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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로렌스 샌더스(1920~1998)의 별명은 '미스터 베스트셀러'다.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로렌스 샌더스는 작품 활동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빠르면 20대, 아니면 30, 40대에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과는 달리, 로렌스 샌더스는 나이 50이 되어서 첫 번째 작품인 <앤더슨의 테이프>를 1970년에 발표한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미국추리작가협회의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다. 그 다음부터는 베스트셀러의 연속이었다. 로렌스 샌더스의 작품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에드워드 X. 델러니가 등장하는, <제1의 대죄>를 시작으로 하는 '대죄 시리즈'다.

다른 하나는 아치볼드 맥널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맥널리 시리즈'다. 나머지는 <제6계명>, <제7계명> 등의 계명시리즈와 다른 독립적인 작품들이다. 여기에는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을 시기별로 나누어보자. 대죄 시리즈는 1973년부터 시작되서 1985년 4번째 편인 <제4의 대죄>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맥널리 시리즈는 한참 뒤인 1991년에 <맥널리의 비밀>을 발표하며 시작된다. 작가는 그 중간에 <케이퍼>, <투모로우 파일> 등의 독립된 작품들을 발표한다. 뒤늦게 데뷔했지만 그것을 보상하려는 듯이 로렌스 샌더스도 부지런히 다작형으로 활동한 셈이다.

완고한 뉴욕의 형사 에드워드 델러니

<제1의 대죄> 겉표지
▲ <제1의 대죄> 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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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로 구분하는 이유는 대죄 시리즈와 맥널리 시리즈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주인공의 성향이다. 대죄 시리즈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X. 델러니. 뉴욕시 경찰청에 근무하는 그는 굉장히 원칙을 중시하고 보수적이며 강직한 성향의 형사다.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왜 X에요?"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빗장을 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델러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델러니는 <제2의 대죄>에서 한 여인과의 대화 도중 이렇게 말을 한다. 이 대화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델러니는 그만큼 완고한 인물이다.

그의 별명은 '철권 델러니'이다. 하긴 수많은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뉴욕에서 형사로 근무하려면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델러니도 <제1의 대죄>에서 등산 장비인 날카로운 피켈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한다. 델러니는 그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추적하면서 말한다.

"나는 그놈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반면에 맥널리 시리즈의 주인공인 아치볼드 맥널리는 가볍고 유쾌한 인물이다. 배경부터가 다르다. 맥널리 시리즈의 배경은 평화로워 보이는 플로리다의 팜비치 해변이다. 아치볼드 맥널리는 30대 후반의 노총각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법률회사에서 조사원으로 일한다.

그러면서 애인이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매일 바다에 뛰어들어서 수영을 하기도 한다. 맥널리는 어찌보면 부모님에게 얹혀서 세상 편하게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농담이란 걸 할줄 모르는 델러니와는 달리 맥널리는 위트와 유머가 넘친다. 한 마디로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살인현장을 보면서도 가벼움을 잃지 않는다. 진지하지 못하다고 해서 예일대학 법과에서 퇴학당했다고 스스로 말한다. 한 연주회에서 마스크만 쓰고 알몸으로 무대에 뛰어 올랐더니, 학교에서 나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진지하지 못하다. 나는 자신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도 진지하지 않다.'

맥널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 주어진 인생을 즐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평화로워 보이는 플로리다의 해변에서도 잔인한 살인사건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맥널리는 그 사건에 말려들어간다.

가볍고 유쾌한 조사원 아치볼드 맥널리

<맥널리의 비밀> <맥널리의 행운> 예전에 고려원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다.
▲ <맥널리의 비밀> <맥널리의 행운> 예전에 고려원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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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널리 시리즈는 1997년에 발표된 7번째 편인 <McNally's Gamble>(국내 미출간)을 마지막으로 종료된다. 작가는 그 다음 해에 사망한다. 대죄 시리즈와 맥널리 시리즈의 분위기가 다른 이유는, 로렌스 샌더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작품 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일종의 여유가 생기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델러니처럼 너무 완고하고 강직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맥널리처럼 가볍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살인사건을 포함한 범죄수사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지함과 가벼움이 함께 필요할 것이다.


제1의 대죄 1

로렌스 샌더스 지음, 최인석 옮김, 황금가지(2006)


#제1의대죄#아치볼드 맥널리#로렌스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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