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북한이 폐쇄된 개성공단 지역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했다. 또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개성공단으로부터 남측 인원을 모두 추방하고 남측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조치는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와 관련지어 잠정 중단하겠다'고 한 데 대해 예상할 수 있는 반발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발표가 거의 기습 도발처럼 느껴진다. 이는 이제부터 고조될 한반도 위기가 그 양상을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되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개성공단 중단, 피해 보는 건 한국 중소기업들개성공단 중단이 북핵 문제 해결책 가운데 제대로 된 첫 조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가? 그보다는 앞으로 남북 간 긴장이 아무런 완충장치도 없이 극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최후의 남북협력사업이자 '6.15 공동선언'의 상징이던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남북이 맞서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 정부의 결단이 의도대로 성과를 거두길 바랄 뿐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내외 여론의 이해와 지지를 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최소한 피해 기업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번 조치의 불가피성에 대해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2013년 개성공단 조업이 160일간 일시 중단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신고된 우리 기업들의 피해액이 약 1조 원에 달했다. 그런 만큼, 사실상 폐쇄 단계에 들어간 이번 중단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입을 피해액은 수조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대통령이 경제 관련법안 입법서명 운동까지 할 정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친기업적 정책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정부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 조치로 수조 원의 피해를 보는 것은 모두 중소기업들이다.
중국이 대북 제재 않으면 우리 기업만 희생한 꼴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때까지는 가만히 두었던 개성공단을 하필 왜 지금에야 문제로 삼는지 그 이유도 가능하다면 밝히는 것이 국민적 지지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핵실험 고도화에 개성공단이 돈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이번에 처음 한 것인가. 아니면 2013년에도 같은 판단을 하고 있었는가.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판단을 했다면 근거는 무엇이고 왜 과거에는 눈감아 주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개성공단은 유엔 대북제재와는 관련이 없는 사업'이라고 설명해 왔고 사실 맞는 말이었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모든 대외 무역과 상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련된 부문에 국한해서 제재를 하고 있다.
불법적 돈벌이는 막아야 하지만 합법적 돈벌이까지 막는다면 북한은 '이판사판식'이 되지 않겠는가? 북한의 모든 대외 거래를 막는 것은 제재의 범위를 넘는 것이고 봉쇄에 가까운 개념이다. 따라서 미국도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조치에 대해 그저 '이해한다'고 했을 뿐이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조치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직접적 목적은 중국을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우리 기업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먼저 대북 돈줄을 끊어야 중국에도 '대북 돈줄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데 힘이 실린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중국이 그렇게 움직여 줄까?
중국에 북한은 잇몸과 같은 존재다. 이러한 지정학적 고려는 제쳐 두고서라도 중국이 북한뿐 아니라 자국 기업들도 피해를 입을 일에 적극 나서줄까? 더구나 한국과 미국이 사드배치 논의를 통해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를 압박한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만일 중국이 '대북 돈줄을 끊는 대신 사드 배치논의를 철회하라'고 한다면 우리가 미국에 '사드 논의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할 수 있나? 어쨌든 중국이 북한의 뒷문을 막아주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는다면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우리 기업만 무모하게 희생하는 꼴이 될 뿐이다.
불안한 안보 현실, 정부는 냉정함 유지해야
우리의 현실에서 사드는 오히려 '한가한 대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에 소형화된 핵탄두를 실을 능력을 완전히 갖추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이미 수도권 전체가 휴전선상에 있다.
수도권이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권 안에 있어서 시간당 일만 발의 포탄이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는 공포스러운 안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이번에 개성공단 지역이 '군사통제구역'이 되고 나면 그 자리에 북한의 장사정포가 다시 전진 배치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정부가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통제력을 잃고 사태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개성공단 중단조치가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정부는 반드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절대 흥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성공단은 한반도에 '평화가 확보되었기 때문에' 추진했던 사업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경빈은 초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을 맡아 개성공단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통일부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걸친 '통일맨'이다. 인도지원국장, 교류협력국장, 정책홍보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남북관계 현장애서 실질적 업무를 총괄했다. 2009년 퇴임 이후 잠시 남북교류협력협회 회장으로도 일했으며, 지금은 평화재단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