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따복공동체 지원센터'가 추천한, 마을에서 꿈을 펼치는 청년들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어릴 적 꿈이었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꿈 아닌가! 이런 그를 변하게 한 게 도대체 무엇일까?
신종호 대표는 스물다섯 청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스스로 그만두었고, 검정고시를 거쳐 합격한 대학에는 등록하지 않았다. 그 뒤 재수를 해서 간 대학은 장기 휴학 중이다. 현재 그의 고향인 부천에서 '부천 청년 문화공간 500/50(아래 청년 문화공간)'이라는 문화 기획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어릴 적 꿈과는 180도 다른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지나치게 공부 위주였고, 머리카락 단속 같은 것도 심했어요. 그래서 그만뒀는데 '내키는 대로 살 거야' 이런 마음은 아니었고. '자퇴했지만 좋은 대학 갈 거야'하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으니까요. 대학은, 목표로 하는 일류대학을 못 가게 돼서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이고 휴학도 그 때문이고요. 일류 대학에 못 갈 바엔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면서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신 대표 말이다. 지난 15일 오후 부천 원미구에 있는 '청년 문화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느냐고 물었다.
"'자퇴하면 인생 망가진다'고 어른들이 겁을 많이 줬는데, 지나고 보니 망가진 게 없어요. 세월이 흐르니까 학교에 다닌 친구들과 별반 다른 게 없더라고요. 아르바이트, 여행, 운동(암벽타기) 등 친구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으니,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앞섰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특별한 두려움은 없어요. 한때는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갔으니, '튀어야 하고 꼭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어요. 사람 사는 게 '잘 나가나 못 나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별로 불안하지도 않고요." 부천을 생활 속에 문화가 있는 유럽 같은 도시로
대학까지 휴학하고 그가 한 일은 '잘 노는 것'이다. '상상 놀이터'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울 홍대에서 젊은이들이 잘 놀 수 있는 '놀이 기획'을 했다. 갑자기 모여 광화문에서 책을 읽는 '책 읽기 플래시몹', 몸뻬를 입고 뛰어다니며 상대편 등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떼는 '몸뻬 러닝 맨' 등이 당시 그가 기획한 작품이다.
잘 놀다 지치면 더 잘 놀기 위해 배낭 하나 들쳐 메고 유럽, 인도를 여행했다.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한 달간 제주도 여행을 한 적도 있고, 차비 없이 '히치하이크'만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 온 적도 있다.
신종호 대표는 "일하고, 돈 생기면 여행 다니는 삶이 재미는 있는데, 안정적이지는 않다 보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불안감도 있었다는 것. 기자가 "그 나이에는 무엇을 해도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다"라고 하자 "그렇겠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유럽과 인도 여행을 마친 직후인 지난해 3월에 그는 친구들을 모아 '청년 문화공간'을 열었다. 여행하면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함께 '크라우드 펀딩(인터넷, SNS를 활용, 소액 후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돈을 모아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실내장식은 청년답게 직접 했다. 벽 털고, 페인트칠하고…….
"유럽 여행하면서 정말 부러웠던 게, 문만 열고 나가면 문화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광장에 모여서 노래하고 기타치고 술도 마시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대낮인데도 광장에 젊은이들이 많고요. 우리나라 같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있을 텐데. 이게 제 목표예요. 부천을 유럽 같은 생활 속에 문화가 있는 도시로 만드는 거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사람을 모았다. 음악, 미술 등을 하는 청년 예술가들이다. 예술 활동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올해 목표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부천 청년 문화공간 500/50'이라는 이름에 그의 의지가 녹아 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50만 원이라서 '500/50'이라 이름 지은 거예요. 전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예술 하면 굶는다!' 이거 맘에 안 들어요. 예술 하면서, 예술 기획 하면서도 밥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올해 키워드예요.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잖아요." 생활 속의 문화도시 부천, 공동체가 필수
그렇다면 어떻게! 돈 버는 일도 아닌 노는 일 기획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산다는 것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강연과 토크쇼 주최, 행사기획 등인데 호응이 좋은 편이에요. 그동안 꿈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분을 초청해서 '해몽 토크쇼', 여행전문가를 초청해서 '여행 토크쇼' 같은 걸 했는데 방청객이 꽤 많았어요. 음악공연도 하고 헬로윈 파티도 했어요. 입장료가 대부분 1만 원 안쪽으로 아주 착한 가격인데, 수익 배분만 잘하면 기획자와 예술가 모두 상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공동체'를 꼽았다.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작년에 부천에 왔는데, 정말 좋아요. 이곳에서 만나 관계를 맺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서 이 공간도 만들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요. 이곳은 서울에 비해 끈끈한 무엇인가가 있어요. 반면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점도 있고요. 공동체가 중요한 게 바로 이점이죠. 공동체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머리 기니까 음악 하느냐, 미술 하느냐 물어 오는데 사실 전 아무것도 못 해요. 그저 기획자일 뿐이에요. 음악 하는 친구도 필요하고 미술 하는 친구도 필요해요. 일만 벌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옆에서 꼼꼼하게 챙겨주는 사람도 필요하고요. 저한테는 이런 친구들로 이루어진 문화 공동체가 꼭 필요해요. 한마을에 살아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와는 좀 다른 개념의 공동체죠." 그는 부천을 생활 속에 문화가 있는 도시로 만들면 청년 문제 해결은 물론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유엔 행복지수 조사에서 47위를 했다. 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게 청년인데, 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보니 의기소침한 게 요즘 청년입니다. 그러다 보니 밤에 술집 같은 데로 몰리는 것이고요. 문화 도시가 되면 청년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광장 같은 데서 뿜어져 나올 겁니다. 청년들 사기가 올라가겠죠. 또 심각한 청년 일자리 문제, 특히 청년 예술가들 일자리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예술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 예술가들이 부천으로 몰릴 것이라 보고요. 행복지수요? 유럽만큼 높일 수는 없지만, 숨구멍은 트이지 않을까요? 생활 속의 문화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25살 청년 신종호 대표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혼란스럽고 조급했던 나의 20대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좀 더 느긋했다면 좀 더 빨리 길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구두 뒤축에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