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스럽게도 대한민국은 현재 '불평등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0%의 상위계층이 전체 국민소득 45%를 점하고 있다는 통계(2012년 기준)와 부동산이 소수 1%에 편중됐다는 조사(보통 지니계수가 0.3대에 있는데 부동산으로 한정하면 0.9대)에서 보듯 빈부 격차가 커져감에 따라 사회 양극화도 점점 심해지고, 이로 인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위화감, 열패감'이 심각한 수준이며, 국민들의 '행복지수' 역시 바닥이다.
이들 특권층이 "재력으로 정치·법조 등 각 분야를 장악"하고 있고, 이러한 "양극화로 인해 다시 신분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며, "(경제)성장도 정체되고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유전무죄처럼 법치도 위협" 받고 있고, "권력·부의 집중은 견제와 균형의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이룬다고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말한다.
오죽하면 현재 우리 사회를 '팔꿈치사회'라고 표현할까?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불공정한 경쟁사회'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경쟁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사실상 태어나서부터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존재하고, 알고 보면 '특권을 이용한 반칙과 치졸한 꼼수'로 승자의 자리를 거머쥐고 있다는 풍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갑의 나라, 금수저들의 천국, 신지주사회(지주-마름-소작인), 위험사회, 사다리사회, 죽음사회, 헬조선' 등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는 키워드가 담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직업과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학력과 계층, 직업의 대물림이 더 굳어져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을 뒷받침하는 결과이며, 노력보다 부모의 배경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는 자조적인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교육을 '부와 권력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하는 특권층일부 특권층들은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는 한 수단으로 교육을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부끄럽게도 현재의 실력이 아닌 대학 간판으로 대접받는 '학력·학벌사회'이다. 그렇다 보니 특권층들은 "사립초-국제중-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성공과 출세를 위한 특급열차'"에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앞문이 안되면 옆문과 뒷문을 통해서라도 자녀들을 올려 태운다. 자식의 출세를 보장하는 보증수표 앞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똘레랑스, 도덕성, 체면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영국 베젤 교육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학업성적과 경제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콜맨(colemam)보고서도 학업성취에 가정적 배경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특권층들은 사회지도층답게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사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중산층과 서민들도 이 행렬에 가세해 급기야 망국적인 사교육 열풍을 몰고 왔고, 실제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사교육비 부담에 등골이 휘고 있다.
2013년 공교육비 규모가 31 조인데 반해 사교육비는 연간 33조 원을 넘고 있다.(기재부 중장기전략위 및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위 세미나 통계) 이는 국가예산(375조4천억 원)의 8.8% 수준이다. 가구당 월평균 64만 6천 원(자녀 1인당 38만1700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인 통계일 뿐 아마 더 큰 돈이 지출되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율마저 곤두박질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아이를 낳아 대학졸업까지 약 4~5억 원 정도 든다고 한다. 누가 봐도 투자 대비 고비용 저효율이고, 고급 실업자 양산(학력 인플레 심화)하는 기형적 구조이며, 이른바 3D업종 기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 및 다문화 가정 확산으로 또 다른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비용으로 굴러가고 있는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가계지출을 초래해 '실버푸어(빈곤한 노년층)'를 양산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경제민주화' 꼭 이루어야 '교육 불평등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도 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교육 불평등'이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대물림을 통해 악순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경제정의, 사회정의를 실천하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경제민주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과도한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도 동반성장하는 '포용적 성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재벌개혁과 민생경제 살리기', 더 늦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황제경영(적은 지분으로 그룹전체를 지배하는 후진적 순환출자구조)과 재벌들의 문어발식 독과점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전문가들은 튼실한 경제 생태계를 이루려면 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2015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의하면, 소득 상위 20%의 부가 1% 증가하면 5년 뒤 국내총생산은 최종적으로 0.08%포인트 줄어드는 반면,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국내총생산은 같은 기간 0.38%포인트 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상위층은 소비성향이 낮아 늘어난 부가 바로 소비로 연결되지 않지만, 하위층은 소비성향이 높고, 소득이 늘면 바로 교육 분야 등 투자로 이어져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를 '숲'에 비유했다. 건강한 숲에는 큰 나무와 중간 나무, 작은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나무가 쓰러져도 중간나무가 바로 커서 큰 나무를 대신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큰 나무만 있고 중간 크기나 어린나무들이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서, 큰 나무가 쓰러지면 바로 민둥산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튼튼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 벤처 사업가로 자본이 분산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경제 분야뿐이랴? 교육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숲도 건강하고 튼실해지기 위해서는 자연의 숲을 닮아야 할 것이다. 키가 큰 것들은 큰 대로, 작은 것들은 작은 대로, 저만의 시간과 가락에 취해 나름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숲, 나만의 철학을 추구하되 다른 이를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혼자서도 아름답지만 어울림으로 더욱 아름답고, '같이의 가치'로 거듭나는 낙원... 아, 자연스러움과 건강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이렇게 자연의 숲과 같은 건강하고 튼실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변화, 행복한 혁신 - "교육에 대한 투자와 누진세 활용정책"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경쟁을 부추기며 1등, 2등 등수를 매기는데, 이제는 차가운 경쟁사회에서 따뜻한 협력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에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도 다시 계층이동이 자유롭고, 열려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희망적이고 좋은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소수에 집중된 부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누진세 활용정책'이 지름길이라 여겨진다. 우리도 북유럽과 같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공감을 얻어 '부자증세,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할 것이고, 조세정의와 조세형평 차원에서 '세법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은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멕시코와 함께 최하위권이다. 적어도 OECD국가 중 평균(중간)은 가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사람에 대한 투자, 미래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토마 피케티 교수는 "역사적으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불평등 정도를 완화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무상교육이 불평등 해소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우리도 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의무 무상교육 확대 및 보편적 교육복지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학교서열화 및 교육 불평등의 핵심원인을 하나하나 지혜롭게 해결하여, 궁극적으로는 수직적 서열화에서 수평적 다양화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속히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전문직업인'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직업기술교육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거의 차별받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란다. 심지어 대학 교수나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급여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덴마크의 경우도, 의사나 택시기사나 벽돌공의 수입 차이가 크지 않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기에)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 대부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우리도 독일 등 교육선진국들처럼 '대학 간판'이 아닌 '현재의 실력'으로 존중받고, 대접받는 능력사회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지금과 같은 다람쥐 쳇바퀴식 입시위주의 반복학습으로는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없고 국가경쟁력도 없다. 이렇게 교육은 국가의 미래, 아니 국가생존과 직결된다. 교육문제는 이제 교육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국민들이 사실상 '출산파업'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은 현재 중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아니 이곳저곳에서 고름과 비명과 혈관이 터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보기가 힘들다.
정경훈 교수(아주대)는 한국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피라미드식 대학 서열화, 출신 대학에 따른 학벌 카스트, 대입결과에 따른 학생·교사·학교의 서열화, 학생의 개성·재능·창의성을 잘라버리는 주입식교육, 학생 절반이 엎드려 자는 수업현장, 공부를 둘러싸고 부모와 자녀의 끊임없는 전쟁, 왕따·학교폭력, 학업중단 그리고 청소년 자살, 사교육비로 등골이 휘어져 노후 준비가 그림의 떡이 된 학부모, 교육비 부담으로 인한 저출산, 대학진학 후 정체성 혼란에 한바탕 홍역,
GDP대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 사립대가 80% 넘는 기형적인 나라, 대학 간 서바이벌게임을 조장하는 대학구조조정정책, 대학정원조정과 정부지원금을 무기로 학과 간 경쟁과 반목을 키우는 정부의 대학정책, 인격수양과 세계성찰 없이 무늬만 있는 대학교양교육, 취업경쟁과 스펙쌓기로 왜곡되는 대학수업, 청년실업이 만연하여 대학 졸업 후 열패감에 시달리는 수백만의 젊은 영혼들"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교육을 바꾸는 사람(정당)이 나라도 바꿀 수 있고, 교육을 잡는 사람(정당)이 대권도 잡을 것이다. 세월호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호, 더 늦게 전에 교육불평등 완화 등 교육문제 해결하고, 경제민주화를 통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우분투 (UBUNTU)"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끝으로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똘레랑스', 아니 '우분투(UBUNTU) 정신'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서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 놓고, "얘들아, 저기 나무 옆에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드문 아주 맛있는 과일이 가득 찬 바구니가 보이지?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가장 먼저 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달콤한 과일을 모두 다 줄 테니, 지금부터 힘껏 뛰어가렴." 그런데, 앞 다투어 달려갈 것이라는 인류학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과일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서 입안 가득히 과일을 베어 물고서 키득거리며 행복하게 나누어 먹더라는 것이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누구든지 1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다 주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느냐?" 라고 묻자, 아이들의 입에서는, "UBUNTU(우분투)" 라는 단어가 합창하듯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저만 혼자 기분 좋을 수가 있는 거죠?"
'UBUNTU'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로서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 또는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말이다. 우리에게도 우분투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