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재학생들이 단체로 조문을 하고 있다.
▲ 영정 앞 고개숙인 단원고 재학생들 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3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재학생들이 단체로 조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1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 형제자매가 여는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부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열렸다. 참가자들의 모습.
▲ '하늘로 띄우는 편지... 보고 있니' 12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족 형제자매가 여는 추모행사 '너에게 보내는 편지(부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열렸다. 참가자들의 모습.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는 640여 일이 지났다. 그 이후에 '세월호 유가족'이라 불리는 2학년 몇 반 000의 오빠, 누나, 언니, 형인 아이들을 빌라의 한 호에서 만나 울고 웃고 떠든 지도 1년이 좀 넘었다. 우리는 이곳을 '우리함께 공간'이라고 부르고, 규격화된 상담이나 치료가 아닌, 먹고, 웃고, 토론하기 위해 이용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원칙을 정했고, 그 원칙에 따라 주말과 평일 없이 자연스럽게 살고, 살아내고 있다.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우리함께 공간'- 아이들은 '공간' 혹은 '우리함께' 라고 부른다-은 그 시작부터, 첫 번째 원칙은 '당사자의 의사결정권 존중'이었다. 형제자매 당사자들에게 이런 공간이 필요한지,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살아가면서 필요한 부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등을 함께 상의하고,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잠은 집에서 잘 것, 또래 집단 모임에 어른이 자리하지 않고 최대한 존중할 것, 의도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닌 형제자매들이 원하는 것 중심으로 운영할 것 등의 원칙도 함께 정했다. 때와 장소를 떠나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가장 우선한다. 이는 당사자의 욕구를 기반하고, 당사자의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복지실천의 기본이기도 하지만, 인권의 존중 역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우리는 왜 그 참사 이후, 새삼스럽게 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포함하여, 청소년 세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까? 아이들을 만나온 수많은 시간 속에서 세월호 참사는 청소년들의 인권문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동화에서처럼 피리 부는 아저씨가 다녀간 듯 동네에 교복 입은 아이들이 250여 명이 사라졌고, 돌아온 70여 명의 아이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며 산다.

'세월호'는 청소년 아이들의 생명과 인권이 유린당한 참사 현장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배에 탔다면 누구나 존중받지 못했을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세월호 참사가 청소년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는 책임을 가졌다고 믿은 어른들의 지시에 따랐다가 떠난 많은 희생자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있었는가?" 를 반추해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월호 세대

안산 세월호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피해지역 중심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마을만들기를 위한 <희망마을지원단>이 꾸려졌다. 이들이 향후 사업을 위한 연구용역을 외부에 맡겼는데, 연구자가 이야기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안산 청소년들은 성숙해요. 어떤 설문이든 다 응하고, 자기 의사를 명확히 밝혀요. 그리고 찬찬히 물어보면, "다 아는 언니, 오빠였어요"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세상을 봤고, 알았으며, 실망했다. 그리고 '저렇게 살면 안 되는' 어른들을 알게 됐다. 우리는 그 세월호 세대를 보며 때론 부끄럽고 아프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믿음직스럽다. 또 우리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묻는다. 지금 밝혀진 것은 무엇이 있으며, 그것을 밝히기 위해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가만히 있으라

3일 오후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한 국민촛불 집회에 한 참가자가 세월호 선내 방송을 뜻하는 '가만히 있으라'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있다.
▲ "가만히 있으라" 3일 오후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실종자 무사귀환을 위한 국민촛불 집회에 한 참가자가 세월호 선내 방송을 뜻하는 '가만히 있으라' 손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떠난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며, 울고, 분노하는 아이들에게도, 또다시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을 그들은 기억한다. 본인의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변호사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을 때에도 부모님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했다.

부모님들이 사안이 어그러질까 봐, 혹은 아이들이 다칠까 봐 했던 이야기였으므로, 엄마, 아빠가 상처입을까 수긍하긴 했지만, 그 말에서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이내 곧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기자회견도 하고, 본인들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향한 자기실천을 해오고는 있지만, 그런 날들의 "가만히있으라"는 말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 잊어라

우리함께 공간에는 형제자매뿐만이 아니라 떠난 아이들의 친구들도 온다. 고3 수험생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봄바람이 불 때, 친구의 생일에, 더운 여름날에도 친구가 생각난다. 자율학습을 하다 함께 중학교시절을 보냈던 친구가 생각나 눈물지었더랬다. 그런데 지나던 담임 선생님이 "유난스럽게 넌 왜 그려냐?"고 묻더란다. 이젠 그만 울라고. 그리고 학교에선 '왜 자꾸 들춰내려 하느냐'며 불편해하기도 한단다. 어른들은 이야기 한다. "그만 잊어라"

일베보다 더 상처를 주는 지인

일베들이 올리는 댓글이 상처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그저 미친놈 취급하면 된다. 그런데 지인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사람을 사귈 수가 없다. "8억이면 많이 받는거 아니야?", "난 네가 웃길래 괜찮은줄 알았어.", "유난스럽게 아직도 그러냐?"고 말하는 같은 교회 다니던 언니, 오빠 혹은 가까운 이웃들을 만나며 아이들은 점점 사람 만나는게 두렵다.

내 앞에서는 어떤 이야기든 좋게 혹은 삼키고 갈지 몰라도 뒤에서는 어떤 말을 할지 모르니까. 그런 지인들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사람 사귀는 게 두렵다. 겁이 난다. 그리고 사람들을 추려내고 있다. 안전한 사람들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해

형제자매 아이들끼리의 카톡방이 있다. 아이들끼리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자 해놓고, 고1인 아이가 야간자율 때문에 못 와서 아쉽다고 했더니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열렸다. "너희 나이 때는 그런데 관심 가지지 말고, 공부만 할 때야" 혹은 "무슨 소리냐. 내 적성이 무엇인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야지"한다.

아이들이 대가족의 형제 많은 집처럼 북적거리고,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것인지 서로 이야기하고 산다. 어른들 보다 더 지혜롭게 서로를 다독이고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학생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일반적인 논리로 아이들에게 지시, 명령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왜 살아야하는지, 왜 직장을 다녀야 하는지.

학교의 주인은 누구?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교실 존치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 '단원고 교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참사 현장입니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인 12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교실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교실 존치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최근 안산 지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단원고 교실존치여부에 대한 논쟁은, 정작 교실의 당사자인 단원고 재학생들에게는 묻지 않은 채로 진행됐다. 재학생 부모와 유가족 부모, 그리고 불편하게 지켜보는 재학생이 될 수 있는 부모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어른들의 지지가 있을 뿐이다. 당사자에게 어떤지 묻지 않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란 어른들의 눈에는 미성숙하고, 결정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앞서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그만 잊으라" 말하는 지인들의 이런저런 무심한 말들 속에서 배려나 공감, 당사자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 교실을 매일 마주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한 번을 물어보지 않고, 어른들의 민감한 이해관계의 부딪힘으로 몰아가는 상황도 여러모로 불편하다. 이 모든 과정들 속에서 각자 자신이 재단한 기준에서 타인의 삶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우리함께 공간'을 움직이는 힘인 '당사자'는 찾기 어렵다. 우리는 인권의 시작인 그 당사자의 감정, 생각, 권리 등을 듣거나, 표현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타인의 생명, 삶을 존중했다면, 세월호 참사 속 그렇게 많은 사람의 생명을 잃었을까? 그 배 안에 비정규직이 그렇게 많았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형제자매를 비롯한 피해가족들이 그런 모멸감을 느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 '익숙하지 않음'을 자꾸 마주하며,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도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과정에 나와 당신이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안산 복지관 네트워크 '우리함께'에서 활동하는 박성현씨입니다.



태그:#세월호, #인권선언, #청소년, #세월호 청소년
댓글4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