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꽁꽁 얼었다 겨울같지 않은 겨울을 조롱하던 사람들을 제대로 한방 먹였다. 맑은 날 나막신 장수를 둔 노모 마냥, 겨울 방한복 매출을 걱정하던 나의 오지랖도 민망한 지경이 되었다. 곧 끝나려니 하던 이 추위는 지난 19일 이후 5일째 계속되고 있고, 이번주 일요일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겨울여왕의 매서움엔 '3한 4온'의 미덕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각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연례 행사로 준비하는 장면들이 올해도 반복된다. 한 신문사는 보험사를 취재했다. 지난 19일 하루에만 전국적으로 4만여 건에 달하는 긴급출동 요청이 폭주했음을 전했다. 한파가 덮치면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량 때문에 불만인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연 나흘째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지난 21일은 이번 겨울 한강이 공식적으로 결빙된 날이었다. 방송 카메라는 한강의 얼음을 가르는 소방관들을 비추었다. 얼음을 깨고 긴급 출동로를 확보하기 위해 출동하는 구조정의 움직임을 화면에 담았다.
기상청은 1906년부터 한강 결빙을 관측해오고 있는데, 한강대교 2번과 4번 교각 사이가 얼면 공식적인 '결빙'일로 발표한다. 지난해보다는 18일이 늦고 평년보다는 8일이 늦었다. 아마도 비공식적인 결빙도 있었을테니 소방정이 이날만 얼음을 깬 것도 아닐 것이고, 이날이 구조정이 한강의 얼음을 깨는 첫날도 아니겠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
서울시는 수도계량기 동파 예보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동파 심각 단계는 최저 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갈 때 발령하는 것이다. 이번 일요일에 최저 기온이 영하 17도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따른 것이다. 기상청은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한파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한파에 따른 농작물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뉴스를 조금만 더 깊이 검색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0월~4월 중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 이상 하강하여 3℃ 이하이고 평년값보다 3℃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아침 최저기온이 –12℃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이 예상될 때,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한파주의보를 발표하고, 한파경보는 10월~4월 중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5℃ 이상 하강하여 3℃ 이하이고 평년값보다 3℃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아침 최저기온이 –15℃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이 예상될 때, 급격한 저온현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중대한 피해가 예상될 때 발표된다"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정도 지식은 막걸리 한잔하며 목소리 키울 때나 통하지 어디가서 전문가 행세하기는 민망한 수준이다.
뭔가 다른 느낌의 맹추위매년 찾아오는 겨울이고 매년 반복되는 한파이다보니 정부기관이고 언론사이고 체계적인 한파 대응 메뉴얼이 있고, 올해도 그대로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좀 더 유별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에는 '3한4온'이라는 기상유형이 있었다. 사흘이 추우면 나흘은 따뜻했다. 이런 이유로 새마을 노래가 울려퍼진던 시절의 추운 겨울은 그래도 지낼만 했다. 그런데 봄같은 12월을 지나고 겨울같지 않은 1월이 다가는 동안 "이번 겨울은 맹추위 없는 겨울이 되겠구만" 이라며 방심했다.
두꺼운 외투는 장롱 속에 그대로 두고 얇은 패딩으로 버티었고, 자동차 배터리 교체는 미루고 미루었다. 그런데 한파가 한번 몰아치자 사흘은 가볍게 지나고 일주일은 지속된다. 이 기간 동안 최저 기온은 예년에 비해 5-6도 정도 더 낮아질 전망이다. 나 역시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아 출근시간 택시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떨어야 했고, 부실한 방한복 때문에 젊지도 않은 나이에 객기 부린다는 핀잔을 피하지도 못했다. 변덕스런 동장군이다.
제트기류, 이젠 익숙해져야 한다한파(寒波, Cold wave)란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차가운 대륙 고기압이 발달하거나,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약해진 제트기류로 찬공기가 남하할 때 나타난다. 지금까지 추운 날씨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는 표현도 생활 속에서 받아들여졌다.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누리는 미모의 기상캐스터가 아니라 구수한 말투의 김동완 기상캐스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시베리아 고기압'은 제천의 청국장 만큼이나 익숙한 용어였다.
그런데 이번 한파는 제트기류가 약해진 것이 원인이다. 북극 찬공기의 남하를 막아주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제트기류란 중고위도 상공에서 항상 불고 있는 편서풍을 말하는데 지표면 11 km 상공에서 빠르게 흐르면서 시베리아 한파를 막아주고,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 한시간씩 단축해주던 바람이다. 제트기류는 북극의 찬공기를 막아주는 일종의 에어커튼이었다. 이 에어커튼이 약해지면서 북극의 찬공기가 밀려 내려오면서 이번 한파를 만들었다.
주한영국대사관 기후변화전문관인 김지석 박사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는 원인으로 "북극이 따뜻해 지면서 얼음 면적이 줄어들고 중위도와 고위도의 온도차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계의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지구온난화가 지속될수록 매년 같은 패턴의 한파가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제트기류란 말이 생소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예전 어른들이 '3한4온'을 몸으로 체감하며 지혜로 체득했듯이, 우리 국민 모두가 제트기류에 대해 몸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리기후협약에서 보았듯이 국제사회가 기후변화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방어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변화하는 기후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준비 안 된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처럼 변덕스런 날씨를 탓할게 아니라 변화된 기후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김동완 예보관이 그립긴 하지만 지금의 기상캐스터에 더 눈길이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의 기억은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될뿐이다.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ecotown,tistory.com)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