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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뛰어 노는 나라(奈良)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에 들른 것은 지난 11일 왕인박사 신사(神社)를 들른 뒤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저녁 해가 짧아 오중탑에 긴 그림자가 벌써 지기 시작했다.

나라공원(奈良公園)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그 유명한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사슴들이 뛰어놀아 고찰 못지않게 인기가 있다. 그러나 기자가 찾은 날은 사슴의 뿔을 자르는 시기인지 흥복사 안에는 겨우 한 녀석만 비실거리고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을 꼽으라면 으뜸인 곳이 '나라·교토'이다. 그 만큼 이곳은 과거 천년 고도답게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불교를 국교로 하던 나라시대였던 만큼 명찰, 고찰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나라'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기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과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오는 곳이 나라 지역이다. 속내란 다름 아닌 일본 고전을 전공하면서 만나게 된 각 유적지의 역사를 뜻한다.

흥복사 천년고도 나라 흥복사, 오른쪽 오중탑은 국보
흥복사천년고도 나라 흥복사, 오른쪽 오중탑은 국보 ⓒ 이윤옥

흥복사만 해도 그렇다. 긴테츠(近鉄) 나라역(奈良駅)에서 기념품 가게를 지나 동대사로 걷다보면 그 입구에 자리한 곳이 흥복사이다. 절에 들어서는 순간 사슴들이 먹을 것을 주나 싶어 달라붙어 이 녀석들과 잠시 놀다가 높다란 오중탑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지나치기 쉬운 곳이 흥복사다. 그러나 흥복사는 그렇게 스리슬쩍 의미 없이 지나치기에는,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아쉬운 절이다.

법상종의 대본산인 흥복사는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 권력을 쥐고 흔든 후지와라 씨 집안의 보리사(氏寺)로 고대 한국계 스님들이 주석하던 유서 깊은 절이다. 흥복사는 고도 나라(古都 奈良)의 문화재임은 물론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록된 절로 1300년 전 이곳에서 백제 비구니 법명스님의 법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절에서는 해마다 유마회가 전해오는데 유마회는 후지와라 씨의 제삿날 행해오는 풍습이다. 이 법회의 기원은 후지와라 씨가 중병에 걸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약이 무효한 후지와라 씨는 백제에서 온 비구니 스님 법명을 초대하여 백제국에도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법명스님이 백제에도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후지와라 씨는 그 병을 어떻게 해서 치료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법명스님은 이 병은 약으로도 안 되고 의사도 치료 할 수 없는 병으로 오로지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유마거사 상을 만들어 봉안한 뒤 유마경을 독송하면 나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에 후지와라 씨는 즉시 법명스님 말대로 했더니 중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후지와라 씨는 크게 기뻐하며 백제 스님을 극진히 모셨다."

이 이야기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기에 만들어진 일본 최대 설화집인 <곤쟈쿠이야기> 12의 제3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흥복사는 요즘으로 치면 거물급 정치인인 후지와라노 가마타리(藤原鎌足)의 치유를 위해 세운 절인데 후지와라 씨는 천지왕(天智天皇)의 오른팔로 조정에서 큰 역할 하던 호족이다.

남원당 계단 긴테츠 나라역에서 걷다가 만나는 남원당으로 가는 계단
남원당 계단긴테츠 나라역에서 걷다가 만나는 남원당으로 가는 계단 ⓒ 이윤옥

당시 천지왕의 오른팔이던 후지와라 씨의 중병을 놓고 조정에서 얼마나 근심걱정이 컸을지는 안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고 많은 승려 가운데 백제의 비구니 스님 법명이 뽑힌 것도 흥미로울 뿐더러 더 흥미로운 것은 후지와라 씨의 후손 이야기이다. <곤쟈쿠이야기>를 더 살펴보자.

"백제 비구니 스님 법명의 기도로 병이 씻은 듯이 치유된 후지와라 씨는 법명스님을 극진히 모시면서 유마회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하다가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유마회는 그만 단절 되어 버렸다.

후지와라 씨의 아들은 아직 어렸으므로 유마회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커서 아버지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어느 날 그만 손이 말을 듣지 않는 병에 걸렸다. 약을 써도 차도가 없자 점쟁이한테 물으니 유마회를 중단한 탓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에 다시 유마회를 재개하려고 뛰어난 승려를 찾은 결과 신라 출신으로 당 유학승인 관지법사(觀智法師)가 천거되었다. 후지와라 씨의 아들은 관지법사를 정중히 초대하여 흥복사에서 유마회를 열게 하는데 이날은 관내의 승려들과 학자들을 대거 초청하여 성대한 의식을 치루고 참석자들에게 후한 보시를 했다."

중금당 중금당은 2018(평성 30년)년 까지 공사중이다.
중금당중금당은 2018(평성 30년)년 까지 공사중이다. ⓒ 이윤옥

흥복사에는 국보 26개, 중요문화재 44개, 지정문화재 3개 외에도 많은 보물을 간직한 나라의 유서 깊은 절로 특히 눈여겨 볼 곳은 동금당(東金堂)이다. 일본 절에는 금당이라는 양식의 건물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대웅전에 속하는 것으로 동금당은 여러 번 소실되어 현재 모습은 1415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동금당 안에는 1207년 작품으로 알려진 국보 목조십이신장입상(木造十二神将立像)이 있는데 약사여래를 지키는 12신상의 개성 있는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흥복사 오중탑(五重塔)은 1426년에 재건된 것으로 50.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목조탑이다. 이는 교토의 상징인 진언종 도량인 동사(東寺)의 5중탑 (54.8미터)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탑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석탑보다는 목탑이 주종을 이루는데 흥복사 오중탑은 6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야간에는 조명을 받아 탑이 더욱 아름답다.

흥복사의 오중탑에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명치정부 때의 '폐불훼석(廃仏毀釈)' 사건이다. 폐불훼석이란 말 그대로 불교를 탄압하던 정책으로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을 기억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명치 정부 때 흥복사는 절 이름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탄압받았다. 경내의 전각들은 모두 몰수 상태로 특히 오중탑과 삼중탑은 목재이므로 땔감용으로 팔려나갔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에 의해 장작용으로 부서지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오중탑 국보 오중탑(五重塔)은 1426년에 재건된 것으로 50.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목조탑이다. 이는 교토의 상징인 진언종 도량인 동사(東寺)의 5중탑 (54.8미터)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탑이다.
오중탑국보 오중탑(五重塔)은 1426년에 재건된 것으로 50.8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목조탑이다. 이는 교토의 상징인 진언종 도량인 동사(東寺)의 5중탑 (54.8미터)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목조탑이다. ⓒ 이윤옥

이후 명치유신의 불교탄압 광풍이 몰아친 뒤 14년이 지난 1882년에 이르러 흥복사란 절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절 소유권도 다시 흥복사에 넘겨주어 폐사 직전의 절을 부흥하게 된 것이다.

흥복사 안에는 여러 전각들이 있는데 이 전각은 창건 년대가 각기 다르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은 아담한 8각원당(八角円堂) 모양의 북원당(北円堂)으로 국보인 이 전각은 721년에 세워졌다. 흥복사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북원당에 이어 남원당(南円堂)은 813년이 지어진 건물로 서국33개 순례장소로 많은 참배객들이 찾는 곳이다. 팔각당 건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마지막으로 들러보면 좋은 곳은 국보관으로 이곳에는 흥복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국보급 불상조각을 비롯하여 회화, 공예품, 고고학 자료, 서적 등 나라시대의 뛰어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1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흥복사는 나라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러 백제 비구니 스님 법명의 발자취를 느껴 볼 만한 큰 절이지만 바로 옆의 동대사만 바삐 둘러보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동대사 뒤쪽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창건한 반야사(般若寺, 한냐지)를 들러 보는 답사경로도 권할 만하다.

사슴 나라공원에 속한 흥복사에는 동대사와 함께 사슴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으로 유명한데 기자가 간 날은 뿔이 잘린채 사슴 한마리만 비실 거리고 있었다
사슴나라공원에 속한 흥복사에는 동대사와 함께 사슴들이 자유롭게 뛰어 노는 것으로 유명한데 기자가 간 날은 뿔이 잘린채 사슴 한마리만 비실 거리고 있었다 ⓒ 이윤옥

나라의 고찰 흥복사는 긴테츠나라역( 近鉄奈良駅)에서 7분 정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쉽다. 경내는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다만 국보관과 동금당 등 일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건물은 유료다. 사슴이 한가롭게 노니는 드넓은 경내를 거닐다 문득 마주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신라의 관지스님과 법명스님을 떠 올려보는 것은 기자만의 그리움일는지 모른다.

[찾아 가는 길]
* 주소 : 奈良県奈良市登大路町48 (興福寺, 고후쿠지)
* 가는 길 : 긴테츠(近鉄) 나라역(奈良駅)에서 걸어 7분 거리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냄



#흥복사#법명스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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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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