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4일,
'공짜 논문, 유명대학 교수도 그냥 당한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연재 기사가 나간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님과 김영수 경상대 교수님의 공식 반론에 이어, 기사 댓글과 페이스북 등 SNS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관련기사]①
학자들이 '논문 공짜 공개'를 환영하는 이유 (황은성 교수)
②
연구자는 자긍심으로 산다? 그 씁쓸한 허상 (김영수 교수)
민간 학술정보 서비스와 공공기관의 '학술논문 무료공개 사업'에 관심을 갖고 비판과 개선 사항을 제기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술정보 서비스 이용자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듣고, 더 열린 자세로 소통하겠다.
최근 학술정보 서비스 논쟁을 지켜보면서 만 3~5세 유아에게 보육료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논란이 떠올랐다. 필자의 두 딸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그동안 특별히 돈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 '무상 보육'이 고마웠다. 그런데, 예산 지원이 어려울 수도 있단다. '무상 보육'은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진 않지만,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누군가는 예산 지원을 해야 하고, 내가 낸 세금으로 이뤄진다. 잊고 있었는데, 새삼 알게 됐다.
'공짜논문'도 이와 비슷하다. 사실, 공짜논문은 없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무상 서비스처럼 혜택을 누렸다. 온라인에서 학술논문을 접하는 대부분의 교수와 연구자, 대학원생, 학부생은 접근 제한 없이 자유롭게 학술논문을 다운로드하고 이용해 왔다. 이용자 편의를 위한 대학도서관 등의 노력 덕분이다. 대학도서관은 다양한 학술정보 서비스를 위해 해마다 구독료를 민간 업체에 지불하고 있다. 재원은 대학 등록금일 것이다.
공공기관의 '학술논문 무료공개 사업'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무료 서비스'이지만, 공공기관은 정부 예산, 즉 국민세금으로 무료공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간 서비스와도 중복되지만, 공공기관끼리도 중복사업을 펼치고 있어서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민간 서비스이든, 공공기관 무료공개 사업이든 학술정보 서비스를 위해서는 '돈'이 든다. 연구자에게는 '시간'이 중요하다. 편리한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공짜는 없다.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 공공기관은 '학술논문 무료공개 사업'을 Open Access(아래 OA, 논문 공개)라고 말한다. OA는 해외 대형 출판사의 독점적 횡포에 반대해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시작됐다.
해외는 OA가 자발적인 정보공개 운동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연구재단 등 공공기관 주도의 '학술논문 무료공개 사업'으로 변질됐다. 학술지 평가와 지원을 빌미로 OA를 강요하고 있다. 학회 자율성과 개인 저작자의 저작권 침해가 도마에 올랐다.
OA도 무료는 아니다. 해외의 경우, 해외 대형 출판사를 통해 OA 보상비용을 낸다. 50만 원 ~500만 원 사이다. 무료 공개되는 대신, 출판사에 OA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해외 출판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OA 보상 비용이 따로 없다. 대형 출판사의 독점적 횡포도 없다.
공공기관의 '강요된 OA'를 반대할 뿐누리미디어 DBpia는 OA를 반대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공공기관의 강요된 OA를 반대할 뿐이다. 학술논문 저작자인 연구자의 자율성, 연구자의 자발적인 OA 선택권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학술지 평가 지표에는 연구자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저작권 정책'이 없다. "학회로부터 저작권양도 동의서를 받았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국내에서는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OA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의편협)가 대표적이다. 민간 학술DB사는 의편협의 OA를 반대한 적이 없다.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존중한다. 또한 누리미디어는 올해 상반기 중에 오픈 예정인 DBpia 7.0 서비스를 통해 저자들이 OA를 선언하면, OA 논문을 수용할 방침이다.
민간 학술DB사는 학술생태계 안에서 존재한다. 민간 학술DB사는 학회와 저작권 계약을 맺고 학술콘텐츠를 제공받으며, 온라인 서비스를 위해 원문 제작과 서지정보 구축, 검색 최적화 노력을 기울인다. 대학도서관은 민간 학술DB사에 연간 구독료를 지불하고, 학술정보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학술논문도 전자저널 시대다. 학술지 이용 환경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어 인쇄저널의 도서관 단체구독이 대거 해지돼 학회 재정도 어려워졌다. 정부의 학회 지원도 선택과 집중 정책으로 전환됐고, 학술지도 국제화 노력이 한창이다. 대학만 구조조정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학회도 평가에 예민하다. 신생 학회는 지원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지금, 학회가 놓여 있는 현실은 민간 학술DB사에게 요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료 인상은 물론 온라인 논문투고시스템 구축, DOI/XML 구축을 통한 해외 노출 확대, 학회(학술지) 홈페이지 제작 요구도 대폭 늘었다.
누리미디어 DBpia는 지난해에만 15억 원의 저작권료를 지급했으며,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2000년 5월부터 지난해까지 지급한 저작권료가 100억 원이 넘는다. 이외에도 학회 정보화 지원과 학술대회 지원, 원문 제작 비용까지 포함하면 70억 원 넘게 투자해 왔다.
국내 학술생태계에서 민간 학술DB사는 단순한 학술논문 중개유통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민간 학술DB사 간의 경쟁은 서비스 품질 경쟁으로 이어졌고, 학술논문 이용 활성화에 기여했다. 보다 많은 저작권료 지급과 학술지 국제화 지원을 통해 연구활동 기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도서관은 교수와 연구자에게 연구지원을 통한 연구활동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은 교수와 연구자에게 연구비 지원을 통한 국내 학술생태계를 키워 나가고 있다.
민간은 고품질 원문 서비스, 공공은 인용지수 개발을 국내의 R&D 비용은 세계 6위 규모를 자랑한다. GDP 대비 R&D 비용은 세계 1위다. 학술정보산업도 그 규모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외 거대 기업이 막강한 자본과 플랫폼을 무기로 국내 우수 학술지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학술지 보호를 위해서도 '민관 상생'은 절실하다.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공공기관이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다. 공공기관은 민간이 투자하기 힘든 논문 표절 검색 시스템, 인용지수 서비스개발과 구축에 집중하고, 민간은 연구자 눈높이에 맞는 고품질 서비스 개발과 원문 서비스, 메타 데이터의 공공기관 제공을 통한 상생 협력이 필요하다.
민간은 시장의 성장에 따른 성과를 학술단체(학회)에 투명한 저작권료 정산으로 학술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하고, 공공기관은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과 평가를 분리해 학술단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봉억 기자는 누리미디어 저작권기획팀 팀장을 맡고 있다. 학술논문 전자저널 서비스 DBpia의 콘텐츠를 모으고, 교수, 연구자, 학회와 소통하는 일을 한다. 학술·고등교육전문지 <교수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