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할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추모관에 다녀왔다. 사실 집을 나선 이유가 할아버지를 뵙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걷다보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내 발걸음의 방향을 새로 정하고 있었다.
'설, 다들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지. 친구 누구는 산소에 간다고 하던데. 이런 날 우리 할아버지도 누군가와 함께 계셔야 할텐데. 추모관에 모셔져있는 다른 분들에게는 가족들이 많이 찾아오겠지. 혼자 외로우실까.' 할아버지가 생전 요양원에 계실 때, 그 요양원이 집에서 10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게으르고 못난 손녀딸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의 나는 바보같이 슬픔을 이겨내는 법을 몰라 할아버지가 힘 없이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는 것을 보기가 싫었던 것 같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불효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창가에 놓아드릴 시들지 않는 보라색 조화 화분도 사갔다. 왠지 곧 시들 생화는 사는 것이 꺼려졌다.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워하셨다.
기억에는 없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 기쁘다는 듯 활짝 웃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쓰고 간 모자를 더욱 푹 눌러 쓸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나(손녀)인 줄 몰랐지만, 나를 보니 자신의 손녀(나)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내 이름을 얘기하며 자신이 지어준 손녀 딸의 이름이 참 좋은 이름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바로 그 할아버지 손녀딸이에요.""너였어? 내가 이렇게 자꾸 깜빡깜빡해. 노망이 나서." 그리고 내 손을 더 꽉 잡으시고는 말씀하셨다.
"네 이름처럼만 살아. 참 좋은 이름이야. 진실하게, 그대로." 나는 계속 울었고 할아버지는 계속 웃었다. 할아버지가가 평생 그토록 사랑한 문학, 시들의 이름들을 얘기하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며 더욱 표정이 밝아지셨다. 기력이 없어 누웠다가 잠시 앉았다가를 반복하셨고 짧은 식사 후에는 또 금방 누워 잠에 드셨다.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나는 할아버지가 잠드실 때까지 손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 손을 언제 놓고 떠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손을 잠시 놓고 이제 가볼까 하고 힘겹게 몇 발자국을 떼면,
"어디 가? 벌써 가? 더 있다가." 그래서 다시 손을 잡고 고개를 떨구었고 그때마다 눈물도 같이 떨어졌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어느 시점에 할아버지는 그 과정도 힘에 부치셨는지 이제 가보겠다는 내게 그냥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고 한 달 후,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단 한번도 할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과자가 사먹고 싶으면 할아버지 방에 조용히 들어가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들이밀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활짝 웃으시며 주머니에서 딸랑이는 동전 중에 제일 큰 동전을 꺼내주고는 하셨다. 딸랑이는 게 없는 날에는 기분 좋게 천원짜리 지폐도 건네주셨다.
할아버지는 내게 왜 말을 아끼셨을까. 왜 삶에 대한 조언 몇 마디 남기지 않으셨을까. 그토록 자신이 하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 하며 행복했던 자신의 삶의 비결을 왜 알려주지 않으셨을까(할아버지는 평생 불문학 번역에 힘쓰셨고 우리나라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최초로 번역하셨다. 시인으로서 시집도 몇 편 내셨는데 요즘도 그렇듯 돈벌이가 많이 되지 않는 일이라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의 일을 못마땅해하셨다).
그래서 난 누군가 내게 여태껏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그때를 말한다. 할아버지와 이 생에서 만났던 마지막 순간. 아마 기력이 없으셔서 많은 말을 못하셨던 거겠지만, 그럼에도 난 그가 시인답게 내게 해준 마지막 한마디에 삶에 대한 모든 조언을 담았다고 믿는다.
'이름처럼 살면 돼. 진실하게, 그대로 보여지듯이.' 할아버지 이름 석자가 새겨진 유골함과 그 옆의 할아버지 사진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매번 마음 속으로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다해야지 생각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서 오늘도 '또 올게요' '금방 올게요'라는 말만 되내였다. 그리고 눈을 떠 다시 사진을 바라보니 왠지 할아버지가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미소가 느껴졌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거나 다른 여러 방법으로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한 무언가를 남기는데 그런 것들이 과연 죽은 자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떠난 자들을 그리워하고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곳들이 남아있는 자들에겐 무척이나 중요하고 소중한 곳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명절에는 상처받은 우리를 보듬어 줄 그들이 있는 곳이 더욱 간절해진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다가 그들과 함께 한 기억에 따스하게 위로받고 미소짓게 해주는 감사한 공간이,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가 내게 남겨준 말들을 떠올리며 위로받을 수 있는 오늘같은 하루가 선물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