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맡기는 문제 때문에 '시댁 합가'를 고민한다고 했지? 몇 년 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고…. 그럼에도 시원하면서도 좋은 이야기만을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아주 예민한 문제, '시댁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해.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 시댁 이야기라면 모두들 불편한 이야기들 뿐이야. 그렇지? 네이버에 '시댁'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시댁 스트레스' '시댁 갈등' '시댁 안부전화' '시댁 이혼' 등의 관련 검색어들이 쏟아져나와.

반면에 남편이 아내의 친정을 지칭하는 '처가'로 검색을 해보니 '처가살이' 하나를 빼고는 유명 치킨브랜드가 나오더라고. 이 정도만 봐도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동시에 여성에게 부여되는 의무와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얼마인지 가늠이 되지?

시댁이라는 관계도 결국은 인간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관계이고 사회라,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다양한 유형에 따라서 문제가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해. 정말 조언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시댁 합가 3년 차…. 이야기해줄께. 나보다 더 오래 시부모님 모시고 살고 있다면, 내가 하는 조언은 어쩌면 필요없을지도 몰라. 이글은 그러니까, 아이 양육 때문에 시댁 합가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하는 이야기야.

다들 안 된다는 시댁 합가

 시댁의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시댁의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pixabay

나는 둘째를 낳고 복직하면서 합가를 고민했었어. 내 직업 특성상 매일 칼퇴근은 절대 불가능하고, 가끔 밤샘작업도 해야 하고, 거기에 주말근무도 종종 발생을 하기 때문에 누군가 집에서 전폭적으로 아이들과 가사를 담당해주지 않는 한 내 직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전업주부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섰지. 하지만 나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거기엔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어. 입주도우미도 알아봤었어. 면접도 봤었지. 연년생 아이 둘에, 둘째는 젖먹이였으니 금액이 상당히 세더라고. 주택대출금, 입주도우미 비용, 아이 기관비용…. 정말 답이 안 나오더라. 복직과 전업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는지 몰라.

그때 지원군으로 시어머니가 나서셨어. 아이들을 봐줄 테니 합가하면 어떻겠냐고. 하…, 그런데 알잖아? 며느리들에게 시댁이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존재인지 말이야. 고민을 시작했지. 정말 수많은 고민을 했었어. 인터넷 카페에서 검색도 하고, 질문도 올려봤지.

그런데 댓글들이 전부 다 시댁 합가는 절대 안 된다는 거야. 이미 시댁과 같이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선배에게도 물어봤어. 선배는 자기도 지금 같이 살지만 권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 몸은 편한데,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은 시부모님도 불편해진다고. 서로를 위해서는 그냥 근처로 이사가라고. 그것도 큰 모험이라고 조언했지.

그런데, 나는 시댁 합가를 택했어.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여건 때문이기도 했고, 시댁과 내 직장과는 출근 시간만 2시간이 걸리는지라 집을 나오는 시각은 늘 새벽이어야 하더라고. 둘째가 아직 돌도 안 된 젖먹이라서 어두컴컴한 새벽을 뚫고 매일 시댁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였어.

만약 네가 시댁 합가를 선택한다면...

 '완전한 남남'이라고 생각하세요.
'완전한 남남'이라고 생각하세요. ⓒ pixabay

일단 시댁 합가를 선택했다면, 그리고 아이들 양육을 시부모님(특히 시어머니)께 맡기기로했다면, 시댁이라는 존재는 남편의 부모님이기 이전에 '완전한 남남'이라고 생각해야 해.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지.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도 위로받을 곳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남이 내 아이를 봐주는 것이니 엎드려 절이라도 할 만큼 고마워 해야 한다는 사실이지.

손주가 핏줄 아니냐고? 손주가 핏줄은 맞지. 하지만, 손주를 돌보는 일은 우리나라 정서 상 엄마의 일이고, 며느리의 일인 게지. 남편은 보조적인 역할일 뿐, 아직도 우리나라는 주 양육자를 엄마로 보잖아. 이 엄마의 일을 대신해주는 거야. 시어머니가, 그것도 남이!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일은 시어머니가 큰 마음을 먹고 며느리의 일을 대신해주는 거라고 봐야 해.

문제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며느리는 퇴근 후에도 피곤한 몸을 쉽게 놀릴 수 없다는 것이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퇴근만 기다리고, 며느리의 휴가만 기다리는데, 그 앞에서 차마 쉬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거지. 알잖아. 아이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힘든 일을 대신했는데, 그 앞에서 나마저 응석 부릴 수는 없는 거니까.

하…. 이럴 때 남편은 대신해서 설거지도 좀 해주고, 저녁식사도 좀 차리면 얼마나 좋아. 물론 남편은 잘 도와줘. 아이를 씻기기도 해주고, 양치도 시켜주고, 방도 치워주지. 하지만, 남편과 나의 두 사람의 영역이 아닌 시어머니와 나의 영역, 즉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는 부엌이라는 곳에서 행해지는 행위는 남편이라는 존재가 도와주기 힘들어.

왜냐하면 그곳은 남편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님이 아들을 챙겨주던 곳이지 아들 스스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는 곳인 거야. 욕실과 거실, 안방이 아닌 부엌이라는 공간은 오로지 여자들이 가족들을 챙기는 곳으로 인식돼온 지가 수백, 수천 년이야. 이것을 오늘날 너 혼자 개선장군처럼 바꿔보겠다는 의지는 수 많은 적군들 속에 혼자 소총 들고 들어가 싸우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시댁이라는 곳에서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시대와 투쟁해야 하는 것이고, 시어머니의 과거와 투쟁해야 하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나는 젊었을 때 일도 하면서 애 키웠다.' '젊었을 때 남편 벌이 없어도 애들 잘 키웠어.' '엄마란 어쩔 수 없다.'

이런 그 당시의 가치관을 강요당하는 거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의 여자와 현대의 여성의 충돌이라고 봐야 해. 그리고 '내가 아이를 봐주니 넌 얼마나 편하니'라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어.

시댁 합가의 장점은 뭐가 있을까

 가족 나들이 때 손주 사진을 찍어주는 어머님, 자신의 핸드폰 화면바탕에 손주들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가족 나들이 때 손주 사진을 찍어주는 어머님, 자신의 핸드폰 화면바탕에 손주들 사진으로 가득합니다. ⓒ 이혜선

이렇게 이야기하니 단점만 수두룩한 것 같지만, 사실 장점도 아주 많아. 일단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이야. 친정이나 시부모님이 거리상 멀거나 사정이 안 돼서 도움받지 못할 경우 힘들어하는 거 많이 봤잖아? 일단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마워해야 해. 그런데 '시댁 합가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신중해지긴 해.

첫 번째 장점으로 나는 출근과 퇴근시간의 자유로움을 꼽겠어. 사실 근처에 살아도 되긴 하는데, 아침에 정말 내 몸 하나만 챙겨서 나오면 되니까.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지. 아이 옷을 입히고, 지각할까봐, 혹은 교통편을 놓칠까봐 아이를 재촉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잠이 덜 깬 아이 볼에 입맞춤만 하고 나오면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갑자기 퇴근시간에 회의가 잡히거나 야근을 하게 되면 어머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회사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거지.

두 번째 장점은, 아이들의 정서야. 집안에 같이 생활하는 어른이 많다 보니까 아이들이 많이 안정돼 있어. 외로울 틈이 없지. 어른들이야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계속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존재거든.

퇴근하면 정말 피곤에 쩔어서 아이들 책 한 권 읽어주기 벅찬데 호기심 때문에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정성스럽게 대답하기도 너무 힘들어. 그런데 어른들이 많으니까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질문하고 배우지. 그중에는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시부모님들의 지혜도 많아. 이 세상에서 부모 말고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100% 순수한 사랑으로 대하고 대답해주겠어.

세 번째 장점으로 평일엔 살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물론 칼퇴근 하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집안일을 어머님 혼자 하시도록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칼퇴근을 할 수 없는 구조에 1시간 정도의 퇴근시간이 소요된다면, 이미 집에 가면 이미 오후 8~9시야.

그 시간에 집안에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하느라 아이와 눈을 맞출 시간도 부족한 게 워킹맘의 현실이잖아. 그런데 평일에는 어머님의 보조를 조금 받으면 집안일이 훨씬 줄어들어있어. 혹시 어머님이 힘들어하신다면 가사도우미 도움을 받는 것도 좋고. 나도 복직 초기에 어머님께서 힘들어하셔서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좀 받았어. 이후, 어머님과 내가 잘 조율해가니 또 하게 되더라고.

아, 이렇게 적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데는 남성보다 여성의 역할이 참 크다, 그렇지? 가끔 어머님 힘드신 모습 볼 때마다 참 죄송스러워. 특히 아이들 방학 때,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칠순이 다 되신 어머님이 대답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힘드실 때도 있으니까. 아버님도 계시고, 남편도 있긴 해. 잘 놀아주고, 씻기고, 잘해주는 편이야.

하지만, 밥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장보고, 아이들 준비물 챙기고, 빨래하고 등등…. 남성들에 비해 2~3배쯤 되는 일들을 챙기니까, 그리고 어머님은 그 일을 나 대신 늘 하고 계신 분이니까, 조금 서운해도 참게 되더라고. 다만, 화가 좀 나는 걸 계속 참고, 희생해야 하는 게 어머님 세대나 우리 세대나 왜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선 무척 화가 나곤 하지.

그래서, 결론은...

후배여, 너의 질문에 나는 합가를 하라고도, 혹은 하지 말라고도 하지 못하겠어. 내가 합가 이전 선배 워킹맘에게 물었더니 대답해줬던 것처럼,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몸은 편하고, 아이에게도 많이 좋지만, 마음은 불편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아이들을 봐주겠다고 시어머님께서 이야기하셨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해야 해. 그렇게 해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환경인 거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은 존재해. 그리고 잘한 선택도 잘못한 선택도 없어.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하는 나의 모습만 있을 뿐이지. 이 고민을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워킹맘의 치열한 삶을 통해서 너의 성장을 응원할게. 파이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을 담아내다>에도 실렸습니다.



#워킹맘에세이#워킹맘육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