적 표현의 위축과, 민주주의에서의 위축을 가져오는 원흉이 아닐까. 끝으로 김수로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친구는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경찰이 사진 속 여성과 닮은 내 주변 인물을 다시 찾아 나설 것을 걱정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미 경찰은 나의 설마를 여러 차례 뛰어넘었다. 상식이 사라진 시대에서,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주일 전, 경찰은 나를 네 번째로 찾아왔다. 검사가 주거지 확인을 요청한 탓이라고 했다. 구속 영장을 또 청구하고 싶었을까. 경찰은 내가 농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갔다. 그들이 두렵지 않고, 움츠러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거리로 나갈 것이고, 견뎌낼 것이며, 맞서 싸울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선 말하지 않는 공권력의 탄압을 두 눈 부릅뜨고 기억할 것이다. 계속해서 일상을 감시당하고, 난데없이 체포된다고 해도 난 나의 삶 터를 더욱 단단히 다질 것이다.

공권력이 깨달아야 할 것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 과정이 아주 느리고 도저히 승리에 다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이젠 그만두길 바란다. 난 당신들이 아주 수치스럽다."


태그:#민중총궐기, #김수로, #공안탄압, #SNS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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