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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하라 민주주의
응답하라 민주주의 ⓒ 참여사회

원래 이 칼럼의 제목을 '응답하라 1987!'로 하고 싶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정체를 전환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그해, '1987년'을 향해 응답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해 6월의 초여름을 생생히 기억한다.

남포동과 서면 거리를 자욱하게 메웠던 그 메케한 최루탄의 냄새,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서로를 응원하던 무수한 시민들의 목소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잉에 숄의<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고 있던 열여덟의 나는 이제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다가오는 민주주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87년 이후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십여 년 동안의 기억은 1997년 경제위기가 깨끗이 씻어내 버렸고, 우리는 이제 생존을 위해, 경쟁을 위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생존'에 내몰리기 이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지녔던 그나마 행복한 기억을 향해 '응답하라'고 타전한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 기억을 향해, 그 시간을 향해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87년을 향해 타전하지 못한 이유

그래서 그 시절의 민주주의를 향한 기억을 향해 타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마음을 바꾸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을 향해 타전하지 못한 까닭은 1997년 경제위기가 바꾸어 놓은 87년과는 전혀 다른 우리 삶의 맥락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87년 전후 우리에겐 '독재'라는 명확한 타도 대상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맞선 문제는 작동하지 않는 '정당정치' 그 자체의 위기다.

경제적으로 87년 전후 극복해야 할 대상은 산업사회에서 만들어진 노동의 위기였지만, 지금 소비사회에서 맞고 있는 위기는 깊어가는 소득 및 재산의 불평등과 실업의 문제다. 사회적으로는 87년 전후에는 생각지 못했던 고령화와 극심한 저출산 문제, 세대 간의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미래세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우리 청년세대들은 '일할 수 있는 권리', '사랑할 수 있는 권리',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권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87년을 향해 타전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87년의 기억을 통해 응답해줄 사람들을 헤아려보면 이미 최소한 40대 중반을 넘어선 이들이다. 이렇게 과거에 기댄 이들이 보낼 수 있는 새로운 타전이란 고작해야 "청년이여, 분노하라!" 정도다.

'우리들도 바꾸었으니 너희도 그래라'는 메시지가 얼마나 유효할까? 이런 식의 타전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현재의 문제를 새로운 세대들이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다는 식의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 세대의 것이 아닌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억이어야 하기에 우리가 타전할 시간은 1987년이 아니라 바로 현재, 2016년이어야만 한다.

모든 세대가 함께 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만들기

최근 많은 분들이 '분노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너무 일차원적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해결책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노를 넘어 행동할 수 있는 현실적 자세다.

분노를 외치는 대신 기성세대의 권위를 내려놓고 서로 협력해 이 문제를 같이 풀자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올바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자세다. 제도권 정치의 안팎에서 세대와 세대가 손을 잡고 참여할 수 있는 채널과 장을 다양하게 확보하여 세대 간의 대화와 협력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민주적 과정과 행위를 확보하는 데서 일단 시작해 보자.

이 문제를 새로운 민주적 과정과 행위를 통해 풀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우리 새로운 세대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민주주의가 그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음을 보여줄 때, 쉽사리 위기에 빠지지 않는 굳건한 민주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쉽사리 되겠냐고? 어쩌면 우리가 냉소해야 하는 대상은 그런 냉소주의를 통해 쉽게 책임에서 도망가는 일이다. 냉소만큼 책임에서 쉽게 벗어나는 행위는 없다. 어차피 어려운 길이라면 서로 토닥이며 가는 건 어떨까? 어차피 안 될 것이라고 냉소하기보다, 논쟁에서 이기려 서로의 말을 앞세우기보다,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그 자세가 만드는 민주주의. 우리가 새로운 세대와 함께 응답해야 할 2016년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만권님은 정치철학자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존중하여, 정치와 사회를 철학으로 풀어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거리 위의 정치철학자다. 시민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 말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불평등의 패러독스>, <참여의 희망>, <정치가 떠난 자리> 등을 썼습니다.



#민주주의 #시민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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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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