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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은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가는 강추위였습니다. 추위만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저성과자해고'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조차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법을 밀어부치고 있고, 무상보육을 약속했던 정부는 예산을 못주겠다며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정부는 사람들을 으스스하게 만드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 듯 합니다. 이 겨울,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소식들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습니다. 가난한 서민에게 언제나 겨울은 춥고 시린 것이긴 합니다만,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눈 내리는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강아지도, 길거리의 노숙자도 하얗게 내리는 눈 앞에서는 즐겁습니다.

Houston St.2, 1995, Acrylic on Canvas, 71.5 x 107cm
 Houston St.2, 1995, Acrylic on Canvas, 71.5 x 107cm
ⓒ 오치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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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자연이 준 축복. 그래서 화가들은 눈내리는 풍경을 많이 그렸습니다. 한옥 지붕에 내려앉은 하얀눈, 산을 뒤덮은 눈. 한폭의 동양화에 담겨진 눈내린 풍경을 바라보면 백설(白 雪)은 눈부시고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화가 오치균(1956~)이 뉴욕에서 만난 눈은 마냥 눈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눈이 내린 후 며칠 뒤의 도시 풍경에 주목했습니다. 하얀색이 아니라 회색의 눈, 뽀송뽀송 뽀득뽀득한 것이 아닌 질척질척한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자면 눈은 언제나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폭설이 내리면 지각을 걱정해야 하고, 만원 지옥철을 견뎌야 합니다. 눈길에 넘어지기도 하고 질척거리는 눈을 헤치며 바삐 걸어가는 마음은 무겁습니다. 자가 운전자들은 꽉 막힌 도로며 접촉 사고가 신경쓰이기만 할 뿐이죠. 생활의 무게.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오치균은 뉴욕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가난한 이국의 화가에게 겨울은 추웠을 것입니다. 폭설이 내려 제대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도로를 걸으며 팍팍한 삶은 더욱 고달팠을 것입니다. 그에게 눈내린 날은 '화이트'가 아니라 '그레이', 혹은 '다크 그레이'입니다.

오치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 눈들은 입체감있게 표현되어있습니다. 미술용어로 '마티에르'라고 하는데 두껍게 몇겹씩 물감을 칠하는 기법입니다. 그는 붓으로 그리기 보다는 손으로 '바르는' 방식으로 표현했는데요, 덜 녹아 엉겨있는 눈의 질감을, 삶의 무거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겨울 눈은 아름답기만한 것이 아니다. 도심의 도로는 마비되고, 일터로 가는 버스는 오지 않는다. 걸을 때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야만 한다. 대도시 마천루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두운 길, 빌딩 사이로 부는 거친 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누군가는 또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죠. 삶은 무겁지만 오늘도 터벅터벅 우리는 또 걸어가야 하는 거니까요.

오치균의 작품 더보기 >> 오치균갤러리
http://ohchigyun.com/


태그:#오치균, #눈, #노동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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