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종필 전 총리(왼쪽)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김종필 전 총리(왼쪽)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아래 국보위) 경력을 두고 야권 내부에서 상당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한상진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김종인 위원장의 국보위 경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시작된 이 논쟁은 '이승만 국부론' 파동 이후 야권 내부 역사 논쟁 제2탄이 되는 것 같다. 나는 현시점에서 이런 논쟁은 야권 내부의 역량을 자해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킨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야권은 당면한 국가적 현안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게 볼 때 역사 논쟁은 이러한 국민적 바람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보수 세력이 야권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는 데에 이 이슈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 갈등은 모두 야권 내부에서 촉발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자해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조속히 종식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거사'와 '정체성' 관련해서 야권 내부에서 일정 정도의 컨센서스(동의)를 형성하여, 그 범위 안에서는 상호 간에 비난과 비판을 하지 않도록 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안은 해석의 영역이라서 보편타당한 객관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면 이를 위한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성공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해답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DJP 연합의 사례를 통해서 지금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중도화 전략, 선택이 아닌 필수

선거를 앞둔 개인을 상대로 한 영입, 세력을 상대로 한 연대와 통합 등의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1월 21일 새누리당은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3선을 한 조경태 의원을 전격 영입했다.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지만, 지역 기반이 탄탄한 조경태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가서, 부산 지역 전체에서 야권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렇듯 보수는 선거 승리라는 결정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세를 불린다.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민중당 3총사,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친노 세력과 갈등을 빚고 있던 구 민주당계 정치인들을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는 선거 승리라는 이익 실현에 맞춰 내부 질서를 조절하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데에서 냉철하면서도 현실적인 기준으로 대응한다.

반면 진보는 기본적으로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통성, 정당성 등 추상적인 관념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특히 소위 친노 진영이 야권의 중심이 되면서 그러한 경향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측면이 있다. 단적인 예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2007년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넘어온 후에 당시 몇몇 친노 인사들이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을 언급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익은 구체적이고 가치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전자보다 후자에 속한 진보적 지지층은 색깔과 개성도 다양해서 쉽게 융합하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진보가 후자의 속성에만 머물러 있으면 보수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집권을 목표로 한 진보 야권에게 있어서 중도화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DJP 연합에서 배워라

지난 98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DJP합의 1주년 기념 만찬을 갖고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98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DJP합의 1주년 기념 만찬을 갖고 밝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이 중도화 전략이 잘하면 좋은데 잘못하면 정체성 훼손이라는 문제 제기에 직면하여 오히려 역풍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중도화를 그렇게 강조했던 한상진 위원장의 '이승만 국부론'과 국민의당의 초기 스탠스는 그와 같은 원칙 없는 중도화, 맹목적인 중도화의 오류를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그로 인해서 국민의당이 현재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 DJP 연합에서 찾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DJP연합을 했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그 연합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민주화 세력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 제기였다. 이에 대한 김대중의 답은 이러했다. DJP연합을 해도 그것은 자신을 비롯한 민주화 세력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정권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였다.

김종필이 누구인가? 너무도 유명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당시 자민련을 구성하고 있던 정치인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이 영입한 구 여권 인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정치인과 세력을 향한 김대중의 중도화 전략은 이미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영입한 대표적인 거물급 인사가 바로 이종찬씨였다. 이종찬씨는 물론 합리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가 전두환 정권에서 요직을 거친 인사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김대중이 정책적인 방향에서 중도화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 바로 1992년 대선 전에 나온 소위 뉴DJ 플랜이었다. 그런데 인물과 정치세력을 향한 중도화 전략을 시도한 것은 1995년부터다. 이러한 노력이 모두 결실을 맺어 결국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영입한 구 여권 인사들이 김대중 정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은 크게 보면 두 부류로 나뉜다. 기존 국정 경험능력을 기초로 해서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 이념이 실제화 되도록 노력한 경우가 있고, 다른 부류는 특별한 기여도 없이 임명직 자리를 통해서 이득을 얻는 데에 만족한 경우이다.

그래서 수 많은 구 여권 인사들이 정권에 참여했지만 그들은 정부의 기본 방향 설정 과정에 사실상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김대중이 강조한대로 실제 국민의 정부는 김대중을 정점으로 한 민주화 세력의 가치와 지향에 따라서 운영됐다.

김종인 영입은 긍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입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표의 절실함을 믿고 조기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며 "오는 총선에서 불평등을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구현하는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 김종인 "문재인 절심함 믿고 선거대책위원장 수락"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영입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은 "문재인 대표의 절실함을 믿고 조기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했다"며 "오는 총선에서 불평등을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구현하는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앞의 경우와 비교해서 볼 때 지금 김종인 건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김종인이 국보위에 참여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비판받아야 하지만, 김종인이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 기간 더불어민주당을 진두지휘한다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정체성의 훼손이 발생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도 정치적 정당성과 역사성으로 중무장한 사람들로 차고 넘친다. 더군다나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때부터 해서 민주당 계열 정당은 당시 구 여권 인사들과의 결합을 정치적으로 허용했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고 본다.

상당히 역설적이게도 지금 김종인 영입 건으로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적 순혈주의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했다는 점이다. '친노'로 표현되든 '운동권'으로 표현되든 여하간 노무현 정권 이후부터 형성된 현 야권의 주류 세력이 편협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볼 때 더불어민주당이 김종인을 영입한 것은 오히려 잘 했다고 칭찬해줄 일이다. 정파적 관점이 우선시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노정객' 김종인이 리틀 김종필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바로 그가 '경제민주화' 담론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문제가 있다. 지금 김종인은 현 야권이 부족하다고 항상 지적받는 능력있는 '경제정당'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고, 그는 그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 방향이 과연 틀린가? 이것은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강조하는 부분이고, 범 진보 야권의 재도약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다. 그러면 김종인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할 것은 지적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김종인의 과거 경력이 공론화되는 맥락(context)를 봐야 한다. 이 건은 국민의당 한상진 위원장이 제기한 이승만 국부론의 파장과 연결되어 있다. 한상진 위원장이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하고 이승만 재평가를 주장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정치적 균열을 일부러 내기 위해서 한 행위로서 정치적 정당성, 정치적 효용성 모두 없는 무의미하고 무책임한 행위였다.

그로 인해서 역풍이 불자 이에 대한 역공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인데, 이런 과거사 논쟁은 윤여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에게도 불똥이 튀게 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건까지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야권 전체가 악순환의 뫼비우스 띠에 갇혀 있는 듯한 형국이다. 이게 무슨 생산성있는 논쟁이고 경쟁인가?

성공한 역사에서 배우면 된다. 야권은 이미 DJP 연합도 용인하고 이를 통해서 정치적 성공을 경험한 바 있다. 김대중 선생이 말한 대로 민주화 세력이 중심에 있으면 되고, 그 기반 위에서 보수 세력을 영입하여 외연을 확장하면 된다. 그렇게 볼 때 김종인을 영입했다고 민주화 세력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DJP 연합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태그:#김대중, #DJP, #김종인, #한상진
댓글4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